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볼 일 없는 도시의 밤

2006.02.19 | 행사/교육/공지

빛은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까?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공포영화보다 두려운 건 열대야이고, 그보다 더 참기 힘든 건 소음이다. 밤늦도록 가로수에 매달려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창문을 열어둘 수가 없다.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의 경적도 시끄럽지만, 매미의 기세도 보통이 아니다. 서로 큰 소리내기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매미는 수컷만이 소리를 낼 수 있다. 배에 발음기가 있는 수컷은 종류에 따라 고유한 진동수의 음향을 만든다. 수컷이 내는 소리는 3가지 의미가 있다. 친구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과 내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경고, 그리고 암컷을 불러 짝짓기를 하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매미를 만나 짝짓기를 하는데 꼭 필요한 이 소리는 종족을 번식하고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신호인 셈이다. 보통 매미는 밝은 낮에만 울고, 어두워지면 울지 않는다. 그런데 가로등이 켜지고 자동차 전조등이 반짝이고 간판과 네온사인 때문에 밤이 대낮처럼 밝아지자 매미는 낮인 줄 알고 밤에도 우는 것이다.
인공불빛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은 반딧불이도 마찬가지이다. 청정한 지역에서만 사는 반딧불이는 암컷이 꽁무니에서 나오는 은은한 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수컷을 유혹한다. 그 불빛을 본 수컷은 암컷 곁으로 날아가 다시 빛을 내며 구애를 한다. 반딧불이는 성충이 된 2~3일 뒤부터 구애를 시작한다. 배에 있는 발광세포가 산소와 작용하여 황색 또는 황록색 빛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짝짓기도 인공불빛 때문에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공기가 탁해지고 물도 오염되어 점점 더 깊은 숲으로 숨어드는 바람에 반딧불이가 줄어드는데, 이제는 환한 불빛 때문에 암수가 서로의 위치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공불빛이 짝짓기를 방해하니 여름밤 풀숲에서 신비로운 불빛을 만들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갈수록 만나기가 어렵게 되었다.
곤충들만 인공불빛의 피해를 입는 게 아니다. 인천시 운북동에 사는 농민들은 논농사가 예전 같지 않다. 새로 놓인 고속도로에 가로등이 설치되면서 그 불빛 아래에 있는 벼들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벼 이삭이 영그는 데 장애가 되는 밝기는 5Lux인데, 가로등 아래의 밝기는 30~50Lux나 된다. 250W 나트륨등은 사방 45m까지 10Lux 이상의 밝기를 내뿜어서 그 안쪽에 있는 작물은 모두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가장 밝은 보름달도 0.3Lux 밖에 되지 않는다. 전남 장흥에서는 논 한가운데 들어서서 밤에도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골프연습장 때문에 벼의 생육이 더디고 수확량이 줄어들었다. 골프연습장 근처의 마을은 가로등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아졌다.
벼는 낮이 길 때 광합성 작용을 활발히 해서 최대한 영양분을 저장했다가 낮이 짧아지는 시기에 이삭을 만든다. 그런데 밤에도 계속 빛을 받으면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않는다. 불빛에 민감한 들깨는 꽃을 피우지 못해 열매가 맺어지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한다. 빛에 가장 민감한 시금치는 보름달 밝기의 2배인 0.7Lux만 되어도 잘 자라지 않는다. 콩과 팥, 호박과 옥수수 같은 여름작물은 하루에 빛을 쬐는 시간이 12시간 이하라야 제때 꽃이 피고 열매가 영그는데 밤에도 불빛을 받으면 생태질서가 파괴되어 제대로 영글지 못한다.  

불을 끄면 조용히 떠오르는 별
해가 저물면 화려한 빛의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태어나는 도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쓸쓸함과 설레는 분위기에 한껏 매료되게 만드는 것도 바로 빛이 부리는 마술이다. 그런데 촘촘한 꼬마전구와 전선을 온몸에 칭칭 휘감고 서 있는 가로수의 기분은 어떠할까?
2004년 12월 성탄절과 연말연시를 앞두고 산림청은 가로수마다 설치되는 장식용 조명기구에 대한 지침을 발표했다. 온도가 5℃ 이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되면 나무는 광합성과 증산작용 같은 생리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휴면상태를 맞는다. 11월에서 2월까지 곰이 겨울잠에 빠져들듯 나무도 깊은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조사한 결과 가로수에 설치하는 전구의 밝기는 평균 300Lux 내외에 발열온도는 28℃ 정도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무에게는 너무 밝고 너무 뜨거워서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가로수에 전구를 달 때는 너무 촘촘하게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 연약한 가지나 잎눈이 있는 곳, 주목이나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잎이 있는 나무는 전구가 잎에 닿지 않도록 하고 3cm 이상 떨어져서 설치해야 한다. 전등을 달 때 철사로 고정하면 나무에 상처를 낼 수 있다. 그렇게 난 상처는 나무를 얼게 하거나 병이 생기게 할 수도 있다. 또, 나무가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10∼11월에는 인공불빛 때문에 늦게까지 생장하면 낙엽도 늦게 떨어지는 불안정한 현상을 보일 수 있으므로, 나무가 완전한 휴면기에 접어드는 11월 말까지는 야간조명을 설치하지 말아달라고 산림청은 당부했다.
인공불빛의 피해는 사람에게도 이어진다. 우리나라 도시 아이들은 시골 아이들보다 안과를 자주 찾고 있다. 유명 과학잡지 「네이처」는 밤에 늘 불을 켜놓고 자는 아이의 34%가 근시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환한 불빛 아래에서 잠을 자면 잠드는데 걸리는 시간인 수면잠복기가 길어지고 뇌파도 불안정해진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도 길어진다. 밤에 잠을 잘 때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생체리듬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도 활발해지지 않는다. 멜라토닌은 강력한 산화방지 역할을 하며 노화를 억제하고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이 멜라토닌이 부족해지면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암에 걸릴 수도 있다. 2004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아동백혈병학술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은 야간조명이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간조명이 세포의 증식과 사멸을 조절하는 멜라토닌 분비를 방해해서 암과 연관 있는 유전변이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에디슨이 빛을 발명한 이래 인류 역사는 환한 길을 걸어왔다. 어둠을 몰아내고 24시간을 낮처럼 쓸 수 있게 되었고 문명도 더 빠른 속도로 발달했다. 그러나 어둠이 짙을수록 다시 밝아오는 새벽이 반가운 법이다. 지금 도시의 밤은 너무 밝고 화려해졌다. 밤에도 활동하고 일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피곤해졌다. 밤늦도록 일을 해도 처리해야 할 일은 더 쌓여만 간다.
생물체가 살아가는데 햇빛이 필요하듯이 반대로 일정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생기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짙은 어둠의 시간이 있어야 뽀얀 박꽃이 피고 달맞이꽃이 노란 꽃잎을 연다. 아침을 맞은 곤충은 이슬을 털고 힘차게 날아오르고, 사람들도 이부자리를 걷고 무릎에 힘을 주며 다시 일어선다. 가로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전조등 같은 인공불빛이 사라진 곳에서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약 2,500개나 된다고 한다. 별 볼 일이 없는 밤, 전등 스위치를 끄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우주 저편에서 수십 광년 전에 잠시 반짝였던 불빛이 오직 나를 위해 등 하나를 조용히 내걸어 줄 것이다.  

* 빛공해 줄이는 법
1. 집안에서 꼭 필요치 않은 전등을 끈다.
2.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켜 둔 간접조명 역시 숙면을 방해한다.
3. 대문이나 거실, 마당에 습관처럼 켜 두던 등을 끈다.
4. 가게 문을 닫은 뒤에는 네온사인과 간판의 불을 모두 끈다.
5. 촘촘하게 켜진 가로등은 불편하지 않을만큼만 드문드문 켠다.
6. 퇴근할 때나 빈 사무실의 전등도 꼭꼭 끄고 나온다.
7. 어항이나 애완동물 잠자리에 불을 밝히면 그들 역시 피곤할 뿐이다.
8. 기념일이나 행사를 열 때 뜨거운 전구를 달아 나무를 괴롭히지 말자.
9. 도시 야경을 보고 감탄하기 전에 그 불빛 아래 피곤해하는 생명들을 본다.
10. 여행지에서 내가 밝힌 불빛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없는지 돌아본다.

–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북센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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