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화장지와 손수건

2004.10.19 | 행사/교육/공지

“휴지를 손바닥에 둘둘 말아서 쓰는 사람이 많이 있더군요. 자원의 낭비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음까지 병들게 하는 아주 고약한 버르장머리입니다. 휴지 한 장 아끼는 것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오. 당신의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시방 지구가 날벼락을 맞고 있는 겁니다. 똥구멍은 요만한데 뒤지(뒷종이)는 이만큼 쓴다는 게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우리 집에서는 아래와 같은 요령으로 뒤지를 씁니다. 두 칸을 잘라서 세 겹으로 접으면 넉넉히 뒤를 닦을 수 있습니다. 한번만 닦고 나와서 다시 물로 깨끗이 닦으면 건강에도 좋고, 기분도 좋고…. 휴지로 도(道)를 닦읍시다!”

얇고 부드러운 화장지 한 조각에서도 도를 배우자고 하는 이현주 목사님의 편지다. 달이 차면 기울 듯 뱃속도 가득 차면 잘 비워야 탈이 없다. 정신없이 분주한 생활 가운데 유일하게 정신을 한 곳에 모으는 곳이 화장실이다. 무념무상에 빠지거나 목표없이 달려가던 인생을 한번쯤 돌아보는 곳 또한 화장실이다. 담배연기 풀풀 날리고 보던 신문지들이 발 아래 구겨져 있는 냄새나는 화장실도 생각하기에 따라 마음을 닦을 수 있는 곳이다. 또, 진정한 ‘버림의 철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 중 해우소에 가면 이런 글을 만날 수 있다.
‘입측진언(入厠眞言), 버리고 또 버리니 큰 기쁨 있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도 이같이 버려 한순간의 죄악도 없게 하리라.’
‘입측진언’은 화장실 안에서 암송하는 글이다. ‘탐진치’는 욕심 부리고, 화 내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뱃속의 똥오줌을 버리면서 이 세 가지 죄악도 함께 버리고 진정한 삶의 기쁨을 맛보라는 것이다. 깨달음의 장소는 멀리 있지 않다고 했던가?

깨달음에까지 이르진 못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는 화장실에서 우리는 건강부터 챙겨 보자. 물에 잘 녹는 화장지, 향이 나는 화장지, 올록볼록 화장지, 엉덩이를 부드럽게 하는 화장지…. 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화장지들이 참 많기도 많다. 그 뿐인가? 주방타월, 화장을 지우는 클린싱 티슈, 아기 엉덩이용 물티슈에, 음식점 일회용 물수건까지…. 그러나 눈처럼 흰 화장지나 무늬와 향이 있는 화장지는 표백제 같은 화학물질을 쓴 것이라 눈을 끌어당기는 것만큼 좋지는 않다. 신문이나 잡지, 우유팩 같은 종이를 재활용해서 누렇고 거칠어 보이는 화장지가 건강에는 더 좋다.
화장지를 비롯한 종이제품들은 펄프 본래의 색을 희게 만들기 위해 표백을 하고, 형광증백을 한다. 표백을 할 때 많은 화학약품을 쓰고, 이 약품이 공기 중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러 가지 처리제를 쓰기도 한다. 재생된 화장지라 할지라도 형광증백제를 넣어 뽀얀 것은 좋지 않다. 먼지나 이물질을 닦는 일회용 화장지가 굳이 흰색일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 여러 종류를 골고루 갖춰 놓고 쓰레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화장지 대신 손수건이나 걸레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두루마리 화장지 한 롤에 단위 면적당 무게인 평량 16g/㎡, 폭 9.8㎝ 길이 70m인 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 220g의 펄프가 들어간다. 화장지를 적게 쓰면 그만큼 쓰레기도 줄고, 천연펄프도 적게 쓰니 자연 숲을 보호하는 길이 된다. 재생지로 만든 화장지를 쓰면 도시 쓰레기 중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폐지를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그러면 도시 전체의 쓰레기량도 줄고, 운반과 처리, 소각 비용도 줄이고, 매립지도 덜 필요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화장지 원료인 펄프를 수입하고 있고, 재활용하는 폐지마저 사들이고 있다. 일정한 양을 꾸준히 모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폐지 속에 여러 이물질이 많아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따로 처리비용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국 피부과 연구진은 예전보다 훨씬 많은 아기들이 습진에 걸리는 것이 잦은 목욕과 여러 목욕비누, 젤과 샴푸, 물휴지를 쓰는 것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 BBC 뉴스는 피부과학회지에 실린 셰필드대학 마이클 코크 박사의 연구를 인용하여 비누 성분이 있는 각종 세제와 물휴지 사용을 줄이라고 했다. 지난 50년대에 습진에 걸리는 아기는 전체의 5%에 불과했으나 90년대 부터는 그 비율이 20%로 4배나 늘어났는데, 실내 기온이 높아진데다 통풍이 잘 안 되는 집안 환경도 문제가 있지만 물 소비량이 늘어나고 비누와 거품목욕제, 샤워 젤, 샴푸 같은 것이 많이 팔리는 것과 비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또, 코크박사는 습진 환자가 있는 집안에서는 몸을 깨끗이 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며, 보습성분이 있는 것이 아니면 되도록 물휴지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새로 이사한 분들의 집을 처음 방문할 때 화장지를 선물로 많이 한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인데다 부피도 커서 왠지 푸짐해 보이는 효과까지 있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누렇거나 거친 재생화장지나 손수건 세트를 선물하는 건 어떨까? 아기 엉덩이를 닦을 때는 화학물질로 처리된 물 티슈 대신 손수건으로 닦아 주자. 후라이팬의 기름을 닦을 때는 주방타월보다 신문지나 과일껍질을 쓰고, 음식을 쏟았을 때는 재빠르게 화장지를 찾지 말고 걸레를 가져 오자. 볼 일을 본 뒤에는 작은 물바가지를 이용해 물로 항문을 닦는 뒷물이 건강에 좋다. 항문의 피부조직은 아주 부드러워 유해물질이 있거나 거친 화장지를 쓰는 것보다 물로 닦는 것이 더 깨끗하고 좋다. 굳이 변기에 비데를 달지 않아도 작은 물바가지 하나면 충분하다.  

․ 뒷물하기 자료가 있는 곳
정토회의 불교환경교육원 02-587-8997 www.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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