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 서로에게 응답하려는 돌봄의 관계망

2025.06.30 | , 행사/교육/공지

지난 6월 21일, 복원곰 KM53 ‘오삼이’의 생애를 통해 종복원 사업의 역사를 돌아보는 녹색연합 다큐멘터리 <야생동물통제구역>의 시사회가 아트나인 아트나인에서 열렸습니다. 녹색연합이 작년부터 이어온 ‘비인간 존재와 어떻게,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같이 고민하고 답하는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 행사였습니다.

곰 하면 떠오르는 건 아주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반달가슴곰을 본 기억과, 단군신화 속 곰입니다. 그것 외에 제가 같은 한국 땅에 사는 곰에 대해 아는 거라곤 ‘반달가슴곰’이라는 종이 있다는 것과 사육곰의 존재였습니다. 쓸개를 위해 길러지는 사육곰이 있고, 생츄어리에서 여생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이들을 구조하려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실제 곰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된 KM53, 오삼이는 종 복원 사업에 의해 태어난 개체입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한국에서 신화적, 문화적 의미를 가진 반달가슴곰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해 와 지리산에서 살도록 하는 것. 서로 섞여 살며 그 2세로 태어난 곰이 오삼이입니다. 생태학적으로는 종에 대해 객체적인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오삼의 여적을 이해한다는 건 그 이상의 일이었습니다. 도로와 민간 마을, 주택과 차로 가득 찬 산과 산 사이를 몇 번씩 오간 오삼이의 궤적은 여느 생명이 그러하듯 개체 이상의 성격과 취향, 경험에 따른 판단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는 ‘관리와 통제’ 중심의 종복원 정책을 바꾼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상영 후 진행된 발제에서 최명애 교수는 ‘응답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기존 인간 사회의 행정적 관점에서 보면 개체마다의 생명력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한다는 것은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주거지가 겹쳐있는 주민들에게 곰에 대한 이해와 안전 교육이 더 요청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과 선택, 그 변화에 맞춰 인간의 정책을 바꾼 오삼은, ‘개인/개체 중심의 권리’나 ‘복지’적 관점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관계적 관점 ‘응답의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행위자였던 겁니다. 인간 삶터인 지구의 ‘종 다양성’ 또는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곰을 들여와 지정된 구역 내에서 살도록 통제하고 매년 관리하는, 인간 중심의 관계에서 벗어나 각자의 생명력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의 존재를 더 배우고 주거지와 생활 방식을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조절해 가는 돌봄의 관계망으로 나아갈 계기가 어떻게 발생하고 발견되고 의미화되는지 그 여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이제는 볼 수 없게 된 오삼이 대신 오삼이를 만나고 기억하고 궁금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곰과 비인간 동물의 삶터로서 산을 타고 흔적을 찾으며 살아온,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활동가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역 주민을 인터뷰하며 단면적으로 곰을 무서워하거나 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삶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해 가며 공생하고 있다는 감각을 전해준 활동가의 이야기에서는, 멀리 있을수록 두렵고 싫어하기 쉽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경험한다는 건 서로의 시간과 장소를 잠시나마 나누는 일로서, 이해의 여지가 조금 더 생긴다는 것이지요. 어떤 야생곰도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운 많은 외지인의 입장에선, 현장에서 그 자리에서, 옆에서 살면서 기억하고 이해하고 경험하며 삶으로 가져온 활동가의 존재 자체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또한 나 역시 내 삶터에서부터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을 챙기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는 길고양이부터, 밤에 뒷산에 오르면 가끔 보이는 너구리, 길거리에서 병균체로 취급되는 비둘기까지. 곰이 살만한 큰 산은 아니더라도 주변의 숲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우리가 인간 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길과 틈에서, 이미 ‘야생’동물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인간이 아스팔트로 덮어버린 땅일지라도 여전히 인간 아닌 동물과 식물들의 서식지라는 것을 곱씹게 됩니다.

집을 나누는 가족만 떠올려봐도, 함께 산다는 건 서로가 생각한 ‘존재’의 경계가 항상 섞이고 변하고 조정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존재와 삶과 공간의 넘나듦,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떨 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전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공존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산에 방사한 곰들 중 ‘문제’를 일으킨 곰 개체와 그 혈통을 추적해 격리한 것이 주민과 환경단체의 사례는, 탈시설을 외치는 장애인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첫 장면은 먹히기 위해 길러지는 사육곰의 사육장 풍경을 조명했습니다. 철창 사이로 입만 내밀어 물을 먹는 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사의 제목인 <왜 어떤 (곰)은 먹고, 어떤 (곰)은 보호할까?>라는 질문처럼, 보호되는 곰이었던 오삼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종을 인간의 목적과 편의에 의해 구분하여 다르게 이용하고 관리하는 인간 사회에서, 사육곰과 반달곰을 동시에 고민하게 하는 이번 행사는 그 자체로 흩어진 존재들을 연결시키는 자리였습니다. 다큐멘터리에서 다뤄지는 오삼이부터, 현장 활동가, 연구자와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이 자리를 기획하고 만든 활동가와 이 과정을 목격한 참석자들까지. 그 연결망을 재조직하는 행위자로서, 서로에게 응답하려는 돌봄의 관계망을 만드는 일은 이미 시작된듯 합니다.

글: 참여자 현지

정리: 홍보팀 배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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