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와 아파트1

2004.11.17 | 행사/교육/공지

메주와 아파트

황사와 공해에 찌든 도시에도 가을이 되면 여전히 햇살이 맑고 따뜻한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토요일 오후 아파트 뒤편 잔디밭에 나와 보니 젊은 엄마들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세발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아파트 좁은 공간 자동차 사이로 요즘 유행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그 모습을 보고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젊은 엄마 셋이서 자동차에서 내리더니 장바구니 안에 든 된장 이야기를 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골 친정에서 해마다 받아먹던 된장이 올해는 끊겨서 할 수 없이 동네 시장에서 된장과 청국장 한 덩어리를 샀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내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렇게 자주 먹던 된장, 고추장이었지만 한번도 메주를 담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시댁에서 친정에서 마트에서 생협에서 혹은 아는 이로부터 얻어먹고 사먹기만 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한테 해줄 수 있고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다가 된장과 간장을 손수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시장에서 파는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지만, 다 돈 주고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쳐 최종의 소비 상품을 사서 먹는 것이라서, 다른 것은 몰라도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생활의 기본 먹걸이 만큼은 완벽하지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과정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된장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아는 것은 없었고 그저 귀동냥이 전부였다. 재래시장에 나가 시장 한 귀퉁이에 초라한 좌판을 펼치고 콩을 파는 할머니들이 가장 귀중한 정보처였다. 할머니들에게 물어보면서 일일이 메모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주워들은 이야기들은 할머니들마다 다 달라서 좀 더 체계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활잡지로 나오는 <귀농통문>에서 혹은 녹색연합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또한 가끔은 <녹색평론>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콩과 메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용기였다. 메주 하면 시골 안방의 퀘퀘한 냄새를 연상하기 때문에 현대인의 거주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 보고자 하는 생각조차를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한 번 엄두를 내보기로 했다.

우선 시험적으로 지난 해 시장에서 사둔 묵은 콩과 새로 나온 햇울타리콩, 쥐눈이 콩 등으로 메주를 쓰기로 했다. 처음해본 것은 흰콩(백태, 왕태가 있다)중에서 왕태와 울타리콩을 3대 1 (컵의 부피로 따지면 된다)로 섞어서 물에 잘 씻고 저녁 지나 다음날 아침에 큰 냄비에 푹 삶았다. 콩을 불릴 때는 물을 콩과 2대 1이 되게 하고, 센 불에 끓여 뚜껑이 들썩들썩할 때 중간불로 해서 3시간 정도 더 삶았다. 콩알을 손으로 만져보아 별로 힘 안들이고 물러지면 불을 끄고 체에 밭쳐서 콩물을 빼고 그냥 그 냄비에서 나무공이로 찧었다. 물론 절구에 찧으면 더욱 좋다. 콩이 조금 드문드문 남아있을 때까지 찧은 다음 네모난 (케이크 모양으로 하거나 동그래도 좋다) 플라스틱 통에 랩을 넓게 깔고 그 위에 찧은 콩을 담으면서 중간 중간 절구공이로 꼭꼭 눌러 박는다. 그래서 적당한 모양을 만들면서 나무 도마 깨끗한 것을 깔고 메주를 뒤집어엎은 다음 랩을 씌운 채로 밑바닥 모양을 잘 다듬는다. 그리고 랩을 살곰살곰 가만히 잘 떼어내서 베란다 해 잘 드는 곳에 내 놓는다.

바람이 통하게 베란다 문을 열어놓지만, 파리가 달라붙으면 안 되니까 방충망은 닫은 채로 놓는다. 아침에 해가 좋으면 더 좋고 아이들이 늦잠 자는 일요일 아침이면 더 좋다, 그리고 마르라고 그냥 내버려둔다. 해가 좋으면 한나절이면 겉이 구득구득해진다. 저녁때 쯤 뒤집어서 또 말린다. 랩은 그냥 물에 씻어서 걸쳐놓아 물기 없게 말려 또 쓴다. 우리는 랩이 비환경적 물질이라는 것을 알지만 자주 쓰는 편이다. 랩이 유용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대신 한 번 쓴 랩을 그냥 버리는 적은 없다. 10번이고 계속 쓰다가 구멍이 나거나 생선냄새가 지독히 배었을 때 그때 버린다.  

짚은 메주 뜨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순우 선생님이 쓰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라는 책을 몇 년 전에 보고는 부석사에 한 번 꼭 가고 싶었는데,  드디어 4년 만에 우리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에 가게 되었다. 가는 길에 어느 시골길 볏갈이 해 놓은 논에 동이지어 말리고 있는 짚을 두 손바닥으로 잡을 만큼만 가져왔다. 논 주인이 뭐라 할까, 누가 볼까 얼른 두 단 정도를 자동차에 얼른 실었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지방마다 된장과 간장 맛이 다른 것은 짚에 살고 있는 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볏짚에 있는 균이 메주 만드는데 결정적인 발효작용을 한다는 것쯤은 다 아실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순창 고창의 장맛이 좋은 이유가 해가 잘 비치는 곳이라서 그렇겠지만, 그 동네 짚이 좋은 이유에도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농약을 안 치고 유기농 논농사를 짓는 원주시 호저면 논에 가서 볏짚을 몇 단 주워 오기도 했다. 그래서 내 짐작이지만 볏집도 좋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그 과학적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짚의 겉껍질을 혹시 몰라라 일일이 벗겨내고 속대만 묶어 놓은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며칠간 하늘의 햇살의 상황에 따라 메주 덩어리 겉면이 웬만큼 딱딱하게 마르면 상품 포장용으로 쓰는 딱딱한 종이 상자 같은 데에 짚을 한 두 겹 정도 깔고 그 위에 메주를 놓는다. 그리고 어린 아이 보살펴 들여다보듯이 아침에 일 나가기 전에 한번, 저녁에 들어와서 한번 뒤집어준다. 직접 만들었다는 뿌듯함에 정말 아이 다루듯 정성들여 메주를 보살폈다. 가능한 베란다 문을 열어놓으면 바람이 잘 통해 좋다. 그렇지만 밖에서 먼지가 많이 들어오는 아파트에서는 베란다 문을 닫아도 큰 문제는 없다. 그러다 어느 날 보면 하얀 곰팡이가 생기면서 딱딱하게 더 마른다. 그렇게 상자 속에서 베란다에서 한두 달 추워질 때까지 둔다.

메주콩에다 쥐눈이콩을 6대 1로 섞어도 좋다. 불리지 않고 집에서 쓰는 전기 압력밥솥에 콩이 잠길 정도만 물을 붓고 그냥 잡곡 취사 메뉴를 눌러 놓고 해도 좋다. 이때 쥐눈이콩은 까만 물이 나오므로 행주를 서너 개 밥솥 김빠지는 곳 주위와 밥솥 옆의 물 빠짐 통 옆에 둘러준다. 압력 솥 김 나오는 구멍을 막으면 큰 일 나니까 주의해서 행주 둘림을 한다. 그러면 까만 콩물이 주위에 떨어지지 않는다. 이걸 모르고 그냥 압력밥솥에 했다가 까만 콩물이 다 튀고 떨어지고 닦느라고 끙끙댔다. 우리 집 전기 압력 밥솥이 오래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되어 콩이 다 익으면 밥솥을 들어내어 그냥 나무공이로 뜨거울 때 콩콩 찧는다. 이때는 반드시 아이들이나 남편을 시켜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식구들이 된장을 더 맛있게 먹게 된다. 사회생활이나 집안 일, 무슨 일이든지 함께 더불어 하는 습관이 중요한 듯 하다.

메주 쑤는 콩은 그냥 보통 메주콩이라 불리우는 백태만 해도 되지만, 울타리 콩과 섞어도 아주 좋다. 그리고 백태와 쥐눈이콩을 섞어 해봤는데 콩 중에서 쥐눈이콩을 섞은 것이 가장 구수하고 맛있다. 쥐눈이 콩을 섞은 메주는 짙은 갈색이 된다. 메주 색이 너무 검은 티가 나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맛은 정말 좋은 것 같다. 여기서 된장 말고 간장 이야기를 잠시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 전래 간장 색깔은 원래 검지 않다. 오히려 노랗거나 누런 색깔이 난다. 또 그래야만 국에 간장을 넣어도 국색깔이 변하지 않고 좋다. 그런데도 요즘 엄마들은 간장은 다 검은 색이어야 한다는 선입관을 갖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앞의 전기압력밥솥에 쥐눈이 콩을 삶는 이야기도 했거니와 쥐눈이콩으로 간장 메주를 담그면 간장 색이 검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간장색갈이 양조간장처럼 검으 틱틱했다. 그러면서도 그 맛은 전래 간장 맛을 내었다. 참으로 귀중한 우리만의 발견이라고 생각하고 흐뭇해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원래 그렇게 하는 전래 방식이 있다는 말을 시골 장터 할머니에게 우연히 듣게 되었다. 섣불리 생각 말아야지.

메주 만드는 어떤 스님의 글에 의하면 간장 위주로 담을 메주는 푹 뜨는 것이 좋고 된장은 메주가 많이 뜨지 않아도 맛있게 된다고 한다. 뜬다는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으나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곰팡이다. 다만 그 곰팡이가 우리 몸에 좋은 곰팡이로 피면 된다. 짚이 좋아서 그런지 다행히도 이렇게 해서 만든 메주 모두에 생크림 같은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메주는 나중에 항아리에 집어넣을 것을 생각해서 시장에서 파는 메주 크기의 3분 1 정도로 귀엽게 작게 만들었다. 집에 있는 항아리 하나는 새우젓 항아리였다. 옛날 시어머니가 개성에서 피난 나올 때 갖고 오신 것인데 우리에게 주셨다. 이곳저곳서 새우젓 항아리를 보았지만 시어머니가 주신 것은 그 몽양이 아주 의젓하고 안정되어, 아마 솜씨 좋은 옹기쟁이가 만든 것 같다. 그 안에 가득 담을 새우젓은 이제 없지만, 가끔 꽃을 소복이 담아 모양을 내기도 한다. 혹은 겨울에 동치미를 그 항아리에 담가 먹으면 맛이 정말 별미이다. 피난길에 그 무거운 항아리를 들고 가야 했던 당시의 힘겨움을 이 항아리가 말해주는 듯 하다.

항아리는 그것 하나로 부족하여 옹기 항아리 몇 개를 더 샀다. 무릎도 안차는 작은 항아리였다. 사실은 아파트 베란다가 너무 작아서 큰 항아리를 놓을 공간도 안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작은 항아리 입에 들어 갈 수 있을 정도로 메주 크기도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메주 모양은 메주를 담는 틀에 따라 그 모양이 별나게 나는 것이 당연하다. 집안에 적당한 틀이 없으니 조금 크다 싶은 각종 그릇이 다 동원되었다. 크고 작은 동그란 플라스틱 찬통, 네모난 나무 상자 등 집에 있는 틀대로 메주 모양도 다양하였다. 해 놓고 그렇게 다양한 모양들이 예쁘게만 보였다. 좁디 좁은 베란다 여기저기에 메주덩이를 놓았다.

날씨가 추워질 때 까지 베란다 종이 상자 안에 메주 덩어리를 그냥 뇌두면 된다. 나중에는 메주가 점차 늘어나서 베란다에 작은 2단짜리 책장을 놓고 층층이 쌓아 두었다. 이제 얼지만 않게 하면 된다. 그러다 메주가 다 뜨면 그냥 상자위에 짚만 살짝 덮어두거나 천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베란다 빨래 봉에 매달아 놓으니 보기도 좋았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옛날처럼 방안에서 두꺼운 이불 뒤집어엎어서 띄우지 않아도 요새는 아파트가 따뜻하니 해만 잘 들고 바람만 통하면 베란다에 놓아도 되므로, 방안 혹은 거실에서 메주 뜨는 고약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

어린 시절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을 찧던 아줌마 옆에서 콩덩이 먹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찧기 전에 푹 찐 콩 세알씩 먹어보게 했다. 저들이 나중에 크면 그거라도 기억하라고. 내년에도 또 하고, 아이들이 우리 곁에 있을 때 까지 메주를 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주 찧을 때 남편도 고생이 많다. 손에 물집까지 생겼으나 말이다. 아이들은 메주가 귀엽단다. 조그만게. 이렇게 해서 메주 20 덩이를 만들었다. 참 많이도 만들었다. 대견하게도. 마흔 너머 처음으로 만든 메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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