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따라 스스로 자라는 아이

2004.12.13 | 행사/교육/공지

“아이를 갖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잘 키울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잖아요?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홍수처럼 쏟아지는 육아정보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똑똑한 아이를 낳고 남들보다 앞선 아이로 기를 것인가’이더군요. 이미 뱃속에서부터 경쟁은 시작되고 있던 걸요.”

고양시 일산에 사는 권정민, 지덕현 부부. 혼자 똑똑한 아이보다는 함께 어울려 둥글게 사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그들은 지금 도심 속 생태육아를 꿈꾸고 있다. 어른들의 이야기도 곧잘 알아듣고, 제 주장도 생겨 제법 수다스러워진 네 살 성혁이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집안 구석구석을 참 바지런하게도 돌아 다녔다.

“고요함이 필요한 뱃속 태아에게 청진기와 초음파 기계 같은 장비들을 들이대고, 은근히 더 많이 가르치기를 부추기는 상업주의 태교와 숫자, 글자, 온 집을 장식하는 알파벳 그림까지 온통 더 많이, 더 빨리 배울 것을 강요하고 있더군요. 세상 빛을 보기 전부터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조급함은 임산부들 사이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습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는 권정민 씨는 아이가 태어나는 고귀한 순간을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만나고 싶어서 병원 수술대가 아닌 조산원을 택했다. 그리고, 엄마의 산통도 줄이고 아이의 충격도 줄일 수 있는 수중분만으로 성혁이를 맞았다. 출산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병원을 찾지 않고 가장 편안하게 아이를 맞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조산원을 들러 출산과 태교에 관한 상담을 받고, 부부교실 강의도 함께 들었다.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할 것인가 생각해보고, 호흡법과 연상법 같은 출산준비와 아빠의 할 일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 다스리기, 평온하게 아이 맞이하기,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보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열 달을 보냈다. 아이 교육의 출발은 바로 태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건강한 성혁이를 만난 뒤로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다녔다. 아이가 아프면 곧장 병원으로 내달리기보다는 풍욕이나 냉온욕을 먼저 시켰고, 건강하고 깨끗한 먹을거리를 먹이고, 간식으로는 떡이나 감자, 고구마, 두유나 감잎차 같은 것을 선택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밥 세 끼에요. 아무리 좋은 먹을거리라도 간식을 많이 먹이면 밥을 잘 먹질 않아요. 인스턴트 식품이나 설탕, 조미료, 방부제가 든 음식은 되도록 멀리하려고 해요. 아이가 안으로 단단해져야 하는데 우유나 달걀, 과자 같이 가게에 나와 있는 간식들은 겉만 자라게 해요. 아이가 알차게 자라지 않으니 병이 잦은 것이죠.”

분유가 아닌 모유를 먹이려고 노력했고, 모유를 먹이려면 엄마의 몸도, 엄마의 먹을거리도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 역시 성혁이를 위해 깨끗하고 건강한 집안 가꾸기에 두 팔 걷고, 술 담배 같은 해로운 것들도 차츰 멀리하게 되었다. 성혁이는 크게 아픈 적은 없었지만 건조한 아파트 생활이라 그런지 감기가 잦은 편이다. 웬만하면 약을 먹이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게 하려다 보니 콧물을 달고 사는 편이란다. 그걸 지켜보노라면 ‘지금쯤이면 병원을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유혹도 찾아든다. 이럴 때 마음을 다 잡아줄 누군가 절실히 필요하곤 했다.

“아는 것만이라도 실천해 보려고 애써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고, 혼자서는 역부족일 때가 많았어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가 옆에 있다면 아이 키우기가 좀 쉬워지지 않을까? 또래 누구 집 아이가 이맘 때 어떤 장난감을 샀다더라, 그게 꼭 필요하다더라 하면 ‘장난감은 별로 필요치 않다’고 굳게 먹었던 마음이 어느새 느슨해져서 장난감 사이트를 헤매고 있기 일쑤였어요.”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젖먹이는 육아모임에서 만난 한 엄마가 가까운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그 분은 아이의 아토피 때문에 한동안 고생을 했고, 자연식 방법으로 거의 낫게 한 경험도 있었다. 아이의 먹을거리나 환경이 자연에 가까웠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는 점도 비슷했고, 아이를 통해 부모가 함께 성장하고 싶다는 욕구도 닮아있는 분이었다. 서로 눈이 맞은 두 엄마의 수다는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고 있는 엄마들을 한 자리에 모아 모임을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들 내 아이에게 무엇을 해 줄까만 고민하고,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는 부모들이지만 정작 부모로서 필요한 마음자세나 아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공부는 미처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아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 아이를 넘어 ‘우리들의 아이’로 함께 기르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함께 모인 여덟 엄마들이 나누고 있다.  

“아이는 기다려주면 저절로 성장하는 힘이 있고 이것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먼저 공부해야 한다는 것, 먹을거리부터 가능하면 자연에 가까운 것을 먹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작은 시작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아이들에게도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엄마로서 가져야할 마음자세에 관한 책도 읽고, 아이 발달에 관한 책, 자연식 먹을거리를 왜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이, 더 빨리 가르치려는 육아풍토에서 ‘덜 가르치자 주의’를 나누는 동지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엄마들끼리만 모이다보니 이런 생각은 바로 옆에 있는 아빠들과 함께 해야만 빛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따금 저녁시간을 맞춰 부부동반 모임도 갖고 있다.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가 오가고,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서먹서먹한 이웃들과 끈끈한 정을 쌓는 자리도 갖고 있다.  

“지금은 성혁이가 어려서 별 문제가 없지만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면 또다른 상황이 닥치겠지요.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이려고 애썼지만 급식을 하면서 설탕과 초콜릿, 조미료 같이 멀리했던 것도 먹게 될 것이고, 맛을 들이면 어찌될지 걱정스럽기도 해요. 지금도 가게에 가면 어른들이 귀엽다고 사탕을 쥐어주시고 소아과, 심지어 치과에서도 사탕을 주니 말이에요.”

학교에 들어가면 다른 아이들 속에서 또 어떤 경쟁을 하게 될는지 슬그머니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아이가 가진 힘을 믿기로 했다. 좀 느긋해지자고 권정민, 지덕현 부부는 다짐하곤 한다. ‘함께 크는 자연육아’라는 모임의 이름처럼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와 더불어 성장한다는 것이고, 이것은 우리가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작은 발걸음이 아닐까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작은 시작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아이들에게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아직은 까마득하기만한 희망도 품고 있다. 자연의 이치에 맞게 자연스럽게, 스스로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세상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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