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호 우녹사 |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녹색연합 활동가로! 종횡무진 환경운동가, 박항주 전문위원 

2026.03.17 | NEW 녹색희망

녹색연합의 신입활동가이지만, 환경운동으로 30년을 바라보고 있는 박항주 전문위원을 만났습니다. 에너지, 생태, 평화 이슈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다양한 위치에서 책임을 다해온 활동가의 시간을 따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위원님! 녹색연합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동료들이 부르는 호칭이나 별명도 소개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기후에너지팀 전문위원 박항주 입니다. 에너지팀 업무 70% 정도이고 케이블카 전국연대 사무처장, 마포소각장 대응 등의 활동도 함께해요. 제가 사는 도시공동체 성미산마을에서는 저를 ‘돌새’라고 불러요. 돌로 만든 새, 영원히 날 수 없는 새랍니다. 자유를 갈망한다는 의미예요. 돌쇠라는 발음에서 느낄 수 있듯, 뭔가를 시작하면 거침없이 한다는 저돌성도 담겨있죠. 

어떻게 지내세요? 늘 새로운 정보에 항상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최근 빠져든 콘텐츠나 이슈가 있나요? 

질문이 생기면 궁금해지면 참지 못하고 찾아보는 편이에요. 

가장 큰 관심을 갖는 활동은 역시 탈핵이죠. 이재명 정부가 폭탄 하나를 던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핵폭탄 발사 단추를 눌렀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신규 원전 2개, 소형 원전(SMR) 1개를 추진하고, 3월 말까지  지역별 유치 신청을 받겠대요. 저는 이 상황을 거의 에너지계의 내란이라 봅니다. 필리핀 핵발전 수출, 전쟁 무기 수출에 이어 군산복합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러워요. 

녹색연합에 처음 출근하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출근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집 나간 뒤 돌아온 느낌입니다. 국회에서는 많은 분들이 도와줬지만 혼자 싸운다는 느낌이었다면, 여기서는 여럿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싸우는 느낌이예요. 함께 도모하는 즐거움이죠. 

환경 분야에서 거의 30년 동안 활동해 오셨지요. 처음 환경운동을 시작한 시절의 분위기도 궁금한데요, 환경운동을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릴 적 살았던 곳은 천호동, 빈민가 바로 옆이었어요. 부모님이 노동을 하셨는데,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해도 노동의 대가는 정당하게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일찍 체감했어요. 대학생이 되어 노동해방, 사회주의에 관심을 두다 90년 초에 국가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로 새로운 대안을 찾았지요.

군대 복학 후 우연히 읽은 녹색평론에서 이반 일리치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읽었어요. 인간의 자력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부터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자동차까지 문명사적으로 정리되어 제게 크게 다가왔죠. 은사님인 박승준 교수의 환경경제학 수업 영향도 있었어요. 수학과 도표로 환경문제를 시장의 관점에서 해결하는 수업이었죠. 그 때 부교재였던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을 통해 전일적 관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노동해방과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삶에서 체화한 것이라면, 생태주의와의 만남은 이성적이고 현학적이었던 것 같아요.

활동가는 한 가지 일만 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정책 연구, 캠페인 기획, 네트워크 구성까지 여러 종류의 일을 동시에 하는데, 다양한 분야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는 팁이 있다면 알려주셔요!

생태운동, 시민운동에서의 전문성은 ‘집요함’에서 온다고 봐요. 성실함보다 집요함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살고 싶다’라는 생명의 열망처럼, 집요해야 한다고 봐요. 

현재 백두대간에 가려면 20km 터널을 지나야 해요. 2000년대 초반, 그 터널을 건설하던 때에 건설 반대 운동을 했어요. 사업 담당자와 미팅하는데, 담당자가 손잡고 읍소하더라고요. ‘7(남북축)x9(동서축) 도로 정책’으로, 각 도로에 해당한 팀에게 프로젝트를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사업이었죠. 자신은 정규직 팀장이고 부하직원은 비정규직인데, ‘이 도로 건설 사업을 성사하지 못하면 팀 전체가 다 생계를 잃는다’ 하더라고요. 

그 절박함은 환경운동가로서 백두대간을 지키려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어요. 여전히, 지금도 우리는 나이브합니다. 반면 나이브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죠. 편안하고 자유분방해서 가지는 힘이 있어요.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는 그만큼 완전히 사업에만 집중하는 집요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전문성이 쌓이게 된다고 봐요.

녹색연합은 국회와 긴밀히 협력합니다. 환경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책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입법 기관인 국회와 함께 법 제정 과정에 협력하기도 합니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의제를 풀어나가는 것과, 국회 보조관으로서 입법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떻게 같고 달랐을지 궁금합니다.

정치는 최악을 막기 위해서 차악, 차선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환경운동이나 시민운동은 나아가야 할 방향, 이상적인 목표와 원칙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법은 타협과 힘의 결과물이죠. 제가 국회에서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타협’이 아닌 원칙적인 주장을 많이 했기 때문이죠. 사실 원칙적으로 통과된 법은 하나였던 것 같아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힘을 받아서, 제정법인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 일명 화평법을 만들어 통과시킨 거죠. 

법을 발의하는 목적은 형식적 측면에서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의제화(민원 처리 포함)하는 것과 통과시키는 것입니다. 의제화가 목적이면 쟁점 사항을 최대한 많이 담아요. 통과가 목적이면 원칙적인 내용보다 현실적인 내용보다 한발짝 정도 급진적으로 만들어요. 법과 관련된 기득권 정당이 반대하면 통과가 힘들어요.

시민사회에서 법을 만드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원칙적인 내용을 많이 담아요. 원칙 또한 단체별로 다르고요. 그러다 보니 원칙과 원칙의 충돌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요. 

법을 통과시키는 주요한 전략 중의 하나는, 기득권 정당에 현실적인 법안을 제시하는 것이죠. 법을 꼭 한 명의 의원이 발의할 필요는 없어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인 동물복지법을 발의할 때 5명의 의원에게 법을 쪼개서 발의했어요. 또 중요한 것이 타이밍이죠. 사회적 갈등이 심한 경우, 관련법을 신속히 발의해 의제화하면 국회 상임위에서 많은 논쟁을 만들어 내죠. 

국회에서 다루었던 환경 이슈 중 기억에 남았던 활동이 있다면요?

생각해 보니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네요. 법과 관련해서는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법, 암예방특별법, 동물복지법, 4대강 재자연화법, 환경영향평가법, 건설폐기물법 등이 대표적인 것이고요. 각종 현안과 대기업과 대치한 대응도 셀 수 없이 많아요. 

하나만 뽑자면, 앞서 말한 화평법 제정 과정입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10여 명의 전문가와 타 정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법을 통과시켰거든요. 특히 법안 심사 전날 밤 12시에 산업부 차관과 전화로 논쟁하고, 다음 날 아침 8시경에 다시 만나 협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체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순간이 있나요?

매향리 폭격장의 현장, 수많은 단체와 군경이 줄지어 서 있다

환경운동 7개월 차, 2000년 5월 매향리로 파견 나간 일은 잊을 수 없어요.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미군 폭격장은 1951년 건설되어 54년간 민간 지역에서 미군들이 기관총과 미사일을 쏘며 훈련한 곳이에요. 2000년 5월 미군의 오폭을 계기로 범국민적 운동으로 확대되었어요. 오폭이 일어난 직후에 전만규 주민대책 위원장이 연행되었죠. 그때 제가 파견 나가겠다고 손 들었어요.

매향리미군폭격장 폐쇄 주민대책위 전만규 위원장이께서 구속된 상황이라, 주민대책위를 지킬 시민단체 활동가가 필요했죠. 1개월간 파견을 나갔고, 1개월간 벌어진 일은 전쟁이었어요. 전국의 환경단체, 노동단체, 국내외 반미 운동단체 등의 활동가들이 와서 철망을 제거하고 폭격장으로 질주했고, 막아서는 전경들과 충돌했어요. 

파견 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매향리에서 버스를 기다렸어요. 언덕 위에 있는 주민대책위 사무실 너머로 저녁노을이 지옥의 묵시록처럼 이글거렸어요. 기관총과 폭탄의 화염 같기도 했고, 연행되고 피 흘리며 싸웠던 사람들의 피 함성 같기도 했어요. 서해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은 그냥 핏빛이었죠. 그런데 주민들은 거기서 50여 년 가까이 살았고, 저는 1개월 만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죠.

그때 문득 ‘나는 돌아갈 곳이 있구나’ 느꼈어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어요. 노을이 매향리 폭격장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인지, 주민들의 슬픔이었는지 모르지만, 신기루 같은 그 무거움이 환경운동, 특히 주민이 있는 환경운동 현안을 대할 때 기준이 되었어요. 기준이라는 기준이 되었어요. 그 이후 1~2년간 한달에 며칠씩은 매향리에 갔던 것 같아요. 매향리 폭격장이 폐쇄된 자리에 지금은 생명평화 마을이 들어셨지요. 작년 2025년 5월에 매향리 평화기념관이 개관했어요. 

환경을 지키는 운동은 단기간에 결과를 보기 어렵지요. 오랫동안 활동하며 절망의 순간도 많았을 텐데,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과거에 사회운동하는 선배들이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이 시대에서는 민주화 운동이 불법일지언정 시간이 지나 민주사회가 되면 무죄가 될 것이라는 신념이었죠. 이후 생태운동을 하면서 저에게도 믿음 같은 것이 생겼어요. 새만금 방조제가 완성되는 것을 보며 많이 마음이 아팠고, 그 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 다다른 믿음이죠.

‘지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지금은 기후에너지팀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현재 이 사회에서, 환경운동에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전력수급기본계획’,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같은 정책 대응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을 복합위기 시대라고 해요. 생물다양성 위기, 기후위기, 경제위기(불평등) 등 다양한 위기가 동시에 오고 있어요. 우선순위가 없어요.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가야 합니다. 환경운동은 넓은 의미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생산 체계를 유지하는 성장주의,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는 탈성장 운동, 돌봄 운동이라고 하죠. 

지구적 한계 내에서 인간의 좋은 삶을 구현하는 것이 운동의 목표라고 한다면,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 정의로운 전환, 탄소중립등을 이루어야 운동의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원전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에너지 체계를 지속 가능한 에너지 체계(탈원전, 탈석탄)로 바꾸는 정책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이어야 해요. 그런데 원전확대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죠.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고통을 동반하게 됩니다. 화석연료에 기반한 발전소와 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의 실업 등이 대표적이죠. 우리는 이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워진 이름에 새로운 이름을 부과하는 실천을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지구적 한계내에서 좋은 삶은 인간과 비인간 모두 에게 이름 하나하나 부여하는 것이라고 봐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AI가 국가 산업의 주축을 이루며 ‘대세’로 떠오르고 있어요. 너무나 변화가 빠른 이 시대, 반대로 생태주의로써의 전환은 더디게만 느껴집니다. 생태 감수성이 점점 더 빈약해지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종, 세대, 성별, 계급 등의 다양한 차이와 경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공동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생태주의는 급진성을 지닙니다. 목적 지향적이기 때문이죠. 주요 현안을 볼 때 얼마나 급진적이어야 현실에서 해결할 수 있느냐, 스스로 질문해요. 가끔 참지 못하고 급진적으로 말하면 이상하게 꼬여버리죠. 

‘지구적 한계 내에서 좋은 삶’, ‘최대 다수의 충분한 행복’이라는 목표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충돌합니다. 민주주의의 결정 방식의 핵심은 다수결입니다. 다수결로 하면 성장 우선이 이깁니다. 그래서 생태주의와 민주주의는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갈등만 하지는 않죠. 생태주의는 연대합니다. 민주주의는 생태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죠. 제가 생각하는 생태주의 주요한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 평화, 지속 가능성 그리고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가치를 확대할 때 비로소 인간과 비인간,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함께할 것이라고 봅니다. 복합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이 생태주의 가치라 생각해요.

윤석열 퇴진집회에서 발언하는 박항주 전문위원

😎 나의 환경운동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붉은노을, 함께, 행복

🌱 활동가로써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가지는?

믿음이요, ‘지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믿음

🙌 동료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의 희노애락이 연결되어 함께 하길 희망합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