팔순 노모의 웰빙

2004.07.12 | 행사/교육/공지

요즘 웰빙이 열풍이다. 상품 광고에 웰빙이라는 단어는 단골로 등장한다. 이쯤 되고 보면 웰빙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웰빙 열풍을 보면서 다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웰빙의 의미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부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고가의 명품, 건강 식품 등이 모두 웰빙의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가야 하는 미용 관리실이나 스파 등이 웰빙의 이름으로 요즈음 인기 상한가를 누리고 있다. 웰빙족은 일반 식품보다 훨씬 비싼 유기농 식품을 먹는다고 한다. 건강에 좋고 자연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이 없으면 웰빙은 꿈도 못 꾸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친 웰빙 바람에 거부감이 들 정도다.

진정한 웰빙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상태란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된 것이다. 자신의 경제력을 무시하고 웰빙 열풍을 쫓다가 거기서 오는 현실과의 괴리감과 불만감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은 웰빙(well―being)이 아니라 오히려 일빙(ill―being)이다.
그런 의미에서 팔순을 훌쩍 넘긴 우리 어머니는 진정한 웰빙의 실천가라고 할 수 있다.

며칠 전, 고향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여태까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 오셨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할 정도라며 고통을 호소하셨다.
더럭 겁이 났다. 연세가 높은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하루아침에 건강을 잃을 수도 있음을 아는 터라 더 놀랐다. 그래서 얼른 병원에 가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 다녀오셔서 다시 전화를 하셨다.
“너무 걱정 마라 별다른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늙느라고 그런 거란다!”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전화를 끊으면서 한 마디 덧붙이셨다.
“의사가 내 뼈는 아직도 육십대라며 몸 관리를 참 잘했다고 칭찬하더라.”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안도의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늙느라고 그런 것’이라는 데 심리적 상처를 입지 않고, 뼈가 육십대라는 의사의 말에 안정을 얻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늘 이처럼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다.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지내신다. 게다가 절제력이 강하다. 절제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가 건강하게 사는 비법인 것 같다.

식사 시간이 규칙적이지 못한 나는 속병을 자주 앓는다. 제때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다 보니 어쩌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허겁지겁 먹어댄다. 어느 날 ‘배불러 죽겠다’면서도 미각에 휘둘려 숟가락을 놓지 못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왜 배불러 죽을 정도가 될 때까지 먹니? 적당히 먹어라.”
적당히 먹는 게 내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어머니는 평생 적당하게 드시고 살아 오셨다. 식사 시간이 규칙적이고, 항상 일정한 양만 드신다. 그 덕분에 언젠가 찾아온 당뇨병도 쉽게 물리치셨다. 철저하게 식이요법을 하고 의사의 처방을 지켜서 완쾌되신 것이다.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비결은 이것 외에도 또 있다. 어머니는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신다. 해가 뜨면일어나고, 낮 동안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기본적인 생활 외에도, 눈비 내려 사고 위험이 높은 날에는 먼길을 떠나시지도 않는다.
어머니를 보면 웰빙이라는 것이 결국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얼마나 조화롭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걸 알게 된다.
명품을 갖지 못해도, 비싼 돈을 지불하며 스파나 헬스장, 미용 관리실을 다니지는 못해도,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며 균형잡힌 생활을 하면 그것이 바로 웰빙이 아닐까.

[[김순자 / 출판기획자]]
[문화일보] 2004-07-10 () 00 22면 판 1809자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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