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회원] ‘숲속의 섬’의 김애자 회원

2002.07.06 | 행사/교육/공지

제 이름 찾기

김애자 회원님은 한사코 ‘아주머니’로 불러주길 바라셨다. 일산 백마 ‘숲속의 섬’의 ‘아주머니’는 겸손하고 단정한 분이셨다.
이른 봄날의 백마에서 햇살이 눈부셨다.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81년도 ‘화사랑’을 시작으로 ‘썩은 사과’, (이름없는 집), ‘섬’, 등의 찻집을 겸한 술집을 이어오셨다. 경의선의 백마역을 아는 이들은 ‘화사랑’ 또한 기억한다. 지금은 아주머니의 오라버니께서 ‘화사랑’을 하고 계신다. 80년대 중반에 연대, 고대, 이대의 세 학교 학생들이 시낭송회를 했던 추억이며, 이들이 적어낸 이름없는 집의 이름 중에 ‘쥐구멍’과 ‘섬’ 등이 있었다는 말씀, ‘썩은 사과’가 썩은 정부를 말하는 것 같다고 트집이었던 시절 참 예뻤던 그 간판을 태웠던 일, 막걸리에 조롱박을 띄우게 된 이야기, 숲 속의 섬 사위에 걸린 그림과 사진에 얽힌 사연들. 아주머니와의 인터뷰는 푸짐하고 정갈한 잔칫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여기 앞에 있는 교회 자리가 돼지며 젖소를 키우는 목장 같은 곳, 돈사였어요. 오리, 개가 있었고, 호도밭이… 저 너머 사람들이 이곳에 나무하러 왔다고 하네요. 여기가 숲이었으니까요.”

아주머니가 내어주신 국수는 맑고 담백했다. 아담한 여러개의 창문으로 사방이 트여 햇살이 환하니,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신도시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는다.
‘여기 술집 맞아요? 수도원같아요.’라고 쭈뼛거리는 손님, 카페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서까래가 보이는 보꾹(지붕 아래, 천장으로 가리지 않은 모습)이 높아서인지, 머리를 깨끗하게 넘겨 쪽진 모습 때문인지, 때때로 수녀님 같다던가 원불교의 정사님 같다는 말을 듣는다고 그분들께 죄송스러워 어쩌냐면서 짐짓 화난 표정으로 웃어버리신다.
아주머니가 83년도에 현재 ‘숲속의 섬’의 건물을 지을 때, ‘경의선 주변경관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20년상환의 대출을 받으셨던 것이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하신다. 그 때의 이야기. “농가건물은 건축 후 5년이 지나야 용도변경이 되지만 대부분 편법을 이용하죠. 그러나 저는 5년동안 그대로 두었다 용도변경이 가능한 때가 되어서야 장사를 시작했어요. 꼭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했지만 지켜주어야 분명해 지는 것들은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공무원을 시작했던 이들이 이제 간부직을 맡고 아주머니를 볼 때면, 고개를 절레절레- 웃으면서 흔든다는데, 그 고집스러움, 깨끗한 다부짐이 많은 이들을 ‘숲 속의 섬’으로 이끄는 힘이 아닌가 한다.

함께 간 녹색연합의 지아가 씨와 정명희 씨가 아주머니와 김민기씨며 80년대에 얽힌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틀가 벽돌벽 위에 구석구석 적혀 있는 알콩달콩한 사연들 예쁜 이름들, 계산대 뒤편의 빽빽한 LP판과 CD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밖의 쥐똥나무가 열린 창 너머로 들리는 음악에 흔들흔들한다. 85년도에 심을 땐 젓가락 같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사람 키를 훌쩍 넘겼다. 음악은 김광석과 한대수가 흘렀다. 아주머니가 녹색연합의 활동가들을 마치 옛친구 대하듯 반갑게 맞아주시고 편하게 말씀해주셔서 고맙고 행복했다.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고 대대적인 공사와 함께 휙-휙- 어지러워질만큼의 빠른 변화가 이곳을 관통할 때, 제 자리를 지켜온 『숲 속의 섬』.
자신은 손님을 맞는 ‘아주머니’, 장사하는 사람일뿐이라는 ‘아주머니’는 제 이름을 찾아가는 어쩌면 ‘찾은’ 아름다운 분이셨다.

(글 / 정혜영 : 녹색연합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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