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콩나물국밥이었다.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막기 위해 시작된 농성은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400일 넘게 이어졌다. 당시 나는 그저 등산을 좋아하는 시민이라는 이유로 가끔 농성장에 들락였다. 그곳에는 늘 카메라를 든 이강길 감독이 있었다. 문화재위원회가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는 소식으로 막연하게 승리를 예감했던 어느 날엔가, 농성장을 드나들던 사람들 서넛이 둘러앉은 국밥집에 그도 있었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툭 내뱉은 말투만큼이나 냉소적인 표정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십 년이 지났다. 2025년 12월 9일 원주 국립공원공단 본청 앞에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의 천막이 차려졌다. 그 사이 이강길 감독은 다큐멘터리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2019)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고, 나는 녹색연합의 신입 활동가가 되었다. 벌써 네 번째 농성장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펄펄 끓는 콩나물국밥을 다시 마주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무엇 하나 식어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이 손을 보탠 흔적과 십시일반 보내온 물자가 농성장을 든든하게 감쌌다. 이곳에 상주하는 국민행동 이이자희 활동가의 설명에 따르면 ‘한살림 운동’의 유산을 이어받은 원주 지역 시민사회의 저력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칼바람은 어쩔 수 없어서, 천막 아랫단을 눌러놓은 돌이 혼자 들썩였다. 틈틈이 굄돌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했다.
2025년 12월 9일, 네 번째 농성의 이유
천막 너머의 현실은 그보다 더 위태롭다. 개발 세력의 잇속과 정치적 이해타산이 맞물린 결과, 설악산을 지탱하는 겹겹의 빗장이 벗겨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남다른 지위가 있는 국립공원이다.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를 비롯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천연보호구역 등 5개 보호지역으로 중첩 지정되어 있다. 산양, 독수리 같은 멸종위기 동물과 높은 곳에서 자라는 희귀 식물들이 설악산을 보금자리 삼는다. 이에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과 원주지방환경청은 케이블카 사업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모두 뒤집혔다. 지난 윤석열 정부는 ‘무조건 추진’을 공약으로 하며 들어섰고, 환경부는 끝내 ‘조건부 동의‘로 입장을 선회했다.
공은 국립공원공단으로 넘어왔다. 공단이 2025년 연말로 예정된 사업 기한의 연장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설악산에는 더 이상 공사 장비가 들어갈 수 없다. 사실상 사업 중단이다. 따라서 엄동설한에 농성장을 꾸린 이유는, 국립공원을 국립공원답게 운영해야 하는 기관 본연의 의무에 충실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권금성 케이블카에 이어 오색 케이블카마저 지어진다면 설악산은 케이블카를 두 군데나 가진 국립공원이 되고 만다.

2025년 12월 12일, 산이 좋아 농성장에 온 사람들
다큐멘터리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에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오체투지를 하며 정상에 올라온 활동가들이 몇 무리의 등산객들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등산객들은 사정을 듣고서 “케이블카를 놓으면 산이 망가진다”라며 활동가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구호를 따라 외치며 단체 사진을 찍는다.
농성장에도 같은 마음이 모였다. 강릉 시민인 진솔아 씨는 농성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찾았다. 이십 대부터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배낭에 붙이고 산행했던 그의 소망은 “곧 태어날 아이에게도 설악산의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래된 산악회의 회원들도 농성장 지킴이를 자원하거나 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등산을 연결고리 삼아 이어진 사람들의 움직임은 산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산길을 걷는다고 해서 우연히 마주친 야생동물이나 커다란 나무의 이름을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산이 간직한 풍요로움을 느끼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느낌이 사람을 절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낯선 농성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2025년 12월 25일, 분노를 넘어 사랑과 책임으로
성탄절에 녹색연합 박은정, 이다솜 활동가와 원주를 다시 찾았다. 밤이 되자 천막 바깥에 걸린 현수막의 산양 그림자가 검푸르게 일렁였다. 농성장에 남은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놓고 모여앉아 기도했다. 저마다 무엇을 빌었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똑같은 소원이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산의 위기를 깊이 느끼기를 바랐다. 설악산의 빗장이 완전히 열려버렸을 때 받아 들 청구서가 두려웠다. 내가 사는 북한산 아래, 그리고 지리산, 속리산, 월출산… 매 선거철 국립공원을 낀 지역들에 거세게 날아들 난개발 공약이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사실은 분노였음을, 나중에 박은정 활동가가 국민행동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쓴 농성 후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나의 동력이 ‘분노와 화’였다는 것이 나를 두렵고 지치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사랑하니까 싸울 수 있는 거구나.”
이튿날 아침, 구례의 ‘지리산 사람들’이 농성장에 도착했다. ‘지리산’이라고 굵게 적힌 깃발이 높게 드날리자 마음 한구석이 뜨끈해졌다. 지리산도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라는 개발 압력 아래 놓여있다. 이 산과 저 산의 운명이 다르지 않으며, 같은 산줄기로 연결된 생명 공동체라는 감각. 새벽길을 달려온 이들의 얼굴에서 사랑을, 공존을 향한 끈질긴 책임감을 보았다.

2025년 12월 30일, 새해에도 지치지 않기 위해서
답답한 침묵 끝에, 국립공원공단은 결국 오색 케이블카 사업 시행 기간을 연장했다.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 했던 이강길 감독의 말을 아프게 떠올렸다. 그러나 낙담하지 않는다. 역대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혹은 방임 속에서도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사업이 애초에 설악산과 어울리지 않음을 방증한다.
이 부조화는 앞으로 양양군이 당면하게 될 어려움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양양군은 남은 2년 동안 험준한 지형과 강풍을 무시한 설계 결함, 희귀식물 이식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사업비 대부분을 양양군이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0여 년을 기다린 숙원사업’이라고 환영했던 민심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 사업이 별 진척 없이 주민 사이에 갈등의 씨앗만 뿌려온 과정 자체가 거대한 사회적 낭비라는 걸, 설악산이 몸소 말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설악산이 건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언젠가 나와 같은 산길을 걸었을지도 모르는 당신과, 새해에는 설악산이 제자리를 찾는 길을 향해 나란히 걷고 싶다.
이름 : 김도미(정책팀)
문의 : 김다정(홍보팀, 070-7438-8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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