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담쟁이들의 유쾌한 수다

2005.03.11 | 행사/교육/공지

글 사진 이호준(녹색연합 활동가)

2월 어느 날, 설도 지났으니 오랜만에 살아가는 이야기나 하자고 언니, 동생 하는 녹색연합 회원 넷이 뭉치기로(?) 했다. 친한 사람들 불러 밥 먹이기 좋아하는 윤여진 님의 옥인동 오래된 집에서 한길순 님, 윤여진 님, 박소희 님, 그리고 필자가 만나기로 한 것이다. 저녁반찬에 쓰라고 새송이버섯을 사 들고 집을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인사도 잠시 입에 손을 대고 조용히 하란다. 국회의원 보좌관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있단다.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윤여진 님의 집은 깨소금 냄새로 가득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길순 님과 박소희 님이 반갑게 맞는다. 이렇게 여자 넷이 모이니까 벌써 시끌벅적하다.

이렇게 모인 네 사람은 녹색연합 회원이기도 하고 ‘KoreaGlobe’라는 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한 사람씩 소개하면, 한길순 님은 올해 마흔 셋인 맏언니이다. 윤여진 님은 건설인협회에서 일하는데, 다양한 모임에서 활동하는 생기 넘치는 39살의 신혼주부이다. 그리고 막내인 박소희님은 함께 회원으로 있는 KoreaGlobe에서 일하고 있는 31살의 미혼여성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20대의 몸매와 고운 얼굴을 가진 한길순 님은 아직 미혼이다. 왜 아직 결혼 안 했느냐고 묻자 “20대 때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게 한 사람 때문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많은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냥 사람이 좋으면 그만인데 마땅한 사람이 없네요. 친구들에게 나처럼 욕심 없는 사람 없을 거라고 했더니, 남들은 보이는 조건을 말하는데, 너처럼 보이지 않는 잣대가 더 크고 어려운 법이라고 하더군요.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길순 님의 녹색생활이야기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채식을 해왔다는 님은 5년 전부터는 해물이나 유제품도 일절 먹지 않는다고 한다.
“채식을 하게 되면 자신의 몸을 소중히 하게 되는데, 저절로 주변의 환경을 돌아보게 되거든요. 그러면 삶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저는 채식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환경주의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또 시장바구니는 기본으로 들고 다니고 불가피하게 랩을 쓸 때는 씻어서 몇 번이고 다시 쓴다고 한다.
“5만원이면 고칠 수 있고 9만원이면 살 수 있다면 새로 구입할 수 있을 때 당연히 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경제논리에 불과하지요. 중요한 것은 지구를 위한 논리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앉은 박소희 님은 이야기하는 내내 정말 대단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서울에 온지는 1년 쯤 되었어요. 처음에는 아는 언니 집에서 함께 살다가 2개월 전에 내수동의 빌라로 이사했지요. 그전부터 환경에 관심은 많았는데, 실천하는 것은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에요. 윤여진 언니를 통해서 녹색연합 회원이 되었는데, 앞으로 두 언니들을 통해 많이 배울 생각이에요.”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으려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좀 떨어진 부엌에서 윤여진 님이 저녁을 준비하고 있나 보다. 함께 온 막내 박소희 님은 그냥 앉아 있을 수 없겠는지 부엌으로 자리를 뜬다.

우리도 뭐라도 해야 밥을 얻어먹을 것 같아 함께 부엌에 갔다. 어느새 저녁밥상이 다 차려져있다.
오늘의 주제는 소박한 밥상. 한창 제철인 굴회와 미역국, 버섯볶음, 잘 익은 김치, 그리고 현미밥이 먹음직스럽다.  
밥상을 앞에 놓고 한길순 님은 뭔가를 꺼냈다. “오늘 우리, 밥상을 위한 기도를 하면 어떨까? 난 말이야 이 기도문을 보고 첨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우리는 그렇게 감사 기도를 하고 공손하고 천천히 식사를 했다.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도 빨리 끝내고 귤 몇 개 앞에 놓고 2부가 시작되었다.



부부문제 전문가임을 자처하는 윤여진 님은 한길순 님과는 1999년 천주교 묵상기도모임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 후 서로 힘든 시기를 넘기면서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윤여진 님은 한길순 님이 이은 녹색담쟁이 회원이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환경이잖아요? 환경이라는 게 자연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늘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환경이다.
한참동안 부부란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윤여진 님은 음식솜씨는 날로 늘어가지만 녹색생활은 아직 몸에 잘 배지 않는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머리 속으로는 되는데 실천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말에 맏언니 한길순 님이 한마디 한다.
“내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남편도 없다보니 정말 조카를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갯벌로 쓰레기 매립장으로 잘 데리고 다녔거든요, 그래서 낭비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너무 싫어해요. 어릴 때 본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영어도 왜 조기교육 하잖아요? 환경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의 체험이 생활습관을 좌우하니까요. 인이 박혀야 하는 거죠.”



어느덧 10시다. 안방에서 윤여진 님의 남편이 나와 일이 있어나가는데 1시까지 들어오겠단다. 그래서 우리도 이 열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윤여진 님의 집 근처 찜질방에서도 우리의 수다는 이어졌다. 그리고 유쾌한 녹색담쟁이들의 작지만 소중한 생활 속 녹색 삶도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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