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너 고맙다.

2006.05.12 | 행사/교육/공지



시간이 갈수록 글쓰기가 무척 어렵다. 몸이 느낀 것은 거짓이 없고, 쥐어짜는 글짓기는 마음을 온전히 보이질 못한다는 진리에 이젠 글 한줄 적기 힘들구나하고 느끼던 차다. 어릴 적, 아마 그때는 무엇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읽었던 책 한줄 기억하는 것이 자랑이었다. 글짓기대회나 사생대회는 온전히 마음에 따르기보다 정돈된 기억이나 누가 잘 칠한 그림에 덧칠하는 꼴이었다. 그것도 장려상, 우수상 한 장이라도 받을 요량으로 애썼던 것이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들은 그리 애먹을 것도 없다. 현재 나의 생각과 행동에 결정적인 ‘그것’을 하염없이 늘어놓으면 된다. 상장을 바라는 글짓기도 아니기에.

날 이렇게 만든 요사스런 것들. 자본이나 경제의 눈으로 보자면 하찮은 쓸모없는 것들. 바보스런 인생의 목표를 변함없이 만들어 놓은 버릇없는 것들. 바다를 둘러싼 행복한 모든 것들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부산시 영도구 청학1동 바닷가의 머리가 하얗게 샌 갈매기섬. 우선 너 참 고맙다.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 ‘상훈아, 상훈아, 이 놈아 밥 식는다’며 어머님의 안달난 목소리가 하필이면 바닷가에 퍼져 고맙다. 큰 파도가 몰려오면 떠내려 온 갯것들을 담아보겠다고 쥐고 나가던 빨간 ‘다라이’, 너 우리 집 마당에 있어 고맙다. 사춘기 고등학교 시절, 없던 낭만도 눈물도 무럭무럭 자라던 시절. 가로등에 비친 바다는 금빛 병정들의 싸움터였다. 너도 고맙다. 바위게 몇 마리 이곳저곳 뒤져와 놀던 책상아, 그곳에 있어 고맙다. 자율학습 땡땡이 쳐, 앞서거니 뒷서거니 뛰어가던 곳이 바다길이어서 고맙고, 땀 흘려 오른 산에 펼쳐진 광경이 태평양의 너른 품이어 고맙다.


일렬로 영도다리 난간에 걸치고 앉아 ‘캬–‘하고 들이키는데 때마침 갈매기 날아 고맙고, 분위기 맞춰 뱃고동 울리며 들어오던 고깃배야, 고맙다. 이른 아침, 거 참, 육자배기 걸쭉한 아지매의 입담에서 ‘짠내’나 고맙고, 좌판에 깔린 고등어도 두 눈깔 싱싱해 고맙다. 시인 이생진이 먹은 것도 해삼이고, 마신 곳도 방파제여서 고맙다. 그래,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한 것은 바다여서 더더욱 고맙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흔들리는 소나무, 힘겨워 보이는 조랑말 한 마리, 보면 볼수록 슬퍼지는 허리 굽은 할배에게 몰아닥친 것이 ‘바닷바람’이기에 고맙다. 정태춘의 노랫말 마냥 서해 먼 바다 위에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와서 고맙다.

주꾸미, 밴댕이, 너희들, 계절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알을 까라. 부안 계화도 살금 포구의 짱뚱어야, 살아나라. 군산 비응도 포구에서 퉁퉁 불어 떠 오른 상괭이, 여수 소리도에서 다시 헤엄쳐라. 안되겠니? 그러면 얼마나 고맙겠니.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조기떼 산란하는 그곳이 칠산바다여서 고맙고, 위도의 집나간 며느리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와 고맙다. 영산강따라 몽산포구까지 애써 올라온 알찬 숭어 고맙고, 실뱀장어 질긴 목숨 고창 풍천강 올라 고맙다. 임진강에 황복도 오르고, 양양 남대천으로 연어도 끈질기게 올라라. 고맙게 올라라.

괜하게 따라나선 바닷길, 불평 한번 없었던 친구야, 고맙다. 칼바람 부는 날, 고흥의 어느 무인도에서 함께 손 녹인 벗 고맙고, ‘가히 살만한 섬’을 지켜준 님 고맙다. ‘난 ‘게’ 없인 못 살지만, 정치하는 인간, 갯벌 간척하는 인간들…아흐’ 외치던 욕심 없는 님 만나서 참 고맙다. 바다와 함께 할 님 있어 고맙다.

날 바다에 그토록 미치게 만들던 너. 네가 나여서 더없이 고맙다.

글 : 윤상훈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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