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과 산양을 위한 전국순회강연 –
순회 강연을 떠나면서…
어둠 속에서도 설악산의 모습이 보인다. 설악산에 드나든지 30년만에 내가 설악산의 품속에 들었고, 설악산이 내 속에 들어왔다.
힘차게 뻗어내린 산줄기, 하늘을 찌를듯한 봉우리들이 내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산줄기에 기대어 식물들이 뒤덮었고 골짜기 깊숙이 짐승들의 보금자리가 깃들여 있었던 설악산, 그 품속에 들어 감동의 순간들이 이어지던 때를 기억한다. 때마다 산풀꽃들이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이루던 설악산, 구름 안개로 뒤덮힌 천지창조의 모습으로 다가서던 설악산, 바위능선을 넘어가던 한무리의 산양을 보고 가슴이 고동치던 설악산, 위험과 고난을 통해 겸손을 가르쳤던 설악산, 어머니처럼 따뜻하고, 강한 모습을 통해 내 삶을 풍요롭게 해주던 설악산을 기억한다.
이런 기억들이 가슴속에 쌓이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근육에 힘이 불고 성숙한 모습으로 삶의 한가운데 우뚝 섰을 때 내 삶의 바탕을 이루었던 어머니는 늙고 병들어 누웠다. 아프고 힘든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인들 마다할 것인가.
지금 설악산은 지치고 병들어 누웠다. 속살 깊이 썩어 가고 있다. 넘치는 탐방객, 오직 정상만이 목표인 등산객, 넓고 깊게 패인 등산로, 음식점과 숙소로 바뀐 대피소, 탐방로 음식점들의 혼잡과 호객행위로 인한 불쾌감, 중창불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절들, 품속에 깃들여 살던 물짐승들도 모두 떠나가고 설악산을 위로할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다. 국립유원지의 타락한 모습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어머니는 병든 모습을 알리고 살릴 수 있는 힘을 모으기 위해 어디라도 갈 것이다. 이번 일은 설악산을 위한 조그만 일에 지나지 않지만,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큰일의 시작이기를 빌면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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