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호 초연결 | 지구의 선주민, 새들의 도시에 산다는 것 — 남상문 건축가

2025.09.16 | NEW 녹색희망, 생명 이동권

글쓴이 남상문은 녹색연합 회원이자 건축가입니다. 날곳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지요.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녹색연합 서른 네번째 창립기념행사 자리였습니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날곳’이라는 이름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들었는데요, 이후 그의 홈페이지에서 말로 다 전해지지 않았던, 좀더 선명한 날곳의 의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날곳은 때·시기·하루를 의미하는 ‘날’과 자리·장소·위치를 의미하는 ‘곳’의 합성어다. 근대가 추상화한 ‘시간’을 인간이 실제 경험하는 ‘현상’으로 되돌리고, 근대가 균질화한 ‘공간’을 고유한 삶의 ‘장소’로 회복하기 위해 장소, 사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두 번째 책 『새를 초대하는 방법』 에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사람, 관계, 그리고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함께라는 범주에는 당연히 비인간 존재, 즉 새를 비롯한 자연물 또한 포함됩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사는 곳은 어떤 장소인가에 대한 건축가의 사유 안에 ‘새’의 안위마저 끌어당기는 다정함이 제목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적대적 건축(hostile architecture)’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도시에 공간을 설계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을 일컫습니다. 노숙자가 앉거나 눕지 못하도록 만든 벤치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런데 이런 적대는 새에게도 종종 향합니다. 비둘기가 앉지 못하도록 창틀에 설치하는 철사침을 ‘버드 스파이크’라 부른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되었습니다.

『새를 초대하는 방법』 의 저자 남상문은 그와는 정반대로, 도시가 어떻게 새를 환대할 수 있을지를 묻고 이야기합니다. 비단 새만이 아니라 누구든, 또 도시만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모든 장소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환대의 시선으로 적어 내려간 짧은 글을 소개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 집안의 창문부터 활짝 연다. 동틀 무렵부터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도심 한가운데 살 땐 소음과 매연 탓에 하루 종일 창문을 닫고 생활했지만, 뒷산을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집으로 이사한 후로는 아침에 듣는 새소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도시 숲 가까이 살면서 아침엔 새소리를, 밤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시간과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큰 축복이다. 전지전능한 신을 질투한 인간이 만든 크고 작은 기계에 둘러싸여 생의 감각이 마모된 현대 대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요즘 생산되는 창호는 사생활 침해와 도시의 소음으로부터 실내 공간을 보호하기 위해 차음 성능을 높여 창문을 닫으면 웬만한 천둥이 쳐도 집 밖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창문을 닫으면 스피커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순식간에 실내가 조용해진다. 하지만 인간은 안전한 은신처에 몸을 숨겨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주변의 위험을 살필 수 있는 조망을 확보하도록 진화해 왔다. 근대 이전에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창을 크게 만들 수 없었지만, 지금은 크고 투명한 유리창이 실내로 자연광을 끌어들여 실내를 밝히고 경우에 따라선 그림처럼 아름다운 전망을 선사하기도 한다. 밖으로 시야를 개방해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선은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인간이 일방적으로 밖을 바라보는 시각적 관조에 불과하다. 투명한 유리는 거주자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지만 동시에 실내에 고립시킨다. 요즘 유행하는 교외 대형 카페에서 여러 층 높이의 거대한 유리 커튼월을 통해 자연을 액자 속 그림처럼 전시하는 것은 에어컨으로 실내 기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실내에서 안락하게 영화를 감상하듯 자연 경관을 일종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자연 속에 던져진 거대한 유리 상자는 이질적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추상화해 자연을 타자화한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바람과 물의 흔적을 느끼고 경험하며 자연을 돌보기보다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추출해 소비하고 여흥을 즐기며 자본을 축적하는 데 익숙하다. ‘추출주의’로 불리는 이러한 약탈적 경제·사회·문화 체제는 생태적 한계와 자연의 회복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연을 상품화해 교환가치로 환원한다. 물론 인간 생존을 위해 자연의 상품화는 일부 불가피하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자연의 내재적 가치와 미래 세대의 권리를 존중해 상품화의 무분별한 확장을 제한해야 한다.

투명한 유리창은 인간에게 보기 좋은 눈요깃거리를 제공하지만, 생태계에서 중요한 고리 역할을 하는 야생 조류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새는 투명창을 벽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유리 표면에 반사된 풍경을 실제 공간으로 착각해 충돌하기 때문이다. 밤늦게까지 도시를 밝히는 고층 건물의 불빛과 야간의 인공조명은 달과 별빛에 의지해 방향을 찾아가는 새들의 방향감각을 교란해 새가 유리창에 충돌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투명창과 방음벽 조류 충돌로 하루 2만 마리, 연간 800만 마리의 생명이 폐사하고 있다. 북미에서는 1970년 이후 조류의 개체 수가 30% 감소했고, 유럽 농경지에서 서식하는 조류 종수는 1980년 이후 57%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이렇게 많은 새가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1950년대 이후 식량 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된 산업화한 집약농업과 화학비료, 합성 살충제의 남용으로 새의 먹이인 곤충이 사라졌고, 농경지 확장과 도시화로 인해 새들의 서식지인 숲이 대량으로 파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들에게 위험한 도시 환경 역시 인간과 새의 공존을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다. 미국 어류·야생동물관리국USFWS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3억 4,000만 마리의 새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데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약 4만 명인 걸 감안하면 인류 문명이 인간보다 자연에 훨씬 더 가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조류 충돌을 막는 방법은 일차적으로 새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상 20미터 이내 투명창과 방음벽에 조류충돌방지 스티커나 충돌저감 장치를 설치하고 야간 인공조명의 남용을 규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새들의 서식지를 보전, 복원하고 인간과 새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생할 수 있는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를 재자연화해 다양한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생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개발로 집을 잃은 새들을 위해 도시공원이나 숲에 인공둥지를 만들고, 건물 옥상에 새들이 쉬어갈 수 있는 생태 정원을 조성하고, 새들의 섭생에 도움이 되는 자생종을 식재하고, 생태 네트워크가 회복되도록 도심 녹지를 촘촘히 연결해 야생동물의 이동 통로를 확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부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도시는 자연보다 인공물로 가득하다. 유럽 주요 도시의 녹지율은 대부분 40% 이상이지만 서울시의 녹지율은 29%, 도심 녹지율은 3.7%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에도 서울 주택난 해소를 명분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국공유지로 보유 중인 숲을 개발해 주택공급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산업화와 고도성장 시대에 유효했던 비용-편익 분석, 수요 공급의 원리로 주택 문제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 유기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재생 종이를 사용하고, 생태 교육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개발 압력을 완화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후·생태 위기가 정치 의제에서 우선순위를 갖도록 시민들이 연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책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새는 공룡의 직계 후손으로 6,600만 년 전 백악기 대멸종을 극복하고 지구에 살아남았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도시에 새가 날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유럽의 침략자들이 아메리카 선주민의 땅을 빼앗은 것처럼 새들의 도시에 인류가 도시를 만든 것이다. 새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유구한 세월 동안 지구의 선주민으로 살아왔지만 지난 70여 년 사이 인간에 의해 전례 없는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 인간은 과연 무슨 권리로 이런 잔혹한 에코사이드(생태대량학살)를 반복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 이 침묵의 범죄를 멈추지 않는다면 어느 날 갑자기 새들의 합창 소리가 사라진 적막한 아침을 맞을지도 모른다.  


『새를 초대하는 방법』 을 활동가들이 함께 읽었어요. 인상적인 몇 토막을 골라 또박또박 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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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홍보팀장 배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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