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작은 텃밭 이야기 – 인터뷰 ‘엄마는 화전민’

2004.10.07 | 행사/교육/공지

그이의 거실은 싱그럽다. 밖은 아직도 제법 쌀쌀한데 사랑초와 알로에, 파키라, 홍콩야자까지…, 빛을 등에 진 거실 창가는 작은 온실이다. 계절을 잊은 듯, 봄이 몹시 그리운 듯 철쭉은 그새 꽃을 피웠다.
“누가 키우다 버린 것을 아까워서 주워왔어요. 물만 줘도 잘 자라는 걸 그냥 버리기 아깝잖아요? 식물도 생명인데….”

고양시 허순님 씨. 어린순을 잘라와 애지중지 키운 것도 있고, 이웃들이 이사가면서 그냥 두고간 바람에 시들해진 것을 들여온 것도 있다. 세월을 함께 보내고 정을 나눈 식물들, 그들 덕분에 닫힌 공간인 아파트가 생기로 가득하다. 볕이 따뜻해 보여 베란다로 나갔다. 상추, 쌈당귀, 파, 돌나물, 미나리…, ‘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큼 가지런히 놓인 화분 행렬은 작은 텃밭이다. 이걸 보고 감탄하면 안 된다고 순님 씨의 큰딸 지선 씨가 엄마의 이중생활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그랬다. 오늘은 거실이나 베란다가 아니라 아파트 가운데, 콘크리트 가운데에 있는 땅 이야기를 들으려고 찾은 것이다.

서울이 비대해지면서 새로 생겨난 콘크리트 도시 고양시, 순님 씨는 이곳에 땅을 여러 평 가지고 있다. 지주? 결혼하고도 몇 번 이삿짐을 꾸리고 풀면서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와 이제는 시집 장가보낼 걱정인 다 자란 아이들, 남편 외에 다른 재산이라곤 없다. 투기? 맘 편하게 밟을 수 있는 내 땅 한 평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게 그이의 소원이다. 경작의 본능이랄까? 시골깡촌이나 두메산골 출신들은 빈 땅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한다. 제 구실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 같아 무슨 씨앗이라도 심어 보려고 팔을 걷어 부친다. 허순님 씨의 이중생활도 전북 고창군 고향 땅에서 시작된 아주 뿌리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풀 뜯고 벼 베고, 탈곡하고, 지게 지고, 도시로 시집오기 전까지 했던 농사일이 본능처럼 남아 이삿짐을 풀자마자 동네 조사부터 나서게 했다. 빈 땅은 없는지, 아까운 땅이 놀고 있지나 않은지, 저 곳에 배추라도 심으면 좋을텐데….

아파트와 야산 사이에 빈 땅, 새로 들어설 건물을 기다리며 쓰레기만 뒤집어쓰고 있는 땅, 그런 땅이 발견되면 우선 쓰레기봉투를 사서 잡쓰레기는 분리해서 담고, 가구 같은 큰 쓰레기는 동사무소에서 딱지를 받아와서 붙였다. 그리고 흙을 일구고 계분을 넣어 땅심을 높였다. 집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가 이 밭으로 오는 건 기본. 밭으로 출근하는 길 가방에 든 것은 다름아닌 음식쓰레기 봉투다.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 싶을 때는 근처 한의원에서 버린 한약찌꺼기를 가져와 골고루 뿌렸다. 귀한 한약 맛을 본 채소가 더 맛있는 것은 당연했다. 고봉산 기슭, 마곡역 부근, 기찻길 옆…, 지금까지 이렇게 일군 땅이 얼마나 되는지는 남편도, 딸들도, 아들도, 순님 씨도 모른다. 땅 주인이 건물을 짓겠다고 하면 곧 미련을 버려야 했고, 이사를 하면서 그동안 정 들었던 이웃들에게 넘겨준 적도 많았다. 그리고 새집 가까이에 있는 빈땅을 다시 찾아 나섰다.

“우리 엄마는요, 화전민이에요.”
큰딸 지선 씨 말처럼 일구고, 또 일구고 흙이 보이는 곳이라면 덤불 우거진 풀숲도 가리지 않았다. 반찬값을 아껴보겠다, 무공해 채소를 직접 길러 보겠다, 애초에 이런 계산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 있잖아요? 저는 밭에 가서 흙을 만지면 저절로 나아요. 속에 불이 확 날 때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밭에 가서 호미를 들면 저절로 풀려요.“
열매 수확이 목적이 아니라 씨앗을 사고, 거름 주고, 물 주면서 식물이 자라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기다리는 것이 더 좋았다. 미나리, 호박, 수박, 배추, 고추, 고구마, 보리, 밀… 종류 역시 여느 시골농부 못지않다. 좀 여유가 있는 날은 종로에 있는 씨앗상까지 가서 뭐가 새로 나왔나 살피다가 특이한 씨앗이라도 있을라치면 얼른 사 와서 땅에 뿌렸다.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밭에다 쓰레기를 휙 던지고 가는 사람, 애써 가꾼 미나리를 뿌리채 뽑아가는 사람, 성묘 때 쓰려고 했던 수박을 말끔히 먹어치우고 껍질만 남겨둔 등산객, 그래도 멈출 수 없는 건 더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가운데에도 순님 씨와 같은 본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낯선 동네에 새로 정을 붙이고, 농사 정보도 나누고, 동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순님 씨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겼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 맺는 농작물을 보면서 식물공부를 하는 녀석들도 있었고, 직접 키운 상추에 삼겹살을 싸먹으며 이웃들과 배를 두드린 날도 잦았다. 순님 씨가 땅을 계속 일구면서 빈 땅에 몰래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일도 점점 사라져 본의 아니게 환경감시자가 된 것도 달라진 동네 풍경 중 하나였다.

베란다에서 자라는 상추와 쌈당귀를 따서 상에 올려놓자 아주 귀한 음식을 대한 듯 마음이 흡족해졌다. 김장김치와 동태국에 든 붉은 고추 역시 작년 가을에 수확한 것들이다. 올해는 골다공증에 좋다는 홍화씨를 심어볼 생각이다. 홍화를 키우다보면 가끔 어깨가 아픈 적도 나을 것만 같단다. 올 농사 계획은 어떤지 여쭈었다.

“위태로와요.”
짧은 한 마디! 새 주인을 찾지 못한 빈 땅에서 몇 해동안 무사히 농사를 지을 수 있었는데, 곧 건물이 들어설 것 같단다. 날이 풀리면 새 땅을 찾아볼 생각이다.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가 너무 얇아 보여 내복을 껴입고 결혼사진을 찍었더니 좀 통통하게 나왔다는 순님 씨, 니 것 내 것 계산하는 것보다 그저 많이 가꿔서 나눠주는 재미만 생각하는 순님 씨 같은 분들이 있어 아직 세상이 살만한 모양이다.
기약이 없는 농사지만 이들처럼 경작의 본능을 가진 이들이 정화작용을 하고 있어 아직 도시의 공기가 훈훈하고 숨쉴만한 모양이다. 문득 돈 많은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땅을 진정 아끼고 가꿀 줄 아는 사람이 주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파는 재주만 있고, 무조건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보자는 주인이 아니라 생명을 품는 땅을 그저 땅으로 그대로 둘 줄 아는 사람이 주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토지 소유권이니 하는 제도들이 없던 시절에는 이런 주인들이 지구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이 아닐까? 입안에서 상큼한 쌈당귀 맛이 오래도록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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