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으로 보는 세상

2004.12.08 | 행사/교육/공지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24살이었던 그녀는 65미터에, 수령 9백 년이나 되는 삼나무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서부의 험볼트 카운티에 서 있는 그 나무의 이름은 ‘루나’. 달을 뜻하는 루나는 줄리아가 나무에 오르던 97년 12월 10일 밤, 높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밝은 빛을 비추어준 달의 고마움을 기억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지상으로부터 55m, 가로 180㎝, 세로 240㎝, 이 좁은 공간이 줄리아가 무려 738일, 2년 동안이나 살았던 곳이다.
미국 삼나무는 온대우림의 극상림으로, 최대수령이 만 년 이상이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생물이다. 보통 4백 년을 자라면 100m 이상까지 자라는 성숙목이 되는데, 이 삼나무 숲을 말끔히 벌목하려는 벌목회사 퍼시픽 럼버사에 맞서 줄리아는 높은 나뭇가지 위에 둥지를 틀었다. 바람과 폭풍우, 벌목회사의 협박과 위협, 둥지를 날려버릴 것 같은 벌목용 헬기의 소음과 위협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루나와 루나의 고향인 헤드워터 숲을 지키려는 이 긴 싸움은 2년이나 계속되었다.
“숲이 존재하는 까닭과 그 숭고한 가치를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고, 그 깨달음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느낄 때까지 땅을 딛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유년시절 산에 올랐다가 나비 한 마리가 오래도록 그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던 일을 떠올린 줄리아는 미국 환경운동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에서 따온 이름, ‘나비’를 그녀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그녀의 흔들림 없는 신념에 연방정부는 퍼시픽 럼버사에 4억 8천만 달러를 보상하고, 벌목을 하려던 4천㏊의 헤드워터 삼나무 숲을 보존지역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줄리아는 루나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삼나무 숲 전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게 아니라서 정작 루나가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 그녀를 지원하는 ‘지구 먼저!(Earth First!)’ 같은 환경단체들이 퍼시픽 럼버사와 계속 협상을 해 마침내 5만 달러를 내고, 루나와 그 둘레 60미터는 결코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녀는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7백38일 만의 땅을 밝은 그녀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모든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세요. 그것이 지구에 무엇을 할지를, 오늘날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내일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느끼라는 것입니다. 지구와 우리가 분리되었다는 생각에 파괴를 용납하고 있지만, 지구를 돌보고 있다고 느낀다면 파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지구보다는 자신의 차에 더 신경을 씁니다. 우리는 차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지구가 필요합니다. 이 지구의 모든 생물들을 위해서 깨끗한 공기와 물, 그리고 땅이 필요합니다. 조금 편리하겠다는 욕망 때문에 진정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는 정복자가 아니라는 줄리아, 정작 우리가 정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연을 그저 개발과 경제개념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일 주일에 편지를 50~60통 가량 받습니다. 잉크가 묻지 않은 편지들은 다시 쓰고, 봉투 한쪽 면이 깨끗한 것은 답장을 쓰는데 다시 씁니다. 하루에 스무 가지 볼 일을 보기 위해 20번 차를 타는 대신, 그것을 단 한 번에 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생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정복자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이제 그 고마움을 잊었다. 나무에서 종이를 만드는 사람과 열심히 종이를 쓰는 사람, 버려진 종이를 치우는 사람이 분리된 까닭이리라. 종이 한 장에서 나무를 보고, 그 나무에 담긴 물과 구름과 흙을 보자. 그리고 나무에 깃들어 사는 나무꾼의 밥과 땀방울을 보자. 바람에 날아가 버릴 듯한 이 얇은 종이 한 장은 약하지만 그 속에 담긴 기록은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 종이 한 장에 울고 웃기도 하고, 목숨이 오락가락 하기도 한다. 또, 그저 스쳐 지나갈 한순간을 종이는 평생동안 담아 두고, 포장이 되고, 증거가 되고, 의사소통이 되고, 법이 된다. 한 장 한 장이 쌓여 문명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종이 한 장에서 줄리아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한 그루 삼나무를 보고, 지구를 지탱하는 힘을 느끼자.

종이만큼 흔한 것이 없다. 눈뜨자마자 달려가는 화장실 휴지부터 부엌에 있는 종이 타월과 우유곽, 거실에는 신문과 전단지가 있고, 잡지도 있고, 담배종이에다 은행 명세서에…. 하루동안 무심코 쓰는 종이만 모아도 만만찮은 양이다. 문제는 잠깐 보고 나면 곧 쓰레기가 되는 일회용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우리 집 앞에 멋들어지게 서 있는 은사시나무가 어느 날 종이가 되기 위해 쓰러져 버린다면 종이의 귀함을 알게 될런지 모르겠다. 도시에서 내 땅 한 평 가진 것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종이를 쓰는 대신 나무를 심자는 것도 사치이자, 공허한 메아리다. 나무를 심을 수 없다면 종이를 덜 쓰면 된다. 하루동안 뽀얀 종이 한 장을 덜 쓰면 우리보다 먼저 이 지구에 온 아름드리 나무 한 그루를 살릴 수 있다. 나무가 뿜어낸 산소로 세상을 조금 더 맑게 바꿀 수 있다. 그 나무에 사는 휘파람새와 자벌레, 미생물을 살리고, 종이를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 종이를 표백하느라 쓰는 유독약품으로 물이 오염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이 책을 위해 쓰러져간 나무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보내면서 종이를 줄이고 아끼는 방법을 알아보자.

1. 출력이나 복사 단추를 누르기 전에 다시 생각해 본다. 꼭 출력해야 하는 건지, 필요한 부분만, 필요한 만큼만 하고 있는지, 3초만 생각해 보자. 되도록 모니터에서 교정을 보고, 사무실 공문은 여러 장 복사하지 말고 게시판에 한 장을 붙여 여럿이 함께 읽는 방법도 있다.
2. 읽지 않는 신문과 잡지를 끊는다. 신문은 사무실에서 함께 돌려읽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다. 잘 읽지 않는 잡지는 끊고, 다 읽은 것은 공공기관이나 치과, 지역도서관 같은 데 기증하거나 다른 이들과 돌려보자.
3. 청구서는 인터넷으로 받는다. 각종 요금이나 회비는 자동이체로 바꾸고, 사용내역서를 인터넷으로 받으면 줄줄이 들어 있는 상품광고지에 인상을 찌푸릴 일도 없겠다.
4. 화장지를 절반으로 줄인다. 웬만한 건 걸레로 닦고 손수건을 쓰자. 주방용 종이타월 대신 행주를 쓴다. 물기 있는 것은 행주로 닦고, 기름기는 신문지나 과일껍질로 닦으면 된다.
5.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바르게 쓰는 습관을 가르친다. 공책은 끝까지 쓰고 남는 부분은 잘라서 연습장으로 쓰게 한다. 아이들과 다 쓴 종이로 재활용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다.
6. 전단지를 연습장이나 메모장으로 만들어 다시 쓴다. 광고전단, 통지문 뒷면을 전화 메모장이나 반찬거리 메모용지, 게시판 쪽지로 한번 더 쓰자. 말끔한 서류봉투는 다시 쓰고, 봉투를 만들 때 다시 쓸 수 있도록 주소란을 여러 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
7. 재생지로 된 제품을 즐겨 쓴다. 거칠고 투박한 재생지를 많이 쓰면 폐지로 종이를 만드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그러면 나무도 살릴 수 있고, 종이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물 오염도 줄일 수 있다.

․참고자료
나무 위의 여자 / 줄리아 버터프라이 힐 / 가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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