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은 살아 있다

2005.07.15 | 행사/교육/공지

재래시장 한켠에 있는 방앗간 이야기

방앗간은 살아 있다.

요즘 들어 생식이니, 선식이니 하면서 곡식류를 빻아 말린 기성제품들이 마트에 즐비하다. 미숫가루와 비슷하지만 미숫가루는 쪄서 말린 것이고 선식은 생으로 빻은 것을 말한다. 사실 선식이라는 말은 장사하는 사람들이 멋있게 갖다 붙인 말이어서 그런 말을 쓰고 싶지 않고 대신 곡물가루라고 말하려 한다.  

이런 곡물가루는 출근시간에 쫒기는 사람들에게 아침식사 대용으로 많이 애용되는 것 같다. 곡물가루를 먹는 다른 이유는 바쁜 시간 때문에 식사대용이기도 하지만 건강식으로 먹기도 한다. 분명히 곡물가루는 허기도 채우고 몸에도 좋은 것 같다. 문제는 시장에서 파는 곡물가루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알곡을 생으로 먹을 경우 위장에 부담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자기 몸에 맞추어 먹어야 한다. 또한 생식 가루를 내는 곡물의 원산지와 농약 여부 등의 문제들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한 경우 오히려 선식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 원산지와 농약 여부가 보장된 곡물을 사서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물론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가능한 경우에만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곡물가루를 가금 먹지만 때를 정해 놓고 먹기 보다는 아무 때나 식사대용으로  밥 대신 곡물가루를 먹곤 한다. 재료는 기본적으로 쌀과 현미, 검은콩과 검은깨이다. 나는 생으로 갈은 소위 선식보다는 볶아서 빻은 곡물가루를 권하고 싶다. 생곡물은 앞서 말했듯이 위장에 부담이 가고 소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건강식으로 먹기 보다는 일상 생활속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콩과 깨는 번개처럼 휙 씻어서 물기를 빼자마자 누룩누룩 하게 김이 나서 다 빠질 때까지 볶는다. 고소한 향내도 나고 몇 알 먹어봐서 포소포솔 씹하는 맛이 될 때까지 볶아서, 그러다 보면 볶는 주걱에 닿는 알곡의 힘이 가벼우면 다 볶은 것이다. 그리고 나서 빻으면 된다. 빻으려면 기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가전제품 가게에 가서 3만 원짜리 가정용 다용도 분쇄기를 샀다. 이런 일도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실수가 많았다. 우선 콩과 깨를 볶는 시간이 다 다르고 콩도 콩나물 콩과 검은 콩 볶는 시간이 다 다르다. 너무 타도 안 되고 덜 볶으면 잘 빻아지지를 않는다. 분쇄기로  빻는 것 역시 볶은 상태에 따라 빻아 지는 정도가 다 다르며, 깨를 콩처럼 빻으면 기름기가 나와서 가루의 맛이 떨어진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집에서 해 먹는 작은 양 정도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식구들이 맛나게 우유나 찬물에 타먹었다.

이번에는 양을 좀 많이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많은 양일 경우 가정용 분쇄기로는 역부족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볶은 콩을 들고 방앗간을 찾아 갔다. 그런데 콩을 볶은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빻는 것이 시원치 않다고 방앗간 주인이 말한다. 그 이유는 곡물을 볶고 나서 열이 빠진 다음에 빻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이미 다시 눅눅해 졌단다. 그래도 대충 빻아 가지고 왔다. 알고 보니 방앗간에서 볶아도 주고 빻아도 주는 원 스톱 처리를 모두 해주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머릿속으로 빨리 계산을 해보았다.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 결국은 방앗간에서 볶고 빻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집에 사둔 분쇄기의 쓸모는 떨어지게 되었다.

집에 남아 있는 각종의 콩들을 이렇게 다 빻아서 모두 섞어 버렸다. 메주콩, 검은콩, 쥐눈이콩, 콩나물콩 빻은 것은 다 섞어서 보관용 통에 넣어 두었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것이니 상관없다. 여기에다 검은깨 빻은 것까지 함께 우유에 타서 놓으니 아침마다 식구들이 맛있게 마신다. 마신다고 하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고 먹는다는 표현이 더 좋다. 다만 씹지 않을 뿐이지. 우리집 아이는 어릴 때 천식기가 있어서 고생을 한 덕에 훌쩍 커버린 지금은 천식은 없지만 여전히 먹성이 좋지 않다. 콩가루는 잘게 빻아도 되지만 깨는 잘게 빻으면 기름기가 나오기 때문에 성글게 빻아야 한다. 그래서 아이는 검은깨 가루를 우유에 타주면 목에 걸리니 어쩌니 말이 많다. 그래서 이것 안 먹으면 아빠처럼 머리카락이 빨리 하얗게 되니 미리 미리 먹어 두어라 했더니 군소리 안 하고 잘도 먹는다. 흐흐, 부모도 전략이 필요하다니까..

우리는 방앗간을 들락거리면서 주인 할머니와 마실 나온 동네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을 소중히 듣곤 했다. 점차 방앗간에서 곡물가루를 만드는 여러 방법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방앗간은 쌀을 정미하고 떡만 하는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방앗간은 일상 식생활의 많은 노하우를 간직한 곳이었다. 다른 이야기를 더 해보자. 두부 만들 콩을 물에 불려 물을 빼고 떡 하듯이 방앗간에 가져갔더니 콩이 덜 불었단다. 그래서 더 불린 다음에 가져갔더니, 아니 너무나 쉽게 기계에 물과 함께 드르륵 갈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맷돌로 갈 때는 그렇게 고생했는데 말이다. 기계가 좋기는 하다. 물론 맷돌로 가는 그 손맛을 기계가 절대로 따라 올 수 없지만 말이다. 나아가 고춧가루 빻기도 간단한 게 아니었다. 고추장용 고춧가루와 김치용 고춧가루는 방앗간에서 빻기 전에 고추를 말리는 상태도 달라야 한다. 고추장용은 바짝 말려야 하고 김치용은 너무 바짝 말리면 안 된다. 방앗간 아저씨의 손에 따라 말린 상태를 온전히 판정 받아야 한다. 집에서 자연광에 말린 고추는 한번만 빻으면 되는데, 시장에서 말려 놓은 걸 산 고추는 3번은 빻아야 한단다. 가래떡은 더 좋다. 가래떡을 방앗간에서 만든 다음 이를 썰어서 냉동고에 보관한 다음, 보통 때 국에다 넣거나 떡볶기를 해먹으면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 한다. 나도 좋지만 말이다.  
  
방앗간에 갈 때는 물건만 놓고 집으로 가버리지 않고 기다렸다가 다 될 때 까지 옆에서 거들어 주면 얻어 듣는 게 많다. 떡을 하면 방앗간에 놀러와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나누시는 할머니들도 좀 나눠 주고 오시라. 그러면 자연스레 다음 번 방앗간에 갈 때 친해지게 된다. 더군다나 남편과 함께 방앗간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단다. 남편은 멀끔히 방앗간 주변에서 맴돌거나 혼자서 방앗간의 각종 기계 돌아가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게다가 남편은 메모까지 한다. 벨트에 의한 힘의 전달방식, 갈고 바수고 찧고 빻고 치대고 쓸고(현미 껍질 벗기는 것을 말하는데 도정이라고도 함) 하는 다양한 힘들이 어떻게 기계로 할 수 있는가를 연구한단다. 나, 참. 남편 말에 의하면 방앗간의 각종 기계는 순수한 100퍼센트 토종 아이디어로서 한국인의 대단한 일상 기술문화의 산물이란다. 절구방아, 연자방아, 디딜방아, 물레방아는 없어졌지만 기계 방앗간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단다. 내 남편은 또 무슨 말을 하려나? 어쨌든 남편이 저렇게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둥, 할머니들이 남편 칭찬을 하면 어느새 남편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말의 물꼬가 터지니 할머니들의 이야기보따리는 풀어진다. 항아리 장에 곰팡이 끼지 않게 하는 방법 , 메주가루로 된장을 담글 때 너무 빻으면 된장 국물이 탁해진다는 사실, 고추씨를 갈아서 된장에 넣으면 칼칼하고 맛있게 된다는 것 등등은 모두 할머니들에게서 전해들은 생활의 지혜들이다.

방앗간은 살아 있다. 아직도 재래시장 한 구석에는 방앗간이 살아 있다. 방앗간 갈 때는 대체로 짐이 무거우니 남편이나 혹은 아들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방앗간은 여전히 우리 식생활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아니 지금이 얼마나 바쁜 세상인데 젊은 부부가 방앗간 갈 시간이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방앗간 가는 시간을 부부화합의 시간으로 여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방앗간을 간다는 말이다. 왜 옛말에도 물레방앗간에서 젊은 청춘의 만남이 있었다는 둥의 이야기가 있잖은가.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