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의 문법에 익숙해진 우리는 많은 서비스들을 돈으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만큼 쓰고, 돈이 없으면 못 쓴다는 인식은 당연해졌다. 그러다 보니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 음식, 전기마저도 호주머니가 빈곤하다면 굶거나 참아야 했다. “개인이 갖춘 재정 능력으로 직접 살 길을 찾고, 끝내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자본주의식 문법을 마주할 때마다 줄곧 무력감과 분노에 빠졌다. 그래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90% 이상을 민간 기업이 맡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될 텐데, 그 전기를 만드는 주체가 공공이 아니라 민간 기업이라니. 민간 기업에게 전기 발전이 맡겨진 사회를 상상해 봤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라면 천정부지 오르는 전기요금은 말할 것도 없고, 잦은 정전에도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 등이 그려졌다. 전기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은 민간 기업에 의존할 게 아니라 공공이 앞장서서 역할과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 국민의 삶이 걸린 문제를 이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니까. 그래서 나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시작했다.
‘공공재생에너지’는 간단하게 요약하면, 민간 기업이 아닌 정부, 공기업 등 공공이 중심이 되어 투자, 소유, 운영하는 재생에너지를 가리킨다. 생활 전반에 사용되는 에너지를 민간 기업에게 맡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간 추진되려다 무산되었던 민영화 시도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철도 민영화가, 의료 민영화가 우리 삶에 미칠 타격과 위협을. 일례로 한국통신의 민영화로 기어코 치솟고 만 휴대폰 통신비를 떠올리면 전기마저 이윤 창출의 발판이 될 미래가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특히나 재생에너지는 기술력을 갖춘 에너지 사업이기에 여파가 더 크다. 전문성을 띤 사업일수록 독과점을 저지할 수단은 좁고 미약해지기 마련이니까. 정부와 국가 차원에서 중심이 되어 우리의 삶을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형광등을 켤 때마다 전기요금을 걱정하고 있지 않을까?
전기는 다른 상품처럼 비싸다고 안 쓸 수 없어서 더 큰 문제의식을 느꼈다. 올여름만 해도 지독한 날씨의 변덕에 휘둘린 참이었다. 단순히 날씨의 변덕이라 치부하기엔 여러 생명의 생사를 뒤흔든 7월이었다. ‘괴물호우’라고 불린 호남 지방의 폭우는 피해를 수습할 새도 없이 반복되어 사망과 침수피해가 속출했고, 7월 초 서울의 최고기온은 37.8도에 이르며 117년 만에 7월 최고기온에 이르렀다. 때 이른 폭염과 열대야는 역대 7월 중 최대 전력수요를 불러왔다. 냉방 없는 한낮을 떠올리면 살풍경에 가까워 몸서리치곤 했다. 유망한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올해가 제일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나는 25년 여름을 지나며 기후위기가 ‘기후만의 위기’가 아니라 ‘생명의 위기’로 읽혔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명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공공재생에너지법을 마련해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시작했다. 공공재생에너지법은 에너지원을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해야 할 당위성과 함께, 국가가 책임지고 국민의 삶을 지켜내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요청을 담았다. 물론 방식은 정의로워야 했다. 민간기업의 이윤에 국민의 안위가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산업전환에 의해 불가피해진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의 해고 위기를 외면하지 말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재난의 위협에 국민을 방치하지 않는 공공 에너지 구조를 만들 것을 요구하는 외침을 담았다. 공공재생에너지법 국민동의청원은 지난 6월 27일부터 7월 27일까지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5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해야만 국회에서 법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말에 반드시 이 청원을 통과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6월 23일부터 청원 기자회견과 홍보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정작 청원이 공개되지 않았다. 청원 요청이 많아 정식 등록이 되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는 게 국회의 답변이었다. 차일피일 미뤄지며 4일을 더 기다린 끝에 시작된 청원 초반 반응은 미미했다. 공공재생에너지라는 단어는 많은 이들에게 다소 어렵고 낯선 용어였고 이 낯섦은 청원 동의 수로 증명되었다. 청원 초반의 상승 기세가 충분히 나오지 않자 초조했다. 하루 1,000명의 동의는 청원 시작부터 열흘이 지나는 동안 고작 두 번을 넘겼다. 5만 명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루 2천 명씩은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쉽고,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좌절은 한 달 뒤에 해야 했다. 청원운동을 진행할 당시엔 그럴 시간마저 사치처럼 느껴졌다. 녹색연합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등과 함께 공공재생에너지가 뭔지, 이 청원을 왜 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공식 채널을 만들고, 홈페이지에 공공재생에너지의 필요성과 문제점을 알리는데 주력을 다했다. 틈틈이 만든 릴스를 녹색연합 채널에 공개하고, 뉴스레터를 보냈다. 회의를 진행할수록 캠페인을 진행하는 활동가들의 안색에 이따금씩 피로가 쌓이는 것을 목격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2주가 지났다.
묵묵하고도 끈질겼던 청원 독려 작업은 14일째 되는 날부터 서서히 응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7월 17일 참여연대, 정의당 등 공공재생에너지법에 동의하는 시민단체와 정당이 하나 둘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을 알리기 시작했다. 부산의 지하철 노조 게시판에는 공공재생에너지 청원을 알리는 홍보용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고, 내 고향인 인천에도 하나 둘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어 나부꼈다. 휴대폰에 직접적으로 가닿는 문자 역시 큰 힘이 되었다. 구심력과 확산의 조짐을 체감한 순간이었다. 점점 힘을 받은 운동은 사람들을 현장으로도 뛰어들게 했다. 석탄화력발전소인 서부발전 노동자였던 고 김충현의 49재 추모행사에,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에, 화물집회의 안전운임제 투쟁현장에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하고 있던 모두 손을 보탰다. 사람을 죽이는 현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현장으로 바꾸려는 열의는 공공재생에너지법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 공공재생에너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살리는 손, 돕는 손이 차곡차곡 청원에 모이기 시작했다. 7월 25일, 5만 명의 사람들이 손을 쌓았고, 공공재생에너지법 국민 동의 청원을 달성해 낼 수 있었다. 생명보다 돈을 우선할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는 손들. 한 달 동안 모여든 그 손들을 맞잡으며 나는 어느 누구의 손도 배제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서로 엉기고 기대어 살아가는 덩굴식물처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 내 목숨만큼 다른 생명의 목숨이 소중한 이들이 동의한 공공재생에너지법 청원은 현재 국민 5만의 동의를 얻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 회부된 상황이다. 이제 시작이다. 조속히 법안이 상정되어 통과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올해 12월 폐쇄되는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삶도 지켜야 하고, 기후위기 시대에 맞서 화석연료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며, 전기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누리는 서비스로 지켜야 한다. 적어놓고 보니 당연한 세상이다. 공공이 중심이 되어 국민 모두가 생을 붙들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공공재생에너지법으로 무수한 손을 맞잡고 싶다.
오송이(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이 글은 빅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