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젓가락과 배달총각

2006.01.23 | 행사/교육/공지

새 봄이 찾아오시려고 아지랑이 가물가물 대던 2002년 봄, 녹색연합은 성북동으로 이사를 했다. 변변한 사무실 한 칸 없어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짐 보따리 싸기를 여러 해, 드디어 우리만의 공간이 생겼다.
숨이 헉헉 찰 정도로 가파른데다 사무실 건물 값은 대부분 은행의 힘이었지만 어찌나 기뻤던지, 아침에 눈 뜨면 새 사무실로 달려가는 마음이 한껏 들뜨곤 했다. 역시 소문대로 성북동비둘기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사무실에서 짐 꾸러미를 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약속을 했다.

쓰레기를 아주 세밀하게 분류해서 줄일 수 있는 쓰레기 목록을 알아볼 것, 그리고 되도록 재활용할 것, 쓰레기가 될 만한 것은 애초에 우리 건물로 가져오지 말자는 약속이었다. 그 중 하나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었다. 밤늦도록 일을 하고 급하게 달려 나가야 하는 일이 많은 우리는 중국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일이 잦았다.
전화를 하면서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자장면 두 그릇 2층으로 배달해 주세요. 서비스로 만두 주실 거죠? 근데요, 나무젓가락은 필요 없어요. 우리 사무실에 좋은 쇠젓가락 많거든요.”
이게 뭔 소린가? 철가방 인생 몇 년째 이런 소리는 첨 들어본다는 배달아저씨는 갸우뚱하면서 으레 그랬듯 자장면 곁에 나무젓가락을 살포시 내려놓았다.
“아니, 젓가락은 필요 없다니까요. 그냥 가져가세요.”
다시 쥐어주었다. 이상한 사람들도 다 있네, 자장면에는 나무젓가락이라야 제 맛인데 하는 의아한 표정으로 일단은 되돌아갔다. 한편 두 번째 주문시키는 날 역시 젓가락 거절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런데 아뿔싸! 순간 방심한 사이 아저씨는 잽싸게 짬뽕과 단무지, 나무젓가락을 고이 얹어둔 채 ‘휘리리릭’ 바람처럼 떠나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지.

나무젓가락을 하나하나 모아 고무줄로 묶어두었다. 그리고 다음 주문하는 날 아저씨 손에 쥐어주었다.
“앞으로도 쭈욱 나무젓가락은 가져오지 마세요. 보세요, 우리 쇠젓가락 튼튼하죠?”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드디어 아저씨는 주문음식과 반찬만 들고 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성공했네. 다 됐다. 이렇게 일회용을 하나씩 줄이면 되지 뭐. 우리가 안 쓰기 시작하면 중국집도 변할 거야. 근데 나무젓가락 하나 안 쓰는 것도 몇 달이나 걸리네. 진짜 힘들다 그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돌아보며 서로를 격려하며 웃음 지었다. 그러나 축배를 너무 일찍 든 탓일까? 큰 맘 먹고 탕수육을 시킨 날, 그런데 이게 웬일, 단무지 접시 옆에 다시 젓가락이 나타난 것이다. 알고 보니 새로 온 배달총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럴 수가? 중국집에서는 진정 소비자의 세심한 요구를 교육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고 말리라. 직접 배달총각을 훈련시키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하나하나 설명을 하고 젓가락을 되돌려 보냈다. 그런데 생김새하고는 다르게 이 배달총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른 집 이름이 새겨진 젓가락은 가져가지 않겠다는 거다. 이름이 다른 중국집 젓가락과 닭집 젓가락, 족발집 젓가락마저 뒤섞여 있었으니 뭐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우격다짐으로 쥐어 보낼 수도 없고 우리는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지금처럼 되도록 일회용은 거절하되 순간 방심해서 받았을 때는 다 모아서 필요한 곳에 보내기로 했다. 대청소를 하면서 사무실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서랍에, 책장 사이에 있던 젓가락도 제법 되고, 광고용 선물로 받은 이쑤시개와 종이컵 역시 만만찮게 나왔다.
한 아름 종이상자에 담아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으로 갔다. 고추장을 비비던 할머니는 주걱을 내던지고 두 팔 벌려 뛰어나오셨다. 그래, 기왕 이 세상에 태어난 거 쓸모 있는 곳에서 제 구실을 한 뒤 장렬히 사라지거라. 돌아서면서 이렇게 기원했다. 나무젓가락 하나 없애는 것도 참 힘들구먼.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북센스)’
                     일회용 나무젓가락이 황사를 부른다 중에서————-

* 사진설명
밥상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잡고 있는데
갑자기 제 앵글 속으로 뛰어든 사나이입니다.
중국집 그 배달총각은 아닙니다.
환경활동가 워크샵이 열리고 있는 의성 마을회관입니다.
사진을 고르다 혼자 보기 아까워 이 곳에 올립니다.
혹시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이라면 연락줘요, 위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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