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규석선생님이 들려주는 농지보전운동의 의의와 전략
5월 12일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대구에서 전국 녹색연합 활동가들이 모였습니다. 대구 녹색연합 사무실에 모여 2000년 농지지킴이운동 사업을 설명하고 추진계획을 논의한 후 천규석 선생님을 모시고 농지보전운동의 의의와 전략을 들었습니다. 이번 테마뉴스에 천규석 선생님의 발제원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소비와 진정한 자치민주사회를 위해” 전문을 싣습니다. 바쁘신 일정에도 시간내셔서 좋은 말씀 해주신 천규석(대구한살림 이사) 선생님, 이재성(영남대 식품공학과 교수)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소비와 진정한 자치민주사회를 위해” / 천규석(대구한살림 이사)
제레미 레프킨은 그의 책 <바이오 테크시대>에서 16세기초 잉글랜드의 튜터왕조 때 마을공유지의 사유화를 합법화한 <엔크로우즈 법령>을 제정한 이후 지난 500년간의 인류 역사는 지구 생물권을 구성하는 거대한 생태계를 영리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울타리치기 투쟁사라고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금의 유전자 풀을 특허내기 위한 전 지구적 유전자 전쟁은 그 엔크로우즈 사유 독점 투쟁사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500년전 <엔크로우즈 법령>제정 이후만의 일이겠는가? 300만년 전 인류시작 때부터 인류사는 이 <땅따먹기 경쟁>, <땅에 울타리치기 전쟁> 곧 <생태계 독점 투쟁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땅이 생명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가시적 독점 울타리치기가 한계에 도달하자 이제는 생명공학이라 이름으로 생태계의 마지막 신비인 유전자에까지 <지적특허>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울타리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은 독점이 아니라 생태적 평형이다. 생태계는 순환과 재생이라는 평형없이 한시도 지속이 불가능하다. 생태계는 상호의존적으로 열린 세계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말뚝박기 등 독점적 폐쇄로서는 지속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늘의 세계체제인 WTO와 그 지속에 있는 <생명공학>이 땅의 말뚝질에만 그치지 않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 그 자체까지 독점해 제 땅에 세워두고 모든 생명을 식민지화함으로써 오늘의 생명존재를 한 치 앞도 전망할 수 없는 절멸로 몰아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모든 시민운동, 사회운동의 당면 주적과 과제는 생명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WTO와 생명공학체제이고 이의 극복이다. 이 체제를 저지 내지 해체하는 방법으로, 지난번 시애틀 WTO각료회의를 저지시킨 세계 5만(비정부기구) 시민의 저항도 그 한 가지 예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다.
비정부기구 시민이라지만 그들도 그 비싼 비행기 값과 숙박비를 지불할 수 있는 선택된 소수이거나 다수의 뜻을 위임받은 대표자일 뿐, 세계 민중 전체가 다 동참할 수 있는 운동방식이 아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비행기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 자체가 바로 WTO체제가 바라는 바고, 그를 온존시키는 세계체제내적 투쟁이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대안은 WTO라는 시장의존을 생활 속에서 절연하고 그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삶의 단위를 지역 두레적으로 자급자족 자립화해야 하는데 우리가 아는 한 자급자족으로 사는 유일한 길은 농업중심의 지역두레 사회밖에 없다.
따라서 WTO와 생명공학 세계시장지배의 독재체제로부터의 독립투쟁은 땅지키기와 땅 중심의 두레 삶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 생명의 지속 생존과 진정한 자치 민주주의는 땅에 토대하는 순환 재생의 농업두레밖에 달리 없기 때문이다.
땅 지키기를 위한 당면한 현실적 저항과 대안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농지소유 상한제 재도입
3ha 이하의 농지소유 상한제가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철폐되고 지금은 농사목적이라면 한 재벌이 대한민국 농경지를 다 독점해도 제재할 법이 없다. 그 예가 현대 재벌의 공유수면 매립으로 독점하고 있는 3천만평의 농경지다. 동아그룹도 매립 농경지 1천만평의 공장용지 전용을 획책하다 일시 중단된 것으로 안다.
현재의 농촌여건에서는 농지소유 상한제를 종전보다 좀 높여 2만평 내지 3만평으로 제한함이 타당할 것 같다.
2)도로, 공단, 위락시설 등으로의 농지전용을 저지하기 위한 전 국민 땅갖기 운동과 그 네트워크 조직
3)2차 농특자금 47조원을 지역 두레답(마을 공유지)의 복원 자금으로 돌리기 위한 청원, 서명, 시위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42조원의 농특자금이 농민 10인당 1명, 농가 3호당 1명 꼴로 농업 예산만 축내고 사는 농업귀족들의 살판난 잔치로 끝난 전철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뜻있는 젊은이들의 귀농을 위해 이 자금을 사라진 두레농지(국유지)복원자금으로 꼭 돌려놓는 것이 진정으로 농업을 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예산집행이 될 것이다.
4)버섯 재배 등 시설농을 농업생산물 아닌 제조업으로 분류하고 부가세를 징수하여 농민과 당국간이 마찰을 일으키는 사례가 있다.
생명(식물)을 북돋우고 길러서 먹는 산업을 농업, 원료가 농산물이든,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간에 그것을 깎고 부수고 가공함으로써 생명을 죽이고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일을 제조업으로 명백히 세법에 규정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지나친 규모화의 시설농(유리온실 등)이 작은 규모의 제조업 못지 않게 반 생태적, 반 지속농이기 때문에 일정규모(예컨대 2천평) 이상의 시설농이나 일정액(예컨대 1억원)이상의 수입이 있는 경우에는 제조업으로서의 부가세가 아니라 을류농지세 등의 기존세제로 그 생태파괴의 대가를 사회적으로 환원시킬 필요는 있다.
이상과 같은 현실적 저항과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 세계를 위한 땅지키기는 다음과 같은 이상적 대안을 단계적으로 실천해 가야만 한다.
1)소농두레 귀농과 삶의 지역 자급자족화
2)지역 두레 단위의 자립확대와 자치력 고양
3)유기농에서 공생농으로
4)시장의존의 최소화로부터 완전독립
5)기업농, 수출농의 해체와 전지역의 소농두레 자치화와 그 지구적 네트워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