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를 물리치는 천 주머니

2005.08.24 | 행사/교육/공지

시장 골목길에 서서 어느 것을 살까 들여다보노라면 주인아주머니는 흥정도 하기 전에 잽싸게 비닐부터 하나 뽑아든다. 곧 담을 태세다. 맘에 들면 얼른 사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얼른 발길을 돌려야 할 것처럼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두부나 물미역 같은 물기 있는 것을 가리키면 하나로 모자라 비닐봉지 두 개를 꺼내 동여매 주신다. 장바구니가 있어 하나만 포장해도 괜찮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에이, 이 비닐 한 장 뭣 푼 한다고 그래. 그냥 집까지 편하게 들고 가. 다음에 또 와요.”
비닐봉지는 이제 인심이다. 애써 장바구니를 챙겨간 내 손이 부끄러워진다. 끝내 거절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자꾸 뒤따라온다.  

비닐봉지는 1957년 미국에서 처음 태어났다. 가게에서 빵이나 과일, 야채 같은 식료품을 주로 담는 용도로만 쓰다가 1960대 후반부터 집과 거리에도 비닐쓰레기 봉투가 생겨났다. 1970년대 중반에는 비닐봉지를 값싸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공정이 개발되어 가게마다 종이봉지 대신 비닐봉지에 물건을 넣어주는 것이 흔해졌다. 비닐봉지는 원유, 천연가스, 그 밖의 석유화학제품으로 만들어진다. 얇고 가벼운 이 비닐봉지는 쓰고 버리기 무척 편하기 때문에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양이 만들어진다. 2002년에만 4~5조개나 되는 비닐봉지가 지구에 태어났다. 이 중 80%를 북아메리카와 서유럽에서 썼고, 미국사람들은 해마다 1,000억 개 비닐을 쓰고 버린다. 그리고 이런 씀씀이는 아시아와 가난한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쓰고 버린 비닐은 소각장이나 매립지에 모이는데, 태울 때 ‘다이옥신’이라는 맹독성 환경호르몬이 나오고 땅에 묻으면 500년 동안 썩지 않아 우리 후손은 비닐봉지만 보게 될 런지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바람에 날려 산으로 들로 떠다니는 것이 많다는 것. 케냐의 농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담장과 나무, 새의 목에 걸린 비닐봉지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베이징에서는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도랑, 하수구, 고대사원에 널려 있는 비닐봉지를 없애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5월 1일을 ‘비닐 없는 날’로 정하고 있고, 방글라데시에서는 홍수와 수인성 질병이 늘어나는 원인 중 하나가 관개시설과 하수구를 막고 있는 비닐봉지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제조업체에게 비닐봉지를 비싸게 만들고 내구성을 높이도록 하여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비닐봉지에 세금을 매겼고, 다른 여러 나라 역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거나 세금 매기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형할인점 야채코너는 매장에서 따로 마련한 투명비닐에만 야채나 과일을 담아 가격표를 붙여주기 때문에 따로 비닐을 챙겨가도 소용없다. 비닐은 자꾸만 쌓이고 쌓인다. 그러나 계속 비닐을 헤프게만 쓸 수는 없다. 깊은 땅 속에서 수억 년 동안 만들어진 석유를 어렵게 뽑아선 포장지로 잠깐 쓰다가 버려지는 비닐, 그리고 땅을 오염시키며 썩지 않는 이런 비닐보다 오래오래 쓰는 천주머니를 선택하는 건 어떨까?  
‘장바구니 쓰기 운동’이 벌어지면서 큰 비닐을 밀어내고 장바구니가 본래 자리를 되찾고 있다면 작은 비닐봉지를 없앨 수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천주머니다. 산악인들이 등산장비를 챙기는 것을 보면 방수효과도 있고 끈도 있어 단단하게 묶을 수 있는 주머니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 방법을 장보러 갈 때도 활용하는 것. 천주머니는 튼튼해서 좋고, 씻어서 계속 쓸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쓰임새를 바꿀 수 있어 좋다. 또, 잃으면 아깝기 때문에 더 열심히 챙기게 된다. 장보러 갈 때 뿐 아니라 소풍이나 여행, 출장 갈 때도 소품을 담아 다시 가방에 넣으면 종류별로 정리되어 편리하다.
가게에서 따로 살 수도 있지만 집에서 손바느질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입지 않는 옷이나 이불 천을 그냥 버리지 말고 천주머니를 만들고, 입구 양쪽으로 끈을 이으면 물건이 빠져 나오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장 보러 가겠다고 맘먹고 나서는 날보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는 길에 장을 보기 때문에 천주머니와 장바구니를 챙기지 못하는 날이 잦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낸 것은 신발을 신으면서 볼 수 있는 출입문 가까이에 걸어 두거나 가방 속에도 늘 넣어 두는 것, 뜻하지 않은 짐이 생겼거나 부피가 커서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짐을 담을 때도 아주 편리하다.
싱크대 한쪽에 비닐봉지를 담아두는 종이가방이 있다. 줄어들 줄 모르고 계속 쌓이는 비닐을 모아 시장 야채가게 아주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고마워하기 보다는 신기했다. 뭐 이런 걸 되돌려 주냐는 눈빛이었다. 야채 담는 스티로폼 포장지도 모아 되돌려 드렸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비닐 반응과 달리 아주 반가워했다. 비닐봉지는 값싼 데다 손님들이 구겨진 것에 담아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스티로폼 용기는 가격도 좀 높고 모양이 부서지지 않으면 다시 쓸 수 있다고 좋아했다.

오후 볕이 누그러드는 저녁 무렵, 장바구니와 천주머니를 챙겨 들고 야채가게에 들렀다. 저 구석에서 야채아주머니가 나를 부른다.
“오늘은 배추가 아주 싱싱하고 싸. 오르기 전에 가져 가.”
스티로폼을 되돌려 주는 신기한 여자가 나타나면 아주머니는 값싸고 싱싱한 야채 정보를 알려주고 덤으로 상추를 넣어주신다. 좋은 이웃이 생긴 것 같아 나도 자꾸만 그 가게로 발길을 돌리고 기웃기웃 아주머니를 찾는다.
“배추 속이 꽉 차서 다 들어가려나…”
장바구니를 쫙 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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