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40년 고리 4호기, 이제는 멈춰야 할 때[성명]

2025.08.06 | 탈핵

– 지금은 폐로와 정의로운 전환의 시간

2025년 8월 6일 오늘, 198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4호기는 40년의 설계 수명이 다해 운영을 중단한다. 이로써 해체 작업을 앞두고 있는 고리 1호기, 수명이 종료된 고리 2·3호기와 함께 고리 1~4호기는 모두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노후 핵발전소인 고리 2,3,4호기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이에 대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단순히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을 넘어, 우리나라 핵발전과 에너지 정책의 투명성, 안전성,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계속운전을 위해 요구되는 주기적안전성평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사고관리계획서 등은 핵심적인 안전 검토 자료이지만, 고리 2호기 수명연장을 위한 심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 절차들은 법적 요건조차 지켜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주기적안전성평가 보고서는 법정기한을 넘겨 제출되었고, 사고관리계획서는 6년이 지나도록 심사가 완료되지 않았다. 원안위는 이를 문제 삼기는커녕 병행심사를 통해 사업자인 한수원의 편익을 봐주며 수명 연장을 용인하려 하고 있다. 규제기관으로서의 독립성과 책무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고리 4호기를 포함한 고리 핵발전소는 1980년대에 설계된 시설로, 금속 부식, 열화, 방사선 손상 등으로 주요 설비의 건전성이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안전 기준, 지진 설계, 테러 대응 기준 등을 충족하지 못하며, 실제로 한빛 4호기 등 국내 여러 핵발전소에서도 구조적 결함이 발견되고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수명 연장 직전 발생한 점을 떠올리면, 노후 핵발전소의 계속운전은 잠재적 중대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여기에 더해, 고리 핵발전소의 설계해수온도 초과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신호다. 고리 핵발전소는 냉각수로 바닷물을 사용하는 가압경수로 방식으로, 일정한 해수온도를 전제로 냉각 효율과 안전성이 설계되었다. 하지만 최근 기후위기 영향으로 해수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름철 부산·울산 앞바다 해수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고온의 해수는 냉각 효율 저하, 증기 발생기·펌프 과부하, 주요 계통의 열피로 누적을 초래할 수 있다. 2001년 27.8도였던 고리 3·4호기의 설계해수온도를 33.3도로 5.5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고리 2호기는 2005년 설계해수온도를 8.3도 올렸다. 설계해수온도를 3도 이상 영구적으로 상향하는 사례는 국제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중대한 안전 이슈다. 냉각 실패는 원자로 노심의 과열과 손상, 최악의 경우 방사성 물질 누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위험은 수명 연장을 통해 장기간 운전이 계속될 경우 더욱 누적되고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고리 핵발전소가 위치한 부산·울산 인근에는 다수의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것으로 학계와 정부 지질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양산단층대는 활동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2016년 경주 지진, 2017년 포항 지진 등 실제로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은 국내 원전이 결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수원은 내진 보강을 철저히 했다고 주장하지만, 낡고 노후한 핵발전소가 과연 얼마나 안전할지 장담할 수 없다. 지진 취약 지역에서의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은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무책임한 결정이다.

고리 2·3·4호기의 계속운전이 이뤄질 경우, 인근의 신고리 1~4호기, 신한울 1·2호기까지 포함하여 부산·울산·경남 일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핵발전 밀집 단지가 된다. 핵발전소가 다수 밀집한 지역에서는 한 기의 사고가 연쇄 사고로 확대될 수 있으며, 사고 대응 능력도 크게 제한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처럼 전력 상실, 냉각수 공급 실패 등이 동시에 발생하면, 복수 핵발전소의 중대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다수호기 사고 위험성은 전 세계적으로도 점점 더 경계되고 있는 핵심 위험 요소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에서 최신 기술 기준이 아닌 25년 전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미국에서 1999년 폐기된 NUREG 0555를 고리 2·3·4호기에 적용하면서도 “최신 기술 기준”이라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다. 더욱이 해당 평가서들은 주민에게 공개되지 않으며, 공청회는 한수원의 일방적 설명회 수준에 불과하다. 주민 의견은 무시되거나 형식적으로 수렴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원칙과 거버넌스에 정면으로 반한다.

일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후 핵발전소의 계속운전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는 평균 14년 이상이 소요되며, 노후 핵발전소의 계속운전은 사고관리, 설비 교체, 환경영향 재평가 등으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장기간의 건설 기간이 걸리는 신규 핵발전소와 수명연장을 위해 긴 시간이 드는 노후핵발전소는  지금 당장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하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2~5년 내에 건설이 가능하며, 발전 단가도 더 저렴하다. 사용후핵연료 저장고의 포화 상태, 고준위폐기물 처리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핵발전전을 지속하는 것은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역행하는 것이다.

고리 핵발전 단지는 부산, 울산, 양산 등 인구 밀집 지역과 인접해 있다. 원전 사고 시 수백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다. 그럼에도 지역 주민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중대사고 시나리오, 주민 보호 대책 등 핵심 정보는 공개되지 않으며, 의견 수렴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촛불과 응원봉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온 시민들의 수준과 맞지 않는 주민 배제, 밀실 행정 등의 비민주적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

고리 4호기 설계수명 만료 이후의 계속운전은 안전성, 정당성, 타당성 어느 면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활성단층 인접 지역에서, 냉각 해수온도가 이미 설계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현실에서, 다수의 핵발전소가 밀집된 세계 최대 핵발전 단지를 구성하게 될 경우, 이는 단순한 노후 핵발전소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 위험으로 직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명 연장이 아닌 책임 있는 폐로와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이다.
탈핵시민행동은 이재명 정부가 고리 4호기를 포함한 노후 핵발전의 수명 연장을 중단하길 요구한다.

2025년 8월 6일
탈핵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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