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호 우녹사 | 그곳에 녹색연합이 있었다 – 비상행동 파견 활동가 인터뷰

2025.07.15 | NEW 녹색희망

[우녹사 – 우리가 모르는 녹색연합 사람들]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파면까지 딱 123일. 4개월여의 시간 동안 광장을 꾸리고 지킨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 대개혁 비상행동’ 사람들입니다. 수십 개 단체와 연대 단위에서 파견된 이들로 구성된 그 자리엔, 녹색연합 활동가들도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대부분의 비상행동 업무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원래 맡고 있던 본연의 일로 돌아왔구요. 매일 같이 광장에 나갔지만, 실무를 맡지는 않았던 저로서는 ‘파견 활동가들 이러다 쓰러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참 많았었는데요. 정작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는 외려, ‘인터뷰에 희노애락 모두를 담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기쁨과 희망만 가득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했어요.


매일 얼굴 마주하는 활동가들이지만,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나니 조금 어색한 분위기

Q : 이제 좀 숨이 쉬어지시나요? 오늘은 그 자리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그간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눠보겠습니다. 모두 계엄 직후 거의 바로 비상행동 파견을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요,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고 또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좀 더 들려주세요.

태영 : 녹색연합은 아무래도 규모가 좀 있는 단체라, 실무를 맡아줄 활동가를 파견해야 했어요. 저는 녹색연합 조직팀장이다 보니 워낙 내부에서 챙길 게 많은 상황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서 함께 하게 되었고, 선전홍보팀 팀장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상 이중으로 팀장을 맡은 셈이라… 괜찮았다…고는 못 하겠네요. 😁 네, 힘들었습니다! 

네, 힘들었습니다! (활짝)

원호 : 자연생태팀에서도 한 명을 요청받은 상황이었어요. 생태팀 구성원을 살펴보니 신임 팀장, 신입 활동가, 한창 ASF 펜스 대응 활동으로 활동이 바빴던 활동가, 제하고 나니 제가 남네요…? 사실 작년 연말-올해 상반기에 계획한 업무가 있었는데 보고서 관련된 업무라 약간 미룰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비상행동 내에서는 주로 SNS를 맡았었는데, 제가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지라, A부터 Z까지 배우면서 역할을 맡았답니다. 

일수 : 저는 그동안 연대 활동 요청이 올 때마다 육아 때문에 조금 주저하거나 배제를 요청하는 편이었어요. 이상하게 이번에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주로 담당한 역할은 홍보물과 홍보 영상 제작, 그리고 카메라 렌즈로 광장을 담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광장에 드론을 띄우고, 무대와 트럭에서 사람들의 눈빛, 변화를 위한 열망을 담는 일을 담당했어요. 

사회, 자신 있어요!

은정 : 저는 비상행동에 파견을 가진 않았었는데요, 행진 때마다 트럭을 타고 사회를 봤어요. 매일 집회와 행진이 있었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행진 중간중간 질서를 유지하고 흥을 돋워줄 차량과 사회자가 필요했고요. 비상행동 측에서 인력 부족으로 고민한다기에 제가 자원 했죠. 사실 지난 기후정의 행진 때도 트럭을 타고 사회 본 경험도 있고. 사회자끼리 모인 텔레그램 방이 있었는데 거기서 ‘오늘 가능하신 분?’하고 메시지가 올라오면 저는 보통 다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 오늘 이렇게 파견 다녀온 활동가들과 함께 인터뷰도 하게 되었네요!

Q : 매일 광장에 있던 모습들이 떠올라요. 맡은 역할도 다 다르고, 느끼는 것도 각자 달랐을 텐데, 현장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또 어떤 장면이 남아있는지 궁금해요.

태영 : 굉장히 다양한 단체, 단위와 연대하여 메시지를 만들어 나가다 보니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많았어요. 메시지가 강하면 ‘촌스럽다’라고 피드백이 오고, 또 좀 대중적으로 만들면 ‘이래서 싸움에 이기겠냐?’ 하고. 다양한 이견을 조율하면서 밤도 많이 샜어요. 다신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또 이런 상황이 온다면? 또 우리가 나서겠죠?

진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었어요

원호 : 비상행동 SNS로 많은 분들이 DM을 보내주셨어요. 그냥 ‘힘내세요!’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자기 사는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저랑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과, 본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보내주시니까… 책임감이 더 생기더라고요.
요즘 집 주변인 명동과 용산을 걸어 다니다 보면 참 평화로워요. 저는 이 평화에 좀 울컥할 때가 종종 있어요. ‘이 평화가 깨질 수도 있었다.’, ‘또 깨지면 어떡하지!’ 싶고, 지난 12월에 떠오르기도 하고요. 아, 집회 행진이 마무리될 때 행렬의 끝에 있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지나가는 시민분들의 눈빛을 보게 되거든요. 응원하는 눈빛, 희망의 눈빛, 저희가 틀어놓은 음악을 함께 신나게 불러주시기도 하고요. 그때 저는 진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었어요. 잊지 못할 장면들이에요.

일수의 렌즈에 담긴 명동.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넓은 도로를 가득 채운 우리들의 함성

일수 : 주말에는 아침 육아를 마치고 광장에 나와야야 했어요. 아이들이랑 정신없이 아빠의 삶을 보내다가, 오후에 비상행동에 나와서 사람들을 카메라 렌즈로 보고 있으면 ‘지금이다!’ 싶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명동 거리를 보면 정말 요즘 시대잖아요. 관광객들 가득하고, 화려하고, 백화점의 네온사인도 그렇고요. 그랬던 거리에 들어찬 같은 마음들, 희망 가득한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보면서 기운을 많이 얻었어요.

은정 : 매일 광장에 나가 사회를 보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어요. 웬만해선 목이 쉬지 않는 저도 몇 달이 지나니 목이 쉬더라고요. 그래도, 트럭 위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으면 신났어요. 행진 차 앞에 어떤 분들이 오시느냐에 따라 분위기도 달랐고, 사람들이 호응을 많이 해주시면 피로가 다 풀리기도 했고요. 아, 나중에는 깃발이 엄청나게 많아졌지만, 초반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을 때였어요. 저 혼자 녹색연합 깃발을 들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녹색연합도 오셨습니다!”라고 사회자분이 외치셨어요. 그게 이상하게 뭉클하더라구요.

Q : 다른 단체들과 연대하니 더 든든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녹색연합이니까!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잖아요. 환경운동가로서 애쓴 이야기나 또 이번 광장에서 좀 더 지키고 싶었던 것들도요.
지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때 여성혐오, 동물 혐오 발언들 참 많았잖아요. 이번엔 그런 걸 최대한 없애려고 비상행동 차원에서도 애 많이 썼다고 들었는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태영 : 맞아요. 이번에는 애초에 비상행동 차원에서 평등 문화 수칙을 만들어서 계속 공지하고 매번 함께 낭독하기도 했어요. 발언문도 사전에 받아서 문제 될 만한 소지가 있다면 미리 조율했고요.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난 광장에서 봤던 그런 혐오 표현을 최대한 막으려고, 저희도 그렇고 모이신 시민분들도 다들 진짜 많이 노력했어요. 시민의식이 많이 올라가기도 했어요. ‘왜 그렇게까지’ 가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에서 논의를 시작한 거니까요.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와 다양한 목소리가 회를 거듭할수록 많이 쌓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수 : 녹색연합과 참여연대가 같이 피켓을 매주 만들지 않고 재사용하는 ‘쓰레기 없는 집회’를 제안했어요. 그게 처음엔 집행위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진 않았었거든요. 매주 새로운 주제를 피켓에 담기도 하고, 달라지는 상황들이 담기는 거니까. 한 달 반을 설득해서 결국 해냈어요. 나중에는 피켓 재사용 박스도 만들고, 분리수거 박스도 만들고. 우리가 해낸 거죠(뿌듯).

마음들이 잘 모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은정 : 이 싸움을 끝내고 연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효능감을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광장에 모였다가 이제는 흩어진 사람들이 설악산 케이블카 싸움에 연대해 주고 금강에도 연대해 주고 지리산에도 연대해 주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산양은 무대에 올라갈 수 없고 흰수마자는 마이크를 못 쥐는데, 그런 곳에도 이 마음들이 잘 모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 파견 업무가 다 끝나고 다시 업무에 복귀 했잖아요. 지금 마음에 제일 크게 남는 건 뭐예요? 그리고 회원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씀도 있으신가요?

일수 : 이번에 느낀 건, 우리가 각자 자기 역할만 잘하면 언제든 다시 유기적으로 뭉칠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우리는 비교적 큰 단체라고 생각했는데, 비상행동에 속해서 활동하다 보니 녹색연합이 정말로 작은 한 부분이더라고요. 지금 우리 사회는 집회가 끝나고 담담하게 각자 일상으로, 역할로 돌아가는 그 순간 같아요. 집회 때 열정적으로 함께 마음 모아 소리치다가, 끝나면 담담하게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잖아요. 그런 것처럼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일상을 살고 있겠지만 또 어떤 상황이 생기면 우리들은 다시 힘을 모으겠구나, 확신했어요.

태영 : 아무리 상황실 파견 활동가들이 노력해서 잘 준비를 했어도 시민분들이 그렇게 호응하고 모여주지 않았다면, 사실 그냥 우리끼리 애쓰다가 기운 빠지고 떨어져 나갔을 거에요. 직업이 있고 생업이 있으심에도, 그 긴 시간 동안 그것들을 병행하거나 내려놓거나 하면서 몇 달을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진짜 우리가, 또 제가 버틸 수 있었고 잘 싸우고 함께 이겨냈다고 생각합니다.

질서 유지할 때 항상 입던 비상행동 조끼를 고이 가져온 원호 활동가

원호 : 맞아요. 다양한 조직이 뭉쳐서 큰 힘을 내는 걸 봤거든요. 다시는 이런 일 없기를 바라지만… 또 뭘 해내야 할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파견 가야죠! (원호…파견…끄적끄적…조직은 이 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 명동 지나가다 보면 세종호텔 고공 농성하는 곳까지 이어졌던 집회 때가 생각나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저에게는 그 얘기가 여기까지 오는데 수년이 걸린 것 같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는데, 사람들이 가득 찬 명동에 사람이 빠지고 나면, 마치 명절 때 자식이 떠나가면 쓸쓸해지는 부모님들처럼 그런 헛헛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편 들었어요. 헛헛함은 여느 현장이든 있겠지만, 더 잘 채워야죠, 외롭지 않도록.

은정 : 결국 ‘우리의 의제는 어디 있었나?’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아요. 우리가 더 잘해야겠다 싶었고요. 녹색연합 회원분들도 광장에 많이 나오셨을 거고, 한 마음으로 있으셨을 거예요. 그래서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녹색연합이 거기 있었고, 진짜 열심히 활동했던 주역 중 하나였다는 것을요. 앞으로도 녹색연합이 만든 광장에 꼭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싸울 테니까요.

광장의 주역,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일수-태영-은정-원호

4개월 남짓, 짧지 않은 그 시간을 하루하루 붙들고 버텨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녹색연합 깃발을 들고, 혹은 카메라를 들고, 마이크를 잡고, 밤늦게까지 메시지를 다듬던 이들도 있었습니다. 파면이란 결말 뒤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때 마음을 모아 소리치던 우리들 모두는 다시 언제든 하나로 모일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또 확인했습니다.
녹색연합은 앞으로도 그 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낼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 다음 광장에서 꼭 만나요!

인터뷰 진행, 사진 : 이음팀 신지선, 소하연
정리 : 이음팀 신지선

‘우리가 모르는 녹색연합 사람들’에서는 녹색연합 활동가를 중심으로 녹색연합의 가치에 동의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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