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별을 켜자 – 빛공해 줄이는 법

2004.09.02 | 행사/교육/공지

모두들 잠자리에 들 무렵 광화문 네거리를 달려본 적이 있는가? 가로등과 자동차 전조등 같은 복잡한 불빛 행렬 속에서 고고하게 서 있는 광화문은 잠시 다른 세계로 이끌어 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지로 정해지고, 궁궐이 자리잡으면서 오랜 세월 그곳을 지켰을 옛 건축물들은 생명체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따스함을 말없이 전해준다.
그 벽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들의 생명력은 또 어떤가? 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서 있는 궁궐 벽과 그것을 보호하듯, 존경하듯 부지런히 타고 오르는 푸른 식물의 조화가 무척 멋스럽다. 그러나 자세히 따지고 보면 그 담쟁이들만큼 불쌍한 식물도 없다. 많은 차들이 지나치는 한가운데에서 소음에다 매연을 잔뜩 마시다가 좀 고요해질 저녁이면 광화문의 야경을 만들기 위해 아래에서 쏘아 올리는 강한 조명을 받아 잠시 눈 붙일 틈도 없으니 말이다.

식물도 저녁이면 낮에 쌓인 피로를 풀고 깊은 휴식을 해야 다시 싱싱하게 자랄 수 있다. 짙은 어둠과 고요함이 있어야 사람들도 푹 잘 수 있듯이 식물도 꼭 그렇다. 빛은 식물이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에너지원이다. 그래서 빛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밤이면 모든 생산활동을 멈추고 곤한 숨을 내쉬면서 깊은 잠을 잔다.
7월 무렵에 꽃이 피는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마주한 작은 잎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나란히 붙는다. 그렇게 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면 붙었던 잎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다시 활짝 잎을 편다. 마치 부부가 금실 좋게 잠자리를 함께하는 것과 같아 ‘합환수(合歡樹)’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신혼부부의 뜰에 많이 심었다. 강낭콩과 도꼬마리는 낮에는 잎을 거의 수평으로 눕혀 놓지만 밤이 되면 수직으로 일으켜 세운다. 수평의 잎은 낮 동안에는 빛을 더 받을 수 있지만 밤에는 열을 내보낼 수 있기 때문에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잎을 세운다.
하트모양의 작은 잎이 세 장씩 달려 있는 괭이밥 역시 밤이면 잎사귀 중앙맥을 따라 잎을 반쯤 닫으면서 잠을 잔다. 시금치 역시 밤이 되면 줄기를 위로 세우고 잎을 줄기 위쪽으로 몰아세워 어린잎을 감싼다. 아침이면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나팔꽃이 피어나고, 달빛이 유난히 밝은 밤이면 소담스런 박꽃이 피어나고, 고운 달맞이꽃이 피어난다.

어둠이 더 짙을수록 다시 밝아오는 새벽이 반갑고 귀한 법. 그러나 도시의 밤은 더 이상 칠흙같은 어둠이 아니다. 도시 하늘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미세한 먼지층에 조명 불빛이 반사돼 밤하늘을 희뿌옇게 만드는 이런 빛공해 현상 때문이다. 미국 환경단체인 ‘도시 와일드랜드’는 2002년에 열린 심포지엄에서 빛공해가 철새, 곤충, 물고기, 포유류 같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토론했다. 클렘슨대학 연구팀은 높은 탑이나 건물의 번쩍이는 붉은 불빛을 보고 밤에 이동하는 철새 수백 종이 불빛 근처를 곡예 비행하는데, 달빛이나 별빛을 보고 이동하는 새 천 마리가 한꺼번에 탑에 부딪쳐 죽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는 연어와 청어가 북태평양의 인공불빛 때문에 이동하지 않거나, 불빛 근처로 몰려들었다가 다른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고 했다. 플로리다 어틀랜틱대 연구팀은 밝은 조명 때문에 부화한 바다거북이 방향감각을 잃고 해변으로 몰려오고 있다고 했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는 불법 이민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조명탑이 야간 사냥꾼인 스라소니를 멸종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천문학자들과 천체관측 동호회원들, 환경운동가들이 ‘밤하늘과 별빛 되찾기 운동’을 벌였다. 인구 300만 명에 옥외조명등이 22만 개나 있는 마드리드 시의 불빛은 위로 18㎞, 사방 200㎞까지 뻗어나간다. 땅 위를 밝히겠다는 의도를 벗어나 매년 수 억 달러를 들여 생산한 전등 불빛을 하늘로 날려보내는 유럽 대부분 지역은 빛공해가 특히 심하다. 이런 빛의 홍수 사태는 기념물, 역사 유적, 건물의 조명과 가로등, 철야 술집 간판 같은 상업광고용 조명장치, 자동차 전조등을 마구 켠 결과였다.

미국에서는 1992년부터 애리조나, 콜로라도, 텍사스를 포함한 6개 주와 많은 도시에서 빛공해방지법을 만들었다. 칠레와 호주는 국가가 법을 만들었다. 이 법의 주요 규제 대상은 위를 향하는 조명이다. 미국에서는 건물이나 기념물을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한 경관 조명이 늘면서 옥외 조명 3분의 1이 위를 향하고 있다. 위로 향하는 빛은 대기 중의 먼지와 반사해 둥글고 어슴푸레한 ‘빛공해’를 만들고 있다. 또, 대도시에서는 밝은 도시 불빛 때문에 매미가 밤에도 울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기도 하고, 현란한 네온사인과 밝은 가로등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많다.

먼 우주에서 오는 빛은 아주 약하기 때문에 도시의 불빛에 가려 광학망원경으로 관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전파나 방사선을 감지할 수 있는, 값비싼 첨단 관측장비를 동원하거나 조명공해를 피해 하와이, 칠레, 카나리아 군도 같은 외딴 곳에 천문대를 세워 초대형 망원경을 설치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별들의 대향연을 보려는 천문인들은 빛공해가 적은 두메산골, 높은 자락으로 들어가고 있다. 강원 횡성군 강림면 월현리의 천문인마을 천문대는 별빛보호지구로 지정될 정도로 빛공해가 적어 총총한 별들의 잔치를 또렷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지만 가로등이나 도시의 불빛 때문에 이곳 역시 안심할 수 없는 곳이다.

․빛 공해를 줄이는 법

생각보다 무척 간단하다. 꼭 필요치 않은 전등을 끄면 된다. 촘촘하게 켜진 가로등을 불편하지 않을만큼만 드문드문 켜고, 가게문을 닫은 뒤에는 네온사인과 간판의 불을 끈다. 집에서도 대문이나 거실, 마당에 늘 켜 두던 등을 에너지도 아낄 겸 끄고 마당에 나와 앉아 밤하늘의 별을 세어 보자. 불을 끄고 이젠 별빛을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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