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자전거가 녹색연합으로 들어왔다

2005.06.21 | 행사/교육/공지

글, 사진 : 김효정(녹색연합 백두대간보전팀)

이혜원 회원을 만나러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홍대입구역에서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많은 사람 틈에서 한 눈에 혜원씨를 알아봤다. 174cm의 훤칠한 키에 시원한 외모. 어딜 가도 눈에 띄는 외모다. 사무실에서 겨우 몇 번 지나치며 인사한 게 전부라 어색하지 않을까 했는데 혜원씨는 마치 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허물없이 나를 대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혜원씨 옆에는 자전거가 있었다. 자가용이라고 소개했다. 자전거로 장장 2시간이나 걸리는 녹색연합까지도 자전거를 이용한단다. 먼 거리를 자전거로 다니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래서 좋다고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리고 갈 수 없으니 자전거 타기를 실천하게 된다고. 주차할 공간마저 변변치 않은 서울에서 자전거 타기는 꼭 필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나 걷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서울의 도로 교통 체계가 혜원씨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나는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하나에 차를 시켜 놓고 본격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거리낌 없이 술술 풀어놓는 혜원씨의 속 얘기를 듣다보니, 그녀의 외모에 감추어진 또 다른 매력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겸손한 표현이었겠지만 자신은 대학 다닐 때도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요령 피우지 않고  지긋하게 해내는 일을 좋아하고 잘했단다. 지난 지구의 날 행사에서 빛을 발한 혜원씨의 오색천 작품도 손으로 한 땀 한 땀 떠서 완성한 것이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천에 헌 옷가지를 이용하여 해, 도롱뇽, 나무 등 갖가지 자연의 모양을 본뜬 후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을 해 완성했다는 오색천을 녹색 연합 사무실로 가지고 온 날 오색천의 아름다움에, 혜원씨가 들인 정성에 모두들 감탄 했었다.


지구의 날 행사로 몸살이 다 났을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지 상상이 간다. 혜원씨는 그렇게 동기 부여가 되는 일에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태워버릴 정도로 몰입하는 경향이 있단다. 우스개 소리로 “혜원씨, 녹색 연합에 발목 잡혔어요.”라고 했더니 “그러게요. 그래도 싫지 않은 게 다른 곳이라면 쉽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뭣 하러 사서 고생이냐고 할 텐데 녹색 연합은 제가 의미를 두고 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가치 있게 여기잖아요.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찾은 기분이에요.” 그렇게 혜원씨는 곧 열리게 될 국제 포경 위원회 고래 캠페인에 사용할 오색천 작업까지 맡게 되어, 녹색 연합 활동가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고래 캠페인에 사용할 오색천을 만들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건네받은 두꺼운 고래 관련 책으로 요즘은 고래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한다. 생명운동공부모임, 나눔 녹색 강좌, 지구의 날, 고래 캠페인에 참여하고 활동하면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가지 사회 이슈나 현상들이 결국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활동이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대안 생리대를 만든다는 얘길 처음 듣고 ‘생리대도 직접 만들어요?’라고 했던 혜원씨가 이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녹색 연합 식구들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어찌 보면 무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혜원씨는 자신을 손님으로 대하지 않는 활동가들의 유난스럽지 않은 태도가 좋단다. 지구의 날 행사 준비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한 활동가가 건네 준 분홍색 보자기에 싼 묵직한 천연 비누가 무척 인상적이었고 감동을 주었다고도 했다. 시골의 풋풋한 정겨움 같은 것이 느껴졌단다. 수고를 돈으로 보상하면 사업상의 거래로 끝나는 반면, 고민의 흔적이 있는 선물을 받으면 거래 이상의 느낌이 전해진다는 혜원씨의 말에 공감이 갔다. 외모에서 풍기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푸근함이 느껴졌다.

미대를 졸업하고 몇 가지 일을 해보았지만 자신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뭔가가 늘 있었다고 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끊임없이 뭔가를 갈망하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지난 3년간은 거의 은둔 생활을 하며 지냈단다. 작년 말부터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뛰어들고 싶은 의욕이 생기던 즈음, 올 초 녹색연합 총회에 참석해달라는 전화가 결정적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거기에다 반가운 사람으로부터 연락도 와서 올해는 예감이 좋다. 녹색 연합 활동을 통해 혜원씨가 갈망하는 것들이 채워지길 바라고 좋은 인연도 만났으면 좋겠다.



앞으로 미술 치료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 꼭 해보고 싶다고 혜원씨는 말했다. 혜원씨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녹색 연합 활동이 갖는 의미도 크고, 새로운 공부도 시작해야 하고. 최근엔 역사 박물관대학에 등록해서 한국의 전통 문화 강좌를 매주 수요일마다 듣고 있다. 4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되는 강의가 의외로 흥미롭단다. 지난 시간에는 백두대간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고 하면서 백두대간 보전팀에서 활동하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백두대간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났다. 밤을 새워도 다 못 끝낼 얘기지만 늦은 시각이라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게 자리를 떴다. 그 사이에 비가 내렸나보다. 도로가 촉촉이 젖어 있다. 자전거가 걱정되어 둘러보니 다행히 말짱하다. 잠시 내렸다 그친 비가, 혜원씨 자전거가 젖지 않게 비를 가려준 건물 처마가, 진솔한 얘기로 즐거운 만남을 채워준 혜원씨가…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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