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이 발생하고 일주일이 되던 날, 녹색법률센터는 녹색연합 서재철 전문위원과 피해 현장을 찾았다. 당시 수집한 경북 산불의 특성은 인명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과 최악의 기상 상황 탓에 불이 더욱 빠르게 번졌다는 것이었다. 며칠 전까지 화마에 휩싸여 있던 만큼 여전히 여러 대의 소방 헬기가 저수지 등지에서 물을 퍼다 나르고 있었다. 의성, 청송, 영양의 여러 마을을 방문하는 사이 경찰과 의료진을 종종 마주쳤다. 무너져 내린 건물과 시설의 잔해를 아직 수습하기 전이었다.

실화로 시작되는 산불은 언제든 또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산불이 대형화하기 전 초기에 진압하는 것과, 인근 주민을 대피하도록 하고 재산 등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산림에 인접한 마을에는 비상소화장치를 충분히 설치하여 산불이 마을에 닿기 전 미리 주택 등 곳곳을 적셔 두는 방법으로 화재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신속한 대피 명령과 관계 조직의 협력 등 산불 대응 체계의 정비 또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서재철 전문위원은 산불이 대형화하기 전, 인근 지역의 기상 상황을 고려하여 미리 주민을 대피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3월의 경북 산불은 고온, 건조, 강풍이라는 기상 조건이 맞물려 최악으로 치달았다. 기상청과 산림청의 장비만 따져도 전국에 1천여 기가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수집하는 기상 데이터를 이용한다면 산불 위험을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녹색법률센터는 산불 피해가 복구되는 경과를 확인하기 위하여 경북에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5월 중순, 산불이 발생한 지 50여 일 만에 녹색연합 활동가들과 피해 지역을 찾았다. 그동안 도시에서는 꽃이 피고 졌고 식수가 푸르게 우거졌다. 산불이 있은 후 피해 복구를 위해 시행되는 정책 중 대표적인 것이 조림 사업인데, 차창 밖으로 이어지는 산에 인공적으로 숲을 조성한다면 어느 규모로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북 지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천연기념물 ‘의성 사촌리 가로숲’에서 3km 정도 떨어진 숲이었다. 낮은 산, 까맣게 타 버린 땅에서 그사이 자라난 어린 풀과 나무, 몇 센티미터 깊이의 흙을 살펴보았다.


실뿌리에 수분이 있는 이만한 땅은 당장 조림 등 조치를 취하기보다 한두 해 정도 자연 복원이 가능할지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는데, 산이 사유지인 경우 산주가 녹화를 원하는 것도 당연하기에 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숲에서 내려와 만난 사촌리의 박기 이장은 주민 두 명을 구한 사람이었다. 귀농한 지 11년이 된 그는 이제 임시 주택을 준비하고 있고, 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이 마을을 지키기를 바란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해를 입은 주민을 모아 군과 소통하고자 준비하던 과정에서, 예정되었던 장소가 제공되지 않고 군수와 면장이 방문하지 않는 등 문제가 발생하여 해당 모임을 비상대책위원회로 대체했다. 이 마을은 사과를 재배하기에 주민들은 피해를 입은 장비와 농기계를 보전받기를 원하는데, 이를 인수하는 기간 등의 제한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당장 주택을 무너트린 현장에 대한 피해 보상의 증빙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관에서 피해 현장을 조사하러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불타 없어진 물건의 사진을 스스로 촬영하여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산불이 나던 당일, 이장의 이야기는 이렇다. 오후 2시경까지 바람이 다소 부는 날씨였고, 오후 4시 40분경 먼 산에서 불과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속에서 그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이 넘어오기 시작했고, 이장은 면장에게 상황을 알리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주민을 차에 태워 대피했다.


사촌리의 비대지라는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랐다가, 의성을 벗어나 찾아간 곳은 안동 임하면 추목리였다. 이곳은 안동에서 가장 피해가 극심한 지역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다. 경주이씨 집성촌으로 역사가 오랜 마을인데, 피해를 입은 면사무소 주변의 현장이 허허했다. 화염에 지붕과 골조가 녹아내리고 유리창이 깨진 산불 직후의 흔적은 이제 정리되어, 어느 위치에 건물이 있었는지 모르도록 빈 땅에 임시 주택의 터가 마련되는 중이었다.

현장을 살피던 녹색연합 박항주 전문위원은 재난 피해 복구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거리를 전했다. 의식주 피해의 물리적인 복구만큼 중요한 것은 재난안전법이 명시하는 정신적 손상에 대한 치료와 보상임을 인지하고, 보상에서 재산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어떻게 둘 것이고 또 지자체는 어느 범위까지 지원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재난 피해를 파악할 때는 전체 규모와 그 안에서의 상대적인 수준이 어떠한지를 고려해야 유효한 보고가 되어 상황을 알릴 수 있다. 현장을 방문하여 살펴보기 전,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은 설령 영상이 있다고 한들 제한적이다. 경북 산불은, 주변으로 이어지는 산과 땅을 타고 불이 흐르듯이 옮겨 붙어 대형화한 것이 아니라, 타오른 불똥과 불티가 강풍에 실려 날아가다가 무작위로 떨어짐으로써 짧은 시간 안에 먼 거리까지 번졌다. 이렇듯 우연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양상은 여러 현장을 살펴보면서 실제로 인식되었다.
국내 최대의 송이 생산량을 자랑하는 영덕에서는 송이 주산지의 절반 이상이 피해를 입었다. ‘생태 기반 보상’을 원하는 주민의 플래카드는 송이에 대한 보상을 의미했다. 매정리를 지나는 길,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대피 중 사망자가 발생한 요양원을 조우했고, 활동가들은 동해에 닿은 마을 노물리에 방문했다. 경북 산불이 마지막에 영덕에서 커진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해안가 특유의 돌풍이다. 노물리에는 바람에 실린 불티가 떨어지는 대로 화염에 휩싸이거나 천운으로 재앙을 비껴간 상황이 생생했다. 불타서 무너진 건물 바로 옆에 다른 건물은 피해를 입지 않은 식이었다.


피해가 심한 마을마다 임시 주택을 위한 터가 다듬어지듯, 노물리의 한편에서도 포클레인들이 땅을 고르고 있었다. 노물리의 북쪽, 석리의 경우에는 피해 현장을 정리하기가 막막했다. 해안 절벽에 주택들이 붙어 있어 ‘따개비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포클레인 같은 장비나 트럭이 진입할 수 없어 무너진 건물의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산불 당시 주민들이 방파제로 내려가 대피하고 해경이 배를 이용해 그들을 구출한 것으로 보도된 지역이다. 해안가와 맞닿지 않은 안쪽 마을에는 휴대폰 지도에서 확인되는 건물을 찾을 수 없이 공터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산불 50여 일 후의 상황이었다. 최초 발생 일주일 후보다 현장이 차츰 정리되어 임시 주택이 계획되고 있지만, 불타 버려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고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폐기물이 처리되었을 뿐 마을과 주민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한편 검게 타고 그을린 땅에서는 초록색 풀이 자라고 있었다.

50여 일보다 긴 시간이 지나면 피해 현장이 어떻게 변해 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활동가들은 2022년 산불이 있었던 울진으로 이동했다. 도화동산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 조성되었다가 2022년 울진 산불 때 다시 인근의 산불을 겪었다. (사진에서 배경이 되는 산이 모조리 탔다.) 이후 3년이 지나면서 이때 피해를 입은 산은 여러 방법으로 복원되는 중이다. 불탄 나무를 베어 내지 않고 그대로 두어 자연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산이 있는가 하면 밑동만 남기고 정리한 땅에 조림을 갓 시작한 산이 있었다. 인공 조림을 위해 심긴 소나무 묘목은 풀처럼 가늘고 키가 한두 뼘쯤 되었다. 인근에 조성 중인 밀원숲에 올라서도 같은 연령으로 보이는 소나무 묘목을 발견했고, 뿐만 아니라 키가 2m가량 자란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북 산불 현장에서 스스로 자라나기 시작한 나무들이 3년쯤 더 자라면 이만한 키가 될 모양이다. 거대한 산, 두터운 땅 속에는 그동안 싹을 틔우지 않고 잠들어 있던 존재들이 있었고, 장성한 나무들이 생을 다함으로써 생태적인 조건이 변화되어 이들이 땅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의성 사촌리의 이장은 피해 상황을 잘 전달해 달라고, 그리고 이곳을 잊지 말아 달라고 했다. 캠핑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방문객은 한동안 이 지역을 찾기가 송구스럽겠지만, 실제로 지역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힘든 때 지역을 찾는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갔던 활동가들은 피해 현장을 살펴보기 시작하며 침울함에 빠졌고, 마을에서 성화를 내는 주민의 슬픔과 원망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갈래와 깊이로 고민하게 되는 며칠이었다. 피해를 입은 주민의 몸과 마음, 가꾸고 유지해 온 생활이 회복되어 안녕하기를, 그리고 흙으로 돌아갈 생명체와 변화를 겪을 지역의 생태계가 평화 속에 순환하기를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 글, 사진 : 녹색법률센터 백운경 활동가
* 문의 : 조직팀 배채은 활동가(070-7438-8526 / chaenker@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