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1] 주민투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2005.10.11 | 미분류

[토론문 1]

주민투표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김영수 변호사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1. 들어가며

2004년 1월 29일 법률 제7124호롤 제정되어 같은 해 7월 29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현행 주민투표법은 크게 2가지의 주민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①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주민투표로서, 주민 또는 지방의회의 청구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직권에 의하여 실시되고, 주민투표 결과에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 및 지방의회를 구속하는 것(이하 ‘지방자치형/구속형 주민투표’)이 하나이고,

② 국가정책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중앙행정기관이 요구하는 경우 실시되는 주민투표로서 그 결과에 구속력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하 ‘중앙요구형/비구속형 주민투표’)이 다른 하나이다.

이들은 주민투표의 발의 과정, 주민투표의 대상, 주민투표결과의 효력 등에서 차이가 있다. 이하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에 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주민복리 증진을 목적으로 한 현행 주민투표법상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2. 주민투표의 대상

가. 지방자치형/구속형 주민투표의 대상(법 제7조)

주민투표법 제7조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으로서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을 주민투표의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법령에 위반되거나 재판중인 사항,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한 사항, 예산․회계․계약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한 광범한 제한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한편 행정자치부는 2004년 주민투표법 제정 직후, 표준조례안을 만들어 전국 지방의회에 배포하고 이를 표준으로 주민투표조례를 제정하도록 행정지도 하였는데, 그 결과 현재 서울 강남구를 제외한 나머지 249개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자치부가 제시한 표준조례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의 주민투표조례를 일률적으로 제정하였다.  
  
결과적으로  ① 자치구 아닌 구와 읍․면․동․리의 명칭 및 구역변경, 폐치분합  ② 사무소 소재지 변경 ③ 다수 주민의 이용에 제공하기 위한 주요공공시설의 설치 및 관리 ④ 각종 기금, 지방채, 시와 민간이 공동출자하는 대규모 투자사업 등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사항 ⑤ 기타 다른 법률에 의하여 주민의 의견을 듣도록 하거나 주민의 복리․안정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결정 사항 등이 주민투표의 주요한 대상이 된다. ‘표준조례안’상의 주민투표 대상

나. 중앙요구형/비구속형 주민투표의 대상(법 제8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 또는 구역변경, 주요시설의 설치 등 국가정책의 수립에 관한 사항’에 관하여 주민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경우 관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 결국 국가사무의 경우 핵폐기물처리장의 설치와 같은 국가정책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 현행 주민투표법은 주민자치형 주민투표는 예정하고 있지 않으며 중앙요구형 주민투표만이 허용되고 있다.

다. 문제점

○ 행정자치부의 일률적 행정지도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자율적 결정권한을 준 입법취지에 근본적으로 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각 지방자치단체 별로 지역 현실에 맞는 주민자치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여러 가지 실험과 노력들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는 결과가 되었다.

○ 주민투표법은 주민투표법에 관한 일반조항을 두고 있으나, “중대한 영향”, “과도한 부담” 등 불확정 개념을 사용하여 자의적 해석의 소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제주 서귀포시의 해안도로 폐지 및 대형할인매장 입점에 관한 주민투표 청구인대표자 자격증명서 발급청구 각하 사안이나 여수시 제2청사 이전 문제에 관한 여수시장의 대응, 부안 방폐장 사건에서 부안군수의 대체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회는 주민투표를 자신의 고유권한에 대한 침범이라 생각하여 주민투표의 대상에 관하여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해석하려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민투표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지방자치형 주민투표가 한건도 실시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 주민투표법이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라는 불확정적 개념을 사용하고 그 구체적 내용을 조례에 위임하고 있는 만큼 주민투표에 관하여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개정을 통한 대상의 확대도 시도할 수 있으나, 주민투표의 대상에 관하여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는 현행 주민투표법 조항은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 한편 주민투표에 의한 주민참여 방식을 반드시 주민투표법상 주민투표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외국 사례나 주민투표법 제정 전 국내 사례가 보여주듯 사실상 주민투표는 주민투표법의 제정․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능하다 할 수 있다.

3. 주민투표의 청구 요건 및 발의과정상의 문제

가. 주민청구요건상의 문제점

현행 주민투표법은 주민투표 청구요건의 결정을 조례에 위임하면서, 다만 주민투표청구권자 총수의 1/20 이상 1/5 이하의 범위 안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9조 제2항). 이에 대하여 행정자치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주민 수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고, 전국 250개의 지방자치단체 중 권고안을 따른 지방자치단체가 158개, 완화한 단체가 89개, 강화한 단체가 3개이다.

주민투표법은 이처럼 주민투표의 청구요건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 결과 사실상 주민투표 청구의 기회를 봉쇄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현행 최소 38만명 이상 2004년말 현재 서울특별시의 투표권자는 7,718,738명이며, 서울특별시 주민자치조례의 요건이자 주민주표법상 최하요건인 1/20을 적용하면, 그 숫자는 385, 937명이 된다.

청구인의 서명을 받아야만 주민투표청구를 할 수 있다. 더구나 서울시 조례가 정한 서명요청기간인 90일 이내 38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 청구를 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20이라는 주민청구요건은 사실상 주민투표청구권의 행사를 막은 것에 다름없다. 그러므로 지방자치단체의 규모와 실질적 서명가능성 등을 감안하여 적정한 하한선을 다시 산정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참고로 서울과 비슷한 규모의 뉴욕시의 경우 주민투표 청구요건을 5만명으로 잡고 있으며, 한편 주민투표결과가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1/6 이상의 득표(주민투표권자 총수의 1/3 ×투표수의 1/2 득표 = 1/6)만으로 확정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인구수가 적은 지역이라 하지만 투표결과확정요건보다 엄격한 1/5 내지 1/6을 주민청구요건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할 것이다.

나. 주민투표 발의과정상의 문제

○ 청구인대표자증명서 교부 거절

주민들이 직접 주민투표 실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청구인대표자의 선정 및 청구인대표자증명서의 교부신청을 하고 위 증명서를 발급받아 서명요청기간 내 주민청구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투표청구서 및 청구인서명부를 제출하여야 한다.

주민투표 발의 단계가 아닌 주민투표 청구인대표자증명서의 교부 단계에서 주민투표의 요건을 심리하여 위 증명서의 교부자체를 거절하여 주민투표 청구조차 불가능하게 한 사례들이 있다.

실제 서귀포시 주민투표청구심의회는 2005년 1월 해안도로폐지 및 대형할인점 입점 제한에 관한 주민투표 대표자증명서교부신청에 대하여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위 증명서의 발급을 거절하였고, 자치양양참여연대가 2005년 5월 낸 방폐장 유치여부에 관한 주민투표 대표자증명서 교부신청 사안에서도 위 증명서의 교부를 거절하였다.

청구인대표자증명서 교부신청은 주민투표청구의 전 단계로서, 주민투표를 청구하고자 하는 주민들이 청구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서명요청을 할 권한을 수여하기 위한 것으로 서명과 관련한 주민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절차로 파악된다.

법 제9조 제2항은 교부요건으로 주민투표권자인지 여부의 확인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표준조례안의 경우 주민투표청구심의위원회의 권한이 주민투표청구에 관한 심의 자체(청구인서명부에 기재된 유효서명의 확인, 이의 신청의 심사, 주민투표 청구요건의 심사 등)를 상정하고 있음에 비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위 증명서 신청에 대하여 교부의무가 있다 할 것이며, 대표자증명서의 발급을 거절하여 주민투표를 위한 서명요청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위법이라 할 것이다.

○ 주민투표청구심의회의 설치와 구성의 문제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민투표하고 있다. 청구요건에 관한 심의를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조례에 의해 주민투표청구심의위원회를 설치, 구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조례는 심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고자 위원의 과반수를 공무원이 아닌 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행정자치부는 위 조항에서 말하는 “공무원”은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만을 의미하므로 해당 지역의 지방의회 의원이나 국가 소속 공무원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청 주민투표업무담당자의 2004. 8. 9. 질의에 대한 행정자치부 회신

위와 같이 운영되면 사실상 심의회 위원 전원이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실제로 위 규정을 초과하여 그 지방자치단체 소속은 아니나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공무원을 비롯하여 업무 관련된 공무원들이 심의위원회에 참여하여 위원회의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관하여 문제가 된 사례들이 있다.

다. 공직선거기간 중 주민투표 제한의 문제

주민투표법은 공직선거일 60일전부터 선거일까지는 주민투표를 위한 서명요청활동, 주민투표발의, 투표를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법 제11조 제1항, 제13조 제3항, 제14조 제2항). 이러한 엄격한 시기상의 제한은 주민투표를 사실상 대단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장 2006년 6월의 지방자치단체 선거,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2008년 4월의 국회의원선거가 예정되어 있고, 년 2회 이상 실시되는 재선거와 보궐선거까지 고려하면 연중 선거기간이 아닌 날이 거의 없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법상으로 주민투표를 진행하는데 최소 150일 이상이 소요되는데 위 일정을 고려한다면 주민투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어렵게 주민투표제도를 입법화하면서 사실상 실시가 곤란할 정도의 시기상의 제한을 둘 이유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정도라면 중요한 지역 현안이고, 이러한 중요사항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과 그에 대한 주민들의 평가가 선거를 통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도 부합한다.

미국의 경우 투표경비의 합리화를 위해서 대통령선거, 중간선거 또는 주의 공직자 선거 등과 동시에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있다. 투표경비의 절감차원에서도 공직선거와 주민투표의 동시실시를 적극 고려한다거나, 이러한 시기상 제한의 폐지가 요구된다.

4.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주민투표소송상의 문제

주민투표에 이의가 있는 경우, 주민투표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방법에 의해서만 그 효력을 다툴 수 있다. 즉 주민투표결과에 관하여 이의가 있으면, 주민투표결과 공표일로부터 14일 이내 상급 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투표에 관한 소청을 할 수 있고, 소청 결과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경우 그 결정서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대법원(광역자치단체의 경우) 또는 고등법원(기초자치단체의 경우)에 주민투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주민투표법은 주민투표소청은 주민투표권자만이 제기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 투표권자 총수의 1/100이상의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서명요건은 지나치게 엄격하여 주민투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주민들의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울의 경우 14일 이내 7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내 투표과정과 결과를 분석하여 이를 알리고 서명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명요건은 남소방지를 위하여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가능하도록 즉시 법 개정이 필요하다.

5. 주민투표법을 넘어선 주민투표의 문제 (사실상의 주민투표)

○ 이와 관련하여서는 주민투표법의 제정 이전에는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주민투표법 시행 이후에는 주민투표법에 의한 주민투표 이외 다른 주민투표는 위법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법률에 의하지 아니한 주민들의 자주관리 방식에 의한 주민투표는 가능하다. 2004 부안 방폐장 사건의 판결문도 이를 인정하였으며, 행정자치부의 입장도 이러한 사실상의 주민투표는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러한 경우 사실상의 주민의견조사 성격으로 법률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사실상, 정치적인 효과는 크다 할 수 있으며, 주민투표법이 주민자치를 실현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수준인 현실에서 여전히 효과적인 주민자치의 실현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 한편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회에서 주도적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법원 인천시 부평구 미국부대이전조례에 관한 판결에서 비록 자문형 주민투표하더라도 주민투표법이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만 주민투표 요구 권한을 주었으므로 이러한 사항을 정한 조례는 무효라는 판단을 한 바 있으나, 작년 말 나주시가 쌀개방과 관련하여 실시한 주민투표에 관하여 정부는 위법논란을 문제삼지 않아 지방자치단체 주도의 사실상 주민투표에 관한 선례로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6. 결론에 대신하여

주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고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주민투표법은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라 할 수 있는 지방자치형 주민투표(법 제7조)의 주민투표요건은 지나치게 엄격하게 규정하여 그 실시가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이며, 오히려 중앙요구형의 주민투표를 위한 장식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주민투표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한편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사실상의 주민투표는 그 법적 효력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민자치의 중요한 실현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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