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말>
1993년 일본 도쿄에서 처음 시작된 반핵아시아포럼(NNAF, No Nukes Asia Forum)은 올해로 32년을 맞이했다. 지난 30년 동안 포럼은 핵산업과 각국 정부의 핵 진흥 정책에 맞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아시아 시민사회의 소중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제22회 반핵아시아포럼은 5월 15일부터 21일까지 7일간 대만에서 열린다. 이번 포럼에 모인 아시아 반핵 활동가들은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한다. 5월 17일, 마안산 핵발전소의 가동이 중단되며 대만은 공식적으로 ‘운영 중인 원전이 없는 나라’가 된다. 이는 수십 년간 독재 정권에 맞서 온 대만 탈핵운동의 결실이자, 오랜 시간 연대해온 아시아 활동가들 모두가 기뻐할 성과다.녹색연합은 반핵아시아포럼 현장에서 각국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기획 연재로 소개한다.

▲DJ 자니어는 ‘핵 없는 바탄운동 네트워크(NFBM, Nuclear-Free Bataan Movement Network)’의 전국 코디네이터다. 그는 현재 BNPP 재가동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필리핀의 바탄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한국의 탈핵운동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1970년대 마르코스 독재 정권이 착공한 바탄 원자력 발전소(BNPP, Bataan Nuclear Power Plant)는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핵사고의 여파, 그리고 필리핀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 속에 1986년 건설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재가동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맞서온 시민들의 투쟁은 필리핀 반핵운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만에서 열린 2025 반핵아시아포럼(NNAF)에 참가한 필리핀의 세 활동가—DJ 자니어, 엔리케 베렌, 조슈아 카마초—는 BNPP 해체를 위한 40년 투쟁의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40년 전부터 싸우고 있습니다
DJ 자니어는 ‘핵 없는 바탄운동 네트워크(NFBM, Nuclear-Free Bataan Movement Network)’의 전국 코디네이터다. 그는 현재 BNPP 재가동 반대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NFBM은 필리핀 전역의 반핵 운동가들이 모인 네트워크로, 정부가 추진하는 핵 정책을 면밀히 감시하고, 민중들의 반대 여론을 조직하고 확산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해 DJ는 이렇게 말한다
“바탄 원자력 발전소는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필리핀 역사 속 독재, 부패, 외세 개입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이 ‘죽은 괴물‘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싸우고 있습니다.이 발전소는 1980년대부터 4만 건이 넘는 결함이 발견되었고, 국민들에게 23억 달러의 부채를 남겼습니다. “
“올해는 특히, BNPP 반대 시위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던 1985년 ‘웰강 바얀(Welgang Bayan, 민중 총파업)’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당시 바탄 지역 전체가 3일간 멈춰설 만큼 거대한 투쟁이었고, 우리는 그 역사적인 총파업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청년의 힘으로 이어지는 싸움
조슈아 카마초와 엔리케 베렌, 두 사람은 NFBM의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필리핀 반핵운동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엔리케 베렌은 NFBM Youth 위원이자 청년환경단체 YoungBEAN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바탄 지역과 필리핀의 탈핵운동은 단순히 지역 문제가 아닌 국제 연대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BNPP는 여전히 재가동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이를 막기 위해 교육, 조직화, 국제적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탈핵은 국경을 넘어 실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특히 한국의 탈핵운동과 청년 간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 플랫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양국 간 공동 캠페인과 문화적 저항, 온라인 연대 활동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조슈아는 지역 학교와 공동체에서 서명운동과 캠페인을 펼치며 청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는 BNPP 건설 중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웰강 바얀’ 투쟁을 언급하며, 필리핀 반핵운동의 뿌리 깊은 역사와 현재 청년 세대의 움직임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강조했다.
“필리핀 반핵운동에서 중요한 순간 중 하나는 ‘웰강 바얀(Welgang Bayan)’입니다. ‘웰강 바얀’은 타갈로그어로 ‘민중 총파업(People’s Strike)’을 뜻합니다. 이 총파업에는 여성, 청년, 남성, 어부, 지역 주민 등 약 3만 3천 명의 필리핀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1980년대에 있었던 이 운동은 바탄 원자력 발전소(BNPP)의 재가동을 막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청년들은 과거의 반핵 투쟁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산을 배우고,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죠.”

▲ 포럼 마지막 날 대만국립사범대학교에서 만난 필리핀 반핵 활동가 조슈아(왼쪽)와 엔리케(오른쪽). 두 사람은 NFBM의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필리핀 반핵운동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핵발전소 고리 2호기와 BNPP의 위험한 연결
세 활동가는 한국수력원자력(KHNP)의 BNPP 재가동 협력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DJ는 한국의 고리 핵발전소 2호기와 BNPP가 설계도 같은 ‘자매 원전’이라는 사실도 짚으며, 찬핵 진영이 이를 근거로 BNPP의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는 현실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찬핵 세력은 ‘고리 2호기도 문제없었으니 BNPP도 안전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억지 주장에 계속 맞서 싸워야 합니다. BNPP는 노후 설계, 화산지대 인접 입지, 그리고 방사성 폐기물 관리 부재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한국은 현재 필리핀 에너지부(DOE)와 협약을 체결하고, BNPP 재가동을 위한 타당성 조사와 기술 검토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위험한 입지를 무시한 채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기술 수출을 넘어 정치적·군사적 동맹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SMR(소형모듈원자로)의 도입 논의가 팔라완, 세부 등 섬 지역에서도 진행 중이며, 이는 미국·일본과의 연계 하에 동남아시아 시장 확대를 꾀하는 흐름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게 강력히 요청했다.
“제발 여러분(한국수력원자력)의 핵을 우리나라에 수출하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나라에 무언가를 수출하고 싶다면, 재생에너지를 수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핵을 우리나라에 수출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은 단지 자신의 문제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엔리케 역시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최근 행보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필리핀 시민으로서, 한국수력원자력(KHNP)이 바탄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반대자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 사업은 우리 공동체와 가족, 환경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게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부디 이 프로젝트를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나라만이 아닌, 인류 전체를 위한 진정한 공공선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5년 반핵아시아포럼 청년 워크숍 직후 모인 필리핀, 일본, 한국의 활동가들. 양쪽 끝에 엔리케(왼쪽)와 조슈아(오른쪽)가 NFBM의 피켓을 들고 있다. .
연대의 구호, “Battan Nuclear, Lansagin! Lansagin”
DJ는 “필리핀 국민의 63%, 바탄 주민의 85%가 핵발전에 반대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한국의 활동가들에게 적극적인 연대를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는 국제연대를 통해 한국의 핵 수출 시도를 견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압박을 강화하고, 법적 대응이나 반핵 소송,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금 마련 활동을 함께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그린워싱’을 폭로하는 목소리를 아시아 전역에서 높여야 합니다.”
엔리케와 조슈아 또한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필리핀의 청년으로서, 우리는 모든 아시아 공동체와 연대하고 지지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단지 우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모든 세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엔리케)”
“협력과 집단적 행동은 국경과 문화, 각자의 운동을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긴밀히 연결된 세계에 살고 있기에, 이런 행동은 언제나 깊은 의미와 실질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함께할 때, 우리의 운동과 캠페인은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조슈아)”
인터뷰 말미, 세 활동가는 바탄 지역 거리에서 늘 외쳐온 구호를 함께 외쳤다. 40년을 이어온 BNPP 반대 투쟁의 역사 때문일까. 구호는 인터뷰 장소인 대만국립사범대학교 교정을 울릴 만큼 힘차게 퍼져나갔다.
“Bataan Nuclear! Lansagin! Lansagin!”
바탄 원자력 발전소! 해체하라! 해체하라!
*위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시되었습니다.
*담당_글(기후에너지팀 박수홍 070-7438-8510/clear0709@greenkorea.org)
사진(홍보팀 김다정 070-7438-8506/geengae@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