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2003]’죽음의 굿판’을 멈추게 한 ‘색채의 굿판’

2003.05.15 | 미분류

글 윤주영(자원활동가)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조상들은 태양을 광명신이라 하여 대자연의 주재자로 섬겼습니다. 흰색은 대자연의 주재자인 태양을 상징하는 색깔로 여겨졌고, 이런 믿음 때문에 백의민족(白衣民族)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흰옷의 비경제성 때문에 고려 건국 초부터 흰옷을 입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수십 차례 내렸지만 그 금지령은 지켜지지 않았다 합니다. 또한 나라의 기틀을 다시 세운 절대군주인 조선의 태종조차도 ‘흰옷에서만은 내가 졌다’고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의 백의선호는 뿌리가 깊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염색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흰옷을 입었을 뿐이라며 ‘백의민족(白衣民族)’이란 말을 폄하합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도 아름답게 너울거리는 오방색의 조화 앞에서는 거짓으로 스러져갈 뿐입니다.

풍물패 길놀이의 굿머리 장단은 휘모리에서 된삼채로 빨라지다, 느린 갠지갠으로 느려지다, 다시 휘모리로 되돌아옵니다. 빨라지고, 느려지는 장단에 맞추어 풍물패의 옷자락은 청(靑), 백(白), 적(赤), 흑(黑), 황(黃) 오방색를 내뿜으며 선드러진 춤을 춥니다. 풍물패의 옷 색깔로 쓰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오방색은 우리 조상들의 생활 깊숙이에 자리 잡았던 색입니다. 생활의 향기가 베인 친근한 오방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이라는 다섯가지 방위를, 즉 온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방색의 조화는 세상의 조화요, 자연의 조화입니다. 오방색의 선드러진 춤사위는 그 자체로 자연의 조화로움을 보여준 것입니다. 더불어 그 아름다운 색채들은 자신을 폄하하는 습성에 길들여져 내동댕이친 ‘백의민족’ 속에 담긴 순백함을 다시 되짚어보게 합니다. 자연을 경애하던 조상들의 순백한 마음을 조금씩 내 마음으로 스며들게 합니다.

붉으락 푸르락하다, 누랬다, 하예지다, 거무스름해지는 오방색의 굿판이 펼쳐지던 곳은 남인사동 마당이었습니다. 이 굿판의 주인공은 한양대 인문대 풍물패 ‘해방소리’입니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출발한 풍물패의 길놀이가 온 마을을 휘저으면,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들어 온 마을이 들썩이곤 했습니다. 비록 남인사동 마당은 한 마을쯤은 휘저어야 할 것 같은 풍물패들에게 턱없이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길놀이의 흥겨움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흥겨운 소리에 행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었고, 여기저기서 카메라는 빛을 뿜어댔습니다.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풍경에 여느 때보다도 카메라를 움직이는 손길은 바빠 보였습니다.

오방색의 굿판과 함께 생명의 소리는 깨어납니다. 생명의 소리는 새만금의 생명들을 대신한 소리입니다. 풍물패가 동그랗게 방울진을 감으면 역동적인 굿머리 장단이 느린 풍류굿으로 자자들고, 새만금의 숨소리도 함께 커졌다 작아집니다. 길놀이의 끝을 맺는 것은 춤굿입니다. 자연의 조화를 말하는 오방색과 새만금 생명의 소리를 대신한 풍물이 신명나게 어울어졌습니다. 길놀이의 신명은 새만금의 죽음을 불러온 ‘죽음의 굿판’을 저만치로 쫓아냈고, 길놀이가 끝난 남인사동 마당은 색채와 활기가 가득 차올랐습니다.

여세를 몰아 사물놀이가 이어졌습니다. 사물놀이의 사물인 꽹과리, 장구, 북, 징은 각각 별, 인간, 달, 해를 상징합니다. 사물놀이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부르는 노래인 셈입니다. 길놀이가 닦아놓은 생명의 터는 사물놀이로 활기가 더해집니다. 꽹과리(용남석 00), 북(김선문 97, 김두리 01), 장구(이태봉 94), 징(차영민 01)이 삼도풍물을 펼칩니다. 충청도의 칠채, 육채 장단으로 빠르게 휘몰아치다, 투박하고 남성적인 색채를 지닌 경상도의 별달거리으로 변합니다. 그러다 전북 임실군 필봉의 마을굿인 마당삼쇠로 이어지고, 다시 충청도 소리로 돌아와 격정적인 삼채, 이채로 끝이 납니다. 삼도를 순례하고 난 치배(연주자)들의 이마엔 땀이 송송히 베어있습니다.

‘산이 죽으니 강이 죽고
강이 죽으니 바다마저 죽어갑니다.
북한산과 지리산이 죽고
낙동강이 죽어가니 새만금 갯벌도 죽어가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은 온통 죽음의 굿판입니다.’

삼보일배를 시작하며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경스님의 말씀입니다. ‘죽음의 굿판’은 풍물과 오방색이 신명나게 어우러지는 ‘색채의 굿판’에서 멈추어졌습니다. ‘색깔의 굿판’에서 새만금 생명들이 팔딱이는 생명의 잔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면, 낙동강이 살고 북한산과 지리산이 살아납니다. 그리하여 산이 살고 강이 살고 바다가 살고, 대한민국이 살아납니다. 새만금 갯벌은 대한민국의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입니다. 대한민국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새만금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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