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하고 꼼꼼하게 따져야할 원산지

2004.10.28 | 행사/교육/공지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었을 때, ‘아동노동반대 세계행진’이라는 캠페인이 열렸다. 작은 잔디구장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축구공은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최상품으로 치는데, 어린 아이들이 이 축구공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아동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글로벌 마치에서는 2002 월드컵에서 아동노동을 쓰지 않고 생산된 축구공과 용품을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월드컵 개최 일 년 전부터 벌이고 있었다.

파키스탄의 시알코트, 인도의 푼잡 지방에서만 어린이 수십만 명이 학교도 가지 못한 채 축구공을 꿰매고 있다. 적게는 5, 6살부터 시작해서 10대 중반이 되는 아이들이 공을 만들기 위해 하루종일 쪼그려 앉아서 바느질을 한다. 하루에 3~4개, 숙련되면 10개까지 만드는데, 침침한 불빛 아래 하루 10~12시간 이상 일하는 데다 바늘에 찔리거나 다치기를 수십 번, 나중에는 지문까지 지워진다고 한다. 허리를 구부려 일하기 때문에 디스크가 생기기도 하고, 시력을 잃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이 축구공은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들이 축구장에서 차는 것이 아니다. 축구용품을 생산하는 세계 유명 기업에서 값싼 노동력 때문에 이 아이들에게 일을 계속 시키고 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역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일에는 동전처럼 앞뒷면이 있기 마련이지만 화려한 월드컵 이면의 세계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어느 곳에서 생산된 제품인가, 그것이 정당한 노동가치를 들인 제품인가 하는 데까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란 우리 땅에서 나서 가장 흔하고, 구하기 쉬운 것, 우리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아 쓰는 것이지, 좋은 것이라면 무조건 사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가게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식용유는 원료가 유전자 조작된 콩인데다 생산과정에서 이미 산패되어 몸에 좋지 않다는 글을 처음 읽었을 때였다. 시중에 나온 식용유는 다 위험하고, 가장 안전한 기름으로 유럽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유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리브유가 생산과정은 건강할지 몰라도 대서양 기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맞는 것이지, 동양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가 많이 먹어도 몸에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끝없이 사들여야 한다면 말이다.

수입한 먹을거리를 꼭 먹어야 한다면 원산지를 깐깐하게 따져야 한다. 값싼 생과일이라면 틀림없이 농약이나 보존제를 많이 쳤을 것이고, 밀가루 같은 가공식품이라면 식품첨가물과 원료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대규모로 생산하는 나라에서 키운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잘 아는 바나나를 살펴보자.
사과나 배보다 훨씬 빨리 물러지는 바나나는  완전히 익은 것을 따면 운반 도중에 상하게 된다. 그래서 파란 바나나를 따서 성장을 억제시키는 ‘데믹’이라는 농약을 푼 물에 담근 뒤 말려서 포장하고 수출한다. 바나나가 우리나라에 도착하면 빨리 익으라고 ‘카바이트’로 다시 익힌다. 몸이 약한 환자나 어린이에게 영양식이라고 이 농약 바나나를 사다 주지 않았는가?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바나나를 많이 수입해서 가격이 싸면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과일은 가격경쟁에서 밀려 그대로 창고에 쌓인다. 건강도 잃고, 농민들의 터전도 빼앗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가족처럼 기르는 애완동물을 살펴보자. 남들이 가지지 않는 것, 희귀한 것을 자랑삼아 키우기 위해 어렵게 사들인 동물들 중에는 숲에서 불법으로 잡아들여 내다 판 것들이 많다고 한다. 마약과 무기에 이어 세 번째 큰 암시장이라는 동물시장, EBS ‘종의 묵시록’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동물시장인 인도네시아의 프라무카, 베트남의 동물시장, 인도네시아 팔랭방 정글을 찾아 밀거래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 속에는 오랑우탄과 어린 반달곰, 극락조를 같은 희귀새들이 밀림에서 잡혀 와 경찰의 눈을 피해 어느 마당 한 구석에 갇혀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원숭이는 마취 주사를 맞은 채 좁은 상자에 갇혀 있다 공항 입국수속에서 발각되었고, 애완용으로 팔려갈 어린 원숭이는 사람을 할퀼 수 있다며 생이빨이 잘려 나갔다. 어릴 때부터 잡혀 있어 야생성을 잃은 동물들은 새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좁은 곳에 갇혀 있고, 다쳐서 제 값을 받을 수 없는 동물은 마당 귀퉁이나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거래되는 희귀한 애완동물들 역시 대부분 이곳을 거쳐온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물의 이름만 따로 외우고 있을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옷은 어떤가? 모피 코트 한 벌은 수 백 마리 동물이 죽어야 만들어진다. 코트 한 벌을 만드는데 친칠라 백 마리, 푸른 여우 11마리, 크기에 따라 밍크가 45마리에서 200마리가 죽어 털을 남겨야 한다. 죽이는 과정 역시 우리나라에서 보신탕을 만들기 위해 개를 다루는 것 못지않게 잔인하다. 인간에게 필요한 연구를 얻기 위해 동물을 실험도구로 쓰는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이렇게 생산한 물건을 사지 말자는 주장도 높아지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공항에서 들어가려는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입국심사대에서 걸음을 멈췄다. 호주 이민국 직원들이 선수들의 장비를 일일이 점검하다 축구화 바닥에 낀 잔디와 흙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것이다. 곧 신발을 모두 모아 세면장으로 달려가서는 밑창에 낀 이물질을 솔로 깨끗이 씻는 소동을 벌였다. 호주는 번식 우려가 있는 모든 것들을 공항에서부터 철저히 막는데, 돌연변이들이 마구 번식하면 고립된 호주 대륙의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기 때문이란다.
참 유별스럽게 보이는 이 모습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집집마다 있는 바퀴벌레는 예전에 우리나라에 없던 수입종이다. 6,25전쟁 뒤 미국에서 목재를 많이 수입하면서 섞여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귀화식물이나 외래종이라고 하는 식물이나 곤충 역시 이렇게 들어온 것이 많다. 황소개구리와 붉은귀거북 역시 우리나라에 없던 것들이 들어와서는 호수와 냇가에서 활개를 치면서 생태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이미지를 따져서 물건을 사는 친구가 있다. 그 회사가 직원들을 함부로 내쫓거나 노동착취를 일삼는 곳이 아닌지, 해외에서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생산하는 곳은 아닌지, 그리고, 불매운동에도 열심인 친구를 보면서 참 아는 것도 많고 좀 피곤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나라가, 세상이 조금씩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가? 그 뒷면에서 이루어지는 일에도 관심을 갖자. 어느 곳에서,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