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식물 이식이 케이블카 공사의 대책이 될 수 없는 이유

2025.06.27 | 난개발, 백두대간, 설악산







[희귀 식물? 비슷한 보금자리 찾아주면 되잖아요!]

“케이블카 공사를 하려고 보니 그 땅에 희귀한 식물이 산다네요. 근데 대한민국에 좋은 땅이 어디 그곳뿐이겠어요? 같은 야생이니까 다른 곳으로 보내도 잘 살 거예요.”

전국이 케이블카 공사로 떠들썩합니다. 공사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희귀동식물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지요. 다른 곳으로 이식/이주하면 서식지 문제가 해결된다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닌 이유 함께 살펴봅시다.

발 없는 식물은 사람이 직접 이식해 주겠대요. 공사 훼손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 중 보전가치가 높은 아고산성 희귀식물을 뽑아다 그 주변 자생지 일원이나 유사 환경 지역에 심는대요. 기존 자생지와 광량, 습도, 토양, 해발고가 유사한 곳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그 방법 이미 실패했습니다. 사례를 함께 살펴볼까요?

  1. 무주 리조트 구상나무 100% 사망 사건

    덕유산국립공원에 무주리조트가 들어서게 되며 발생한 일입니다. 공원 내 500년 된 구상나무와 주목 군락지가 가득한 원시림을 파헤치는 이 사업이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습니다. 희귀식물을 옮겨서 키우겠다는 조건을 걸었거든요. 그런데 과연 잘 옮겨 심었을까요? 이식한 구상나무 113그루 모두 죽었고, 주목 250여 그루 중 43%가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나무들은 이름표도 떨어진 채 서서히 잊혀 갔습니다.

  2. 무주 양수발전소 노랑매미꽃/연복초 실종 사건

    무주 양수발전소 공사는 노랑매미꽃과 연복초를 옮겨 심는 조건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했습니다. 이번 결과는 어땠을까요? 환경부와 협의 내용과 다르게 엉뚱한 식물(큰제비고깔, 당개지치, 복수초 등)을 심은 것뿐만 아니라 이식 위치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식 후 생존 여부도 확인할 수 없었지요. 그리고 역시나 함께 잊혀 갔습니다. 덕유산국립공원 적상산 일대에 간직되어 있던 독특한 고산 생태계가 이렇게 파괴되었습니다.

  3. 양양 양수발전소 이식지 실종 사건

    국내 유일의 연어 회귀천이자 우리나라 식물 진화의 역사 그 자체였던 점봉산. 854종의 식생을 자랑하는 자연수목박물관 같은 점봉산에 양양 양수발전소가 들어섰습니다. 환경영향 저감방안으로 보호식물을 이식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 희귀식물인 참배암차즈기, 도깨비부채, 모데미풀 등 야생식물을 이식했다는 9곳 모두 표찰이 사라지거나 지워졌습니다. 사업처에서는 이식지 위치와 면적, 이식 후 고사 식물과 생존 식물의 개체수 역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태풍이 발생하자 이식지에 토사가 무너져내려 생존 식물 역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 라파즈 한라시멘트 사후관리 미비 사건

    국내 제일 석회암식생지역이자 솔나리, 백리향, 한계령풀 같은 희귀식물 가득한 자병산에 광산을 개발한다니 환경영향평가를 받았겠지요? 그러나 보호대상 식물을 복구, 이식하라는 협의의견을 받았음에도 대책 없이 이식하는 바람에 대부분 고사해 버렸습니다. 라벨링해 이식 관리 한다더니 역시나 잘 되지 않았고요. 이뿐만 아니라 광산 훼손지 복구 공사 시 끈끈이대나물, 루드베키아, 금계국, 아카시아, 해송 같이 외래종이나 타 지역 식물을 심어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래도 희귀식물, 이식이 답인가요?



    [희귀식물 이식,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① 모호한 이식종 선정 기준

    야생식물 보호와 관련된 기관이 환경부, 산림청, 국가유산청으로 흩어져 있어 야생식물 보호에 관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식물이 보호종인지 궁금해 검색하면 매번 다른 기관의 자료가 나오거나, 혹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야생식물에 대한 구체적인 서식 실태 자료가 없으니 멸종위기종 목록을 작성할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이죠. 어떤 식물을 우선적으로 이식해야 하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어요.

    ② 불가능에 가까운 이식 후 생존 가능성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식물이 서식하던 지역보다 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미 그 식물이 그곳에 서식했겠지요. 기존 지역의 서식조건에 오랫동안 적응한 종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경우 환경이 맞지 않아 고사할 위험이 큽니다. 이식 후 생존가능성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필수지만 대체로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습니다. 당장 빨리 다른 곳에 옮기기만 급급하니 대부분의 이식 식물이 고사한 것이지요.

    ③ 비전문적 사후 관리

    이식장의 야생식물 사후관리를 누가 해왔을까요? 식물의 생태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야생식물 전문가 주도로 이루어져야겠지요. 또한 작성된 야생식물 이식 사후관리 자료는 이후 다른 개발사업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어야 할 텐데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야생식물 전문가를 통해 사후 관리를 하기보다, 전문 지식이 부족한 내부 관계자에게 맡겨버립니다. 이식한 식물에 대한 정보, 어느 지역에 몇 본의 야생식물을 이식했는지, 현재 생존하는 개체수와 고사한 개체수가 얼마나 되는지 등 파악하지 못할 수밖에요.

[불가능한 계획 – 희귀식물 이식]

이젠 그 허상을 인정해야할 때입니다. 굴착기를 피해 도망갈 수 없는 식물은 꼼짝없이 절멸합니다. 식물 이식 방법을 철저히 지켜도 쉽지 않은 일인데, 비전문가가 대책 없이, 기준 없이 진행하는 졸속 이식/이주. 대체서식지만 확보하면 문제 없다는 거짓말에 이젠 그만 속아줍시다.

희귀동식물이 기존 서식지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더이상의 공사는 막아야 합니다. 산은 모두의 안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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