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유혹, 설탕

2005.03.02 | 행사/교육/공지

달콤함은 강렬함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어떤 분은 초콜릿을 좋아했다. 피곤할 때 단 것을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피로도 풀린다며 여러 개를 챙겨와서는 동행하는 우리들에게 하나씩 쥐어 주셨다. 세상의 모든 푸른색들이 이곳에 빠져든 것처럼 짙푸른 바다와 부드러운 오름이 펼쳐진 제주도, 그것과 어우러진 달콤함이란! 풍경에 취해, 좋은 사람에 취해 초콜릿은 더욱 강렬한 맛으로 남았다. 뭍으로 돌아와 다시 일상에서 쳇바퀴를 돌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면 그 달디단 초콜릿을 생각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달콤한 표정까지도…. 그러나 달콤함의 유혹은 몹시도 씁쓸하다.

어른들 시절에는 무엇이든 없어서 탈이 났지만 요즘엔 무엇이든 넘쳐서 탈이다. 설탕도 꼭 그렇다. 내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유독 치통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르바이트든, 직장이든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까닭이 치과에 가야하기 때문이라 할 정도였다. 어느 치과간호사는 젊어서 고생고생해서 돈을 모은 어른들이 환갑을 넘기고는 치과에다 다 바치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물론 이와 잇몸이 약한 체질인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과 하루를 함께 지내다보면 단 것을 무척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 대신 음료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즐긴다거나 간식으로는 늘 과자를 즐긴다거나…. 나는 설탕을 거의 먹지 않는데 하는 사람일지라도 자만하지 말지어다.
설탕을 넣은 음식은 생각보다 많다. 꼬마 아이들도 다 아는 빵, 음료수, 과자, 아이스크림에서부터 김치, 약식, 케첩 같은 여러 요리와 가공식품, 심지어 달다고 느끼지 못하는 음식이나 짭잘한 스낵, 인스턴트 식품에도 설탕은 숨어 있다. 식품 포장지 재료명에 쓰인 정백당, 액상과당, 액상 포도당도 모두 설탕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담배에도 설탕이 들어간다. 미국에서는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 식품가공업계이고, 2위가 담배업계라고 한다.

‘설탕(sugar)’의 어원은 인도의 범어 ‘사르카라(sarkara)’ 또는 ‘사카라(sakkara)’에서 왔다. 그리고,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약 8천 년전 남태평양 지역에서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처음 설탕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고대 예언자들이 사탕수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었다. 폴리네시아의 신화와 전설에도 사탕수수가 자주 나오고, 인도가 중국에 사탕수수를 공물로 바쳤다는 사료도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텃밭에 사탕수수를 키워 잘근잘근 씹어 단맛을 보곤 했다. 사탕수수가 익으면 잘라서 절구에 넣고 찧어 즙을 받다 병에 넣고 눈이나 설탕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농축시키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때는 말할 기운조차 없는 병사에게 설탕 퍼지를 먹였더니 굳었던 혀가 풀려 발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325년 알렉산더 대왕 시절, 인도 동부지역을 답사한 네아코스 장군은 수수와 갈대에서 꿀 같은 것이 자란다고 기록했고, 병사들은 계곡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탕수수 즙을 발효시켜 나눠 먹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인도 소금’, ‘꿀벌이 만들지 않은 꿀’이라고도 했는데 아주 적은 양에 엄청난 값을 치러야 했다. 유럽에서 설탕 경쟁이 벌어졌던 초기, 포르투칼은 사탕수수밭을 찾아 아프리카 서해안을 훑어 다녔다. 그러다 사탕수수가 자라는 열대기후에서 노예생활을 해낼 흑인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불행한 노예무역의 역사도 그렇게 설탕과 함께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명종 이전에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당시의 설탕은 상류층에서 약용과 기호품으로 주로 썼다.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정제, 가공한 탄수화물 식품인 설탕은 영양소는 전혀 들어있지 않고 수분 0.5%를 제외한 99.5%가 당질이다. 포도당으로 분해되기 직전의 이당류 상태로 곧장 장에 도달하는 설탕은 산소량과 균형을 맞추어 혈당치를 유지하는 혈액 속으로 바로 흡수된다. 그래서 곧 혈당치가 높아지고 몸 속 균형이 깨져 버린다. 이 위기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 곳이 뇌다. 뇌는 부신에게 명령하여 당을 처리할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쏟아내도록 한다. 그리고, 이 혈당의 변화는 기분에 영향을 준다. 혈당이 높아지면 기분이 무척 좋아지고, 혈당 수치가 뚝 떨어지면 기분도 축 처진다. 심하면 맥이 탁 풀리고 피곤해진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뇌는 멍한 느낌과 환각에 쉽사리 빠진다. 불안정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몇 년 동안 이렇게 살면 호르몬 균형이 깨지고 내분비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뇌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니 마약으로 정신이 반쯤 나간 것과 비슷해지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항상 피곤하다. 일은 아무리 해도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슈거 블루스’다.

‘슈거블루스’는 설탕이라 부르는 정제 수크로오스(sucross)를 먹어서 생기는 육체와 정신에 나타나는 여러 질환을 말하는데 ‘블루스’란 공포, 병, 걱정 같은 것에 짓눌려 지나치게 우울하거나 감상에 빠진 심리상태를 말한다.
그 뿐 아니다.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있는 설탕을 소화하는데 몸 속 귀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쓰인다. 또, 설탕이 갑자기 많이 들어왔을 때는 몸 속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소금의 나트륨, 채소의 칼륨과 마그네슘, 뼈의 칼슘과 같은 미네랄 성분이 모여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다 혈액을 보호하기 위해 뼈와 치아의 칼슘을 꺼내 쓰는 지경에 이르면 이가 썩고,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그리고 넘치는 당 때문에 간이 부풀고, 지방산이 쌓이고, 인슐린 부족으로 간이 과다한 당을 글리코겐으로 바꾸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바로 ‘조용한 살인자’ 당뇨병이 찾아든 것이다.

음식 곳곳에 들어 있는 설탕의 유혹을 뿌리치는 방법은 많다. 현미 잡곡밥으로 입맛을 바꾸고, 혈당을 유지하자. 혈당이 안정되면 단것의 욕구가 줄어든다. 거친 통밀이나 잡곡빵을 먹고, 청량음료 대신 물이나 녹차를 마시자. 단맛이 꼭 필요한 음식이라면 천연감미료인 효소액이나 조청, 과즙을 넣자. 효소나 조청은 생협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조청은 집에서 만들어도 좋다. 설탕을 끊을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육류를 먹지 않는 것이다. 남성과 양(陽)의 기운을 가진 육류를 먹으면 달콤한 여성의 기운인 음(陰)의 성질을 가진 음식이 먹고 싶기 마련이다. 단맛도 중독성이라 정 단것을 끊을 수 없다면 비타민류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달콤한 과일이나 생야채를 먹자. 우리 몸에 필요한 당은 곡류나 채소에 모두 들어 있으므로 따로 설탕이 든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참고자료
「슈거 블루스」 윌리엄 더프티 지음 / 북라인

·현미오곡 조청 만드는 법
1. 엿기름에 물을 부어 쌀을 씻듯이 열심히 주무르면 뿌연 물이 나온다. 그것을 두세 번 반복한다.
2. 그 물을 한두 시간 그대로 두면 부유물과 물이 분리되는데, 윗물을 사용한다.
3. 현미로 약간 되게 밥을 짓는다.
4. 엿기름을 부어 7~8시간 동안 밥을 식힌다.(밥과 엿기름의 비율은 5대 1로 하는데, 보온밥통에서 보온상태로 8시간 쯤 뒤에 열었을 때 밥알이 동동 떠 있으면 다 삭은 상태이다.)
5. 밥이 다 삭으면 체에 걸러서 물만 준비한다.
6. 5의 물을 은근히 불에 서서히 끓여 조청 묽기로 달인다.
7. 농도가 알맞게 달여지면 식혀서 깨끗한 항아리나 유리병에 담아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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