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해마다 봄이 오면 녹색연합은 녹색순례를 떠납니다. 자연에 들어 생동하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고, 무분별한 개발과 넘치는 오염으로 신음하는 현장으로 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손을 잡습니다. 그렇게 생태 감수성을 또렷이 하고 활동할 힘을 얻습니다.
올해는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서해안으로 발걸음을 향합니다. 33.9km에 달하는 거대한 새만금방조제가 건설된 후 20년이 지난 지금, 단절된 생태계에서 치열하게 버티어주고 있는 생명을 향해 길을 걷습니다. 줄포만에서, 수라에서, 금강에서 끊임없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과 마주합니다.

아이의 뒤로 펼쳐진 갯벌이 잘 보이실까요. 아버지의 고향인 서산의 독곶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저는 어린 시절 매 여름과 겨울마다 찾아가 한 달이 넘게 지내다 왔습니다.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으려 애쓰던 제가 엄마를 떠나서 한 달 넘게 지내고도 더 있고 싶다며, 떼 쓰지 않는 아이, 혼자 잘 노는 아이로 키워 준 것이 저 갯벌이었습니다. 뙤약볕에 바지락을 캐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지평선인지, 수평선이지 모를 갯벌의 끝을 향해 걸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너무 멀리 걸어서 물이 차 오르는 속도에 겁을 먹었던 기억도 아찔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저 바다와 갯벌은 이제 사라진 풍경이 되었습니다. 갯벌은 현대, 삼성의 석유화학 공단이 되었습니다. 갯벌이 공단으로 바뀌는 동안 친가의 흙담집은 슬레이트집으로, 양옥으로 바뀌었고, 갯벌과 집 사이에서 바닷바람을 막아주던 대나무숲은 공단 입구를 경계하는 철조망과 송전탑으로 변했습니다. 수박과 참외를 들고 와 밤새 수다를 나누던 이웃 어른들은 몇 안되는 보상금에 흩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놀음으로 보상금을 날렸고 누군가는 석유화학공단의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은 갯벌과 염전밖에 없던 깡촌에 현대, 삼성이 들어오니 시멘트 도로가 생기고 전화기도 바꿔주었다며 좋아했습니다. 공단이 본격적으로 자리잡으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일하러 왔습니다. 할머니도 사글세와 월세를 작은 방에 주기도 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공단의 어린이들은 토박이 어린이들의 안내로 새만금의 수라 갯벌처럼 아직은 갯벌로 남아 있는 철조망 사이의 작은 바다, 작은 갯벌을 어른들 몰래 찾아, 깽머루라 부르던 해당화 열매를 따 먹으며 애꿎은 게들을 괴롭히고 우리의 바다를 막은 철조망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며 놀았습니다.
그 시절도 잠시였습니다. 폐업한 공장은 외국인 노동자의 기숙사가 되었고, 현대와 삼성은 엘지와 롯데와 한화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폐업하는 공장 사이의 황무지가 되고 있습니다. 친가가 있던 자리 옆 작은 야산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신 가족묘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가을 성묘를 하러 찾았을 때 작은아버지는, 3교대 하던 공장이 쉬는 날이 많아졌다며 한숨을 쉬셨습니다.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잣말처럼 내뱉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딱 30년 해먹으려고 이꼴을 만들어놨지, 염병할 것들. 그 때는 몰랐지, 좋을 줄 알았지.”
새만금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해지는 동안 어떤 이름들이 지워졌을지, 어떤 기억과 생명이 사라졌을지, 저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습니다. 수라 갯벌 마저 없어진다면, 우리는 이 바다에 기대어 수 많은 생명과 이웃이 살았다는 것을 잊게 될 지도 모릅니다. 짧은 순례 여정을 통해 이 갯벌의 기억이 오래도록 여러분과 뭇생명 모두에게 남기를 바래 봅니다.
글과 사진. 제26회 녹색순례 대장 김원호
문의. 녹색순례 기획단 진예원 (070-7438-8536, salromhi@greenkore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