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죽어있을까?’
‘유리창 새 충돌 대응’ 캠페인을 맡아 첫 모니터링을 가기 직전 생각했다. 녹색연합은 오래전부터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는데, 담당자가 된 첫 캠페인을 앞두자, 걱정부터 들었다. “혹시 모니터링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어떡하죠?” 천진한 질문이었다. 팀장 세영이 말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설마 했지만 도로 방음벽 모니터링이 시작되자 세영의 확신은 현실이 되었다.
그날 한 뼘 거리에서 새들을 보았다. 한 손에 잡히던 크기, 다채로운 색상, 깃털의 촉감을 기억한다. 경계심이 많은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본다는 건 죽어있기에 가능했다. 방음벽 옆을 걷기만 해도 죽은 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계를 발견하고 나니 이후 서울 도심에서도 충돌 흔적을 찾는 것이 점점 쉬워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 해 한국에서만 800만 명(命)의 새가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다고 한다. 투명하거나 반사되는 유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야간의 인공조명에 이끌려 부딪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800만 명이라니, 하루로 치면 2만 명이다. 사람이 하루 동안 눈을 깜빡이는 횟수와 유사한 수라고 알려져 있다. 국립생태원 김영준 선생님은 ‘유리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건물의 수는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그전까지 나는 죽은 새를 본 적이 없었다. 왜일까? 대부분 고양이나 너구리, 까치 등 포식자가 물고 가거나, 건물 관리인과 환경미화원이 빠르게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800만 명의 죽음을 못 본 채 살아왔다는 사실은 한동안 나를 부끄럽게 했다.
유리창 새 충돌 문제에 관해 아는 것이 부족했다. 작년까지 활동했던 분야에서는 비인간 존재와 직접적으로 관계 맺는 일이 적었다. 새 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를 알아야 했다. 어떤 존재를 안다는 건 관계를 맺고,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으로 올해는 새를 알아가기로 했다. 하늘을 자주 보고 책과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거나, 새를 보고 교육을 들었다. 그 과정은 소소하지만 새로운 일이었다. 특히 탐조 길잡이 선생님의 다시 볼 일 없으니 충분히 보라던 말이 인상 깊었다. 같은 새라도 앞서 본 새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각과 장소에서 잠깐 머무는 새를 만난 건 엄청난 인연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덕분에 이전에 흔하게 지나쳤던 참새라도 점점 반갑게 마주치게 되었다. 새를 비롯한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또한 다시 돌아보았다.

도시 곳곳에서도 많은 야생 동물이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을 위협하는 것도 널려 있다. 끊임없는 개발로 줄어든 숲과 하천 대신 건물과 도로, 자동차, 유리가 동물의 터전을 밀어낸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물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일까. 그러나 유리창 새 충돌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듯, 지금의 도시는 인간의 편의와 유행에 따른 경관을 조성하느라 이 엄청난 인연을 끊어낸다. 고층 건물, 지하철 출입구, 버스 정류장, 카페, 문, 난간까지 사방이 유리로 막혀 있다.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텃새, 철새에게는 지천이 학살지이다. 주위를 둘러볼수록 지금의 도시는 너무나 인간 중심적이며 위협적이다. 어떻게 하면 새에게 안전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다른 야생동물에게도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한국에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새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단기간에 5천여 명의 시민이 유례없는 기록을 만들어냈다. 네이처링의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을 통해 죽은 새와 충돌 현황을 기록하고, 보이지 않는 죽음을 드러내며 정책을 바꾼 것이다. 대표적으로 2023년 야생생물법이 개정되며 국가와 공공이 새 충돌 피해를 줄여야 할 책임을 명시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으며 전체 충돌 피해의 97%에 달하는 민간의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은 매년 2~10억 마리 이상의 새가 건물에 부딪혀 죽는다. 피해는 한국과 달리 철새 이동철에 집중된다. 이를 줄이고자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인 ‘LEED’에서 새 충돌 저감 조항을 마련해 설계 단계부터 새를 위해 디자인하도록 유도했다. 또한 주에 따라 여러 정책이 시행되는데 2020년 위스콘신주 매디슨시는 조류 친화적 건물 조례를 제정하고 조류 안전 설계와 새가 유리를 인식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특히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건축물에도 이를 적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나 역시 새를 새롭게 발견한 이후로 도시의 구조에서 어떤 생명이 배제되는지 자주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견 있었지만, 이제는 변화에 가속이 필요하다. 매년 기후위기와 서식지 파괴로 멸종에 대한 보고가 이어진다. 지난 6월에는 100년 내 500여 종의 새가 멸종할 수 있다고 발표되었다. (Steward at al., 2025,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이는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질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한 생명도 사라지는 일이다. 인간이 초래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지켜내야 할 책임이 있다. 유리창 충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죽음까지 더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유리창 충돌을 줄이는 일은 확실한 해결책이 있다. 이미 지어진 건물에 저감 조치를 시행하고, 새로운 건물이 새에게 안전하도록 짓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함께 살아가는 새에 관심을 갖고, 충돌 현황을 기록하며, 민원을 제기하거나 저감조치를 시행하는 일, 그리고 관련 활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후원하는 일 모두가 변화의 시작이다.
얼마 전, 한 편의점 유리창 밑에서 하얀 배를 가진 흰배지빠귀 한 마리를 주웠다. 월동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던 길이었을 나그네새였다. 고작 1m 남짓의 작은 유리창에 부딪혀 죽었는데, 대다수의 새처럼 몸집이 작고 가벼워서 유리창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러한 죽음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함께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달리 보고, 작은 불편을 감수하고, 새 대신 목소리를 낼수록 변화의 속도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도시가 새의 도시도 될 수 있는 그 첫발을 떼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주위를 둘러보자.

변인희
녹색연합 이음팀
*이 글은 빅이슈코리아에도 기고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