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 -그물이 없는 어부

2005.08.05 | 미분류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에서  펴낸 “숨어사는 외톨박이2″권에 나와있는 <고래잡이>에 대한 기록을 마실해왔습니다.우리가 잘 몰랐던 고래잡이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같습니다.

고래잡이 -그물이 없는 어부

1978년
강창민 /구술정리

바다를 끼고 있는 아스팔트 길을 주욱 따라오면 오륙십톤짜리 철선과 목선 몇척이 닻을 내리고 있는 경상남도 울산의 장생포 부두가 보인다.그 부두 맞은편에 있는 “희망 상회” 옆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몇 발짝 가지 않아 왼쪽에 담장이 야트막하고 대문이 허름한 집이 있다.서너평이 됨직한 뜰에는 개나리 한 그루가 있을 뿐이지만 가지마다 활짝 꽃이 피어 썰렁한 뜰을 한결 밝게 해 준다.열린 덧창문으로 보이는 대청 마루에 노인 둘이 해받이를 하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침을 하다가 할 뿐이고 대낮의 시골집이 그렇듯이 무척 조용하다.이따름 장지문 안에서 화투장 때리는 소리가 난다.잠시 후에 장지문이 드르륵 열리며 얼굴에 검버섯이 돋은 작은 노인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성님,운제 오셨능교.”
성님이라고 불린,저고리 사이로 주름이 잡힌 가슴이 보이고 큼지막한 두 귀가 옆으로 서서 얼굴보다 귀가 먼저 눈에 띄는,눈빛이 정갈한 노인이 힐끗 돌아다본다.그는,”지금 안 왔나”하며 가래를 돋군다.그 노인 곁에는 밭은 기침을 연신 하며 몇마디 이야기를 하다가는 가쁘게 숨을 내쉬는 수염이 흰 키가 큰 노인이 앉아 있다.
이곳이 바로 장생포 경로당이다.이곳에 오는 노인들은 거의가 어부 출신인데 그들은 여기 와서 화투도 치고 동네 사람들의 집안 사정도,바깥 소문도 듣는다.마루에 앉아 있는 두 노인은 고래잡이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박 포수”와 “장 포수”이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귀가 큰 노인이 올해(천구백칠십*팔년) 일흔둘인 장 상호 포수이고,키가 크고 수염이 허연 노인이 올해 일흔다섯인 박 선이 포수다.그들은 평생 동안 고래잡이를 했다.
장 노인의 집안도 대대로 고기잡이를 해왔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고기 잡이 일을 거들며 자랐으므로 그는 어차피 어부가 될 팔자였다.그는 고래잡이 배의 포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그때 고래잡이들의 대우는,”울산 군수보다 고랫배의 화공(밥 짓는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았다.그는 운좋게 고래잡이 배를 타게 되었다.그러니까 그가 열여섯살 적이었다.그러나 배를 타긴 했지만 잔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그때에는 우리나라의 고래 어장을 일본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었고 또 선원들도 거의가 일본 사람들이었다.그는 “부엌데기”가 되어 몇년을 밥짓기와 청소하기와 빨래하기 같은 자질구레한 일을 하며 죽어라고 고생을 했다.그는 재치가 있고 눈썰미가 있어서 일손이 빨랐다.몇년 뒤에 갑판원이 되었고 점차로 곁에서 고래잡이를 거들기도 했다.그러는 동안에 어깨 너머로 포 조작법뿐만이 아니라 고래잡이 배의 모든 일을 얼추 배웠고 어찌어찌 해서 그는 남극 원양 포경선을 탔다

장 노인,그러니까 장 포수는 남극 이야기가 나오자 신바람 나는 모양이었다.
“남경 어선단 말입니꺼?…말또 마이소,그러니까 양력 시월에 일본에서 출발해서 가는 데 한달쯤이 걸리제예.또 오는 데 한달 걸리제예.그래 가가꼬 십일월 말경에 일을 시작해서 이듬해 이월까지 고래를 잡심더.그라고예 사월이면 돌아옵니더.
“예?…배는예 모선 한척에 개짜 보드(캐취 보트)가 여남은척이 딸립니더. …그렇심더.일본으로 해서 영국까지 가거든예.그런데 영국에서 남극으로 가는데 그 도중에 사시사철 파도가 디기 거친 바다가 있심더.아이고,그 바다에 들어서모 반은 죽은 기나 같심더.파도에 배가 옆으로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하는 거는 예삽니더.파도에 휩쓸려 물속에 푹 잠기모 죽는갑다 카다가도 배가 물 위로 톡 솟아 오르모 살았구나 카지예.
“예? 아니지예.남극에는 스무 나라쯤이 고래잡이를 왔다카는데 그래도 하도 너른 바다라서 좀체 만나지는 않심더.
“고래 말입니꺼? 참 많심더.수십 마리가 떼를 짓고 다니기도 하고요 암놈 수놈이 짝을 짓고 다니기도 합니더.개짜 보드가 고래를 잡아다가 모선한테 인계하모 모선은 일방 끄집고 가매 또 일방 해체해 가매 남극의 동쪽으로 쭉 올라갑니더.
“예? …요새 여서 잡는 밍크하고 부라이드는예 그때는 고래 축에도 못 끼었심더.그런 건 잡지도 않았심더.일본 본사에서예 작은 거는 수에 쳐 주지도 않았심더.일흔자가 못 되는 것을 잡으모 수당이 안 나왔심더.또 수산 감시원이 모선에 따라오거든예.그래서 새*끼 밴 것이나 새*끼를 댈꼬 있는 것을 못 잡게 했심더.요새예?없어서 못 잡는데 우에 그냥 두겠십니꺼.
…수당 말이 나왔으니까 카는 말인데,그때 월급이 일본 돈으로 팔십원인가 되었심더.그 돈이라면 요새 돈으로 몇십만원이 될 낍니더.그런데 월급은 회사에서 집으로 바로 주는데예 고래 한마리 잡을 때마다 주는 수당은 내가 쥡니더.그기 월급보다 더 컸심더.그 돈예?허허,돌아댕기며 다 썼지예. …그렇지예.젊은 사람한테는 돈 쓰는 재미보다 더 한 기 없지 않습니꺼.남극 한번 갔다오모요 두달은 휴가를 주거든예.그러면 경주로 부여로 서울로 돌아댕기며 돈 참 잘 썼지예.일본 땅은 안 가 본 데가 없고 중국 진또,상해,다이렌,다나까 카는 열대 지방,단쥬방 카는 연해 일대,중동 지방,오세아 같은 데도 가 봤심더.공분 안했지만 유학 가는 것보더 훨씬 나았심더.

“기생집예? … 그런 데는 재미가 없었심더.연해 캬바레,빠 같은 데를 갔심더.일본 가모요 빠도 여러 질이 있는 기라요.지가 무척 돌아댕기는 걸 즐겼심더.지금 서른아홉인 우리 딸내미가 네살 때 우리 마누라 데꼬 일본 귀경까지 안했씸꺼.
“예?날씨예?무슨…아,남극 말잉교?와 핵교에서 안 배웠심니꺼? 산지 사방에 얼음 산이고 옷을 얼매나 두텁게 입는지 아십니꺼?그래도예 빨개벗고 선 것 같심더.그 얼음 산이 참말로 무습심더.
“죽을 고생요?수태 겪었습니더.나갔다카모 늘 죽을 고생이지예.그러니까…”
장 포수가 열을 올리며 남극에 간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얼굴이 모가 나고 몸집이 탄탄해 보이는 노인이 들어섰다.그는 올해 일흔셋인 양 금석 노인이다.양 노인은 은하수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물고 길게 연기를 뿜다 이야기에 끼어 든다.
“그건 내가 이야기하겠심더.내가 그때 배 기관 일을 보고 있을 땐데예.허허…교대를 하고 아침에 깨어 보니 난리가 났데예.배가 밤새 고마 얼음산에 끼어 삐맀거든요.배가 끼이모 다 죽심더예.그래서 급히 모선에 연락을 했는데,무전이 들어오는데 우리가 끼인 곳에서 얼음산 바깥이 이 마일도 넘어예.첫해 남경 갔을 때 배 두척을 그래가꼬 안 잃었심니꺼.제우 제우 살아났는데 말입니더.그래 가꼬 배도 수태 잃었다카이.고래도 얼음에 끼어 죽는 걸예.이건 어마어마하게 큰 산이라예.그런데 우스운 기 첫해 잃은 배 두척 중에 한척은 이년 뒤에 배만 찾았심더.사람은 아무도 없고 유령선처럼 떠다니는 것을 찾았어예.아매도 얼음이 녹아서 풀려나온 기라예.참 그라고예 그쪽에는 밤이 없심더.두 시간쯤 밤이라 카는 긴데예 그것도 눈 좋은 사람은 신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아예.”
방에서는 화투가 사단이라도 났는지 갑자기 왁자해졌다.그리고 실랑이를 하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창호지 문밖까지 튀어 나왔다.
장 포수도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박 포수는 담배 연기에 더 기침이 나는지 슬그머니 모로 돌아앉았다가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장 포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고 말을 했다.
“예? … 아닙니더.딴 어선들은 미신도 많이 믿고 그래 쌓는데 고랫배는 그런기 없었심더.남극 갈 때 말이지예.마누라를 태우고 가기를 선주들이 권했심더.물론 일할 때는 근처 항구에다 내려 놓심더.사람들 중에는 큰마누라는 고향에서 노친네들 모시라 카고 작은마누라를 데꼬 다니는 사람도 많았심더.
“그라까예? …인자 남극 이야기느느 그만 하겠심더.우리나라 고랫배예? 해방되고 난 뒤에 일본 사람들한테 물려 받아서 시작했심더.옛날에예? …왜정 시대 전에는 고랫배가 있었다
카는 이야기는 못 들었심더.선친한테 들은 이야긴데 말입니더.예전에는 고래를 잡는 배도 어부도 없었고요.아매도 밀물 따라 고래가 만으로 들어왔다가 썰물 때에 못 나가는 기나,또 우짜다가 해변가로 온 거를 동네 어부들이 함께 잡은 일은 가뭄에 콩 나듯이 있었다 캅디더,어데예…장비를 보도 몰라예.십톤도 못 되는 쪽배 가꼬 우째 오십톤도 백톤도 넘는 고래를 잡겠심니꺼.또 잡았다 캐도 우쩨 끌고 오겠심니꺼? ”

우리나라의 고래잡이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고려사>에 고래 기름을 경상도에서 구했다는 것과 <자산어보>에 해안에서 사로잡힌 고래에서 기름을 뽑아내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고 고래잡이에 대한 것은 전혀 없다.장 포수의 말처럼 우리나라의 어로 장비가 원시적이었고 어로 방법이,물고기가 제 스스로 그물에 걸려 주기만을 기다리는 “정치 어장”에 의존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또 고래가 주로 사는 곳이 남극인데 우리나라 근해에는 이따금 새*끼를 낳으려고 오는 고래나 먹이를 찾으러 다니는 고래뿐이었으므로 고래잡이를 주업으로 삼기가 힘들었을 것이다.어쨌든 우리나라 근해에서 처음으로 고래잡이를 한 것은 러시아 황태자가 배를 타고 우리나라 근처를 지나다가 고래떼가 물줄기를 뿜으며 노는 것을 보고 포경 어선단을 조직한 것이라고 한다.그때 두척의 포경선이 고래 아흔다섯 마리를 잡았다.그 뒤로는 노-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자 일본이 고래잡이를 독점했다.우리나라에 있었던 일본의 고래잡이 회사는 동양 어업 주식회사오 장생포 포경 합자 회사였다.어류학자인 정 문기 박사가 가지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이 두 ? 말怜?천구백사년부터 천구백칠년까지 사이에 잡은 고래는 모두 천이백팔십이 마리였다.물론 이때에는 길이가 일흔자쯤 되는 참고래였다.그때의 시가로 한 마리에 천원이 넘었다.
장생포 부두 근처에 있는 한국 포경 조합에서 김 창하 전무가 보여준 자료에 따르면 해방 후에 우리나라에서 잡은 고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천구백칠십이년에 잡은 일흔두자짜리 참고래이다.일흔두자라면 이십이 미터쯤이 된다.장 포수가 남극 바다에서 잡았던 고래 가운데에는 백자쯤 되는 것이 많았다고 한다.백자면 삼십 미터쯤이다.거기에다 살이 붙으면 오륙층쯤 되는 빌딩과 맞먹는다.이렇게 덩치가 큰 것은 흰긴수염고래,대왕고래,참고래이다.흰긴수염고래는 지구가 생긴 뒤로 기록된 것 중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고래의 종류는 열 가지쯤인데 우리나라에서 주로 잡히는 것은 길이가 육칠 미터쯤 되는 밍크고래와 보리고래—장 포수가 말하는 “브라이드”—이고,참고래가 드물게 잡힌다.고래는 물에서 살지만 폐호흡을 하는 젖먹이 동물이다.앞다리가 가슴지느러미가 되었고 뒷다리는 퇴화해서 없다.고래의 종류를 이빨이 있는 이빨고래와 이빨이 퇴화하고 없는 수염고래로 나누기도 한다.이빨고래의 이빨은 “황소 뿔만”하다.고래의 먹이는 주로 작은 물고기나 크릴이라는 새우인데 고래는 일정한 장소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먹이를 찾아서 떠돌아다닌다.남극 바다에서 고래가 많이 잡히는 것은 그곳에 크릴새우가 많기 때문이다.고래는 물속에 있다가 가끔 숨을 쉬기 위해서 물 위로 올라오고 먹이를 바닷물과 함께 빨아 들였다가 머리에 뚫린 코로 물을 뿜어낸다.고래잡이들이 이 물뿜기를 보고 고래를 발견한다.
장 포수는 해방되기 이태 전에 포수가 되었다.일본 사람들이 좀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포수 일을 맡기지 않았지만 그의 솜씨가 인정을 받아,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포수가 되었다.그는 큰 배를 타지는 못하고 삼십톤이 채 못되는 배를 타고 밍크고래를 전문으로 잡았다.그러나 천구백사십오년에 해방이 되자 포경선이 뜨지 못했다.그때 장생포에는 일흔명쯤 되는 사람들이 포경선을 탔는데 그 사람들의 대표가 일본에 있는 포경 회사에 가서 퇴직금 요량으로 배 두척을 얻어 와서 주식회사를 만들었다.그리고 그 다음해인 천구백사십육년에 고래잡이를 나섰다.

“포경선은 선장보다 포수가 윗자리였습니다.선장은 별로 권리가 없었지예.포수가 가자 카는 데로 배를 모는 기 선장이라예.그때 일본 사람 밑에서 포수를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심더.그러니까 해방되기 이태 전에 포수가 되었심더.우리나라 고랫배 최초의 포수가 바로 냅니더.그때부터 “장 포수”가 유명해진 기라예.우리가 배 두척으로 고래 잡으러 가니까 동네 유지들이 “니들이 고래를 잡아오모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안 했십니꺼.그래 우리가 참고래를 일흔두 마리를 잡았심더.요새예? 없심더.일년에 참고래 한 마리 잡을까말까 하지예.
“고래 잡는 거 말입니꺼? ….네,그야 말로는 간단하지예.고래가 있을 것 같은 곳에 배를 타고 가거던예.그라고 그곳을 돌아댕겨예.마스트 위에 눈이 좋은 선원이 올라가 있다가 고래 물뿜기를 발견하모 배를 그리고 몰꼬 가는 기라예. 예,그렇지예.배가 가모 고래가 도망을 가지예.성깔이 있는 놈은 후다닥 도망은 가지만 끝까지 쫒아가모 지가 지치고 맙니더.포수가 지시를 안 합니꺼.고래가 물속에 들어갈 때의 모습을 보고 경험으로 알아 맞추는 기라예.고래 속도가 십칠 노튼데 배는 최고로 속력을 내 봤자 십오 노트거든요.그래도 경험이 있는 포수모 놓치지 않습니더.내보다 고래를 더 마이 잡은 포수는 대한민국에 없심더.

“예?…아,그렇지예.고래 가까이 가모 그러니까 삼사십 미터쯤 다가가서 포를 쏩니더.포는 칠십 미리 폰데 유효 사거리가 오십 미텅기라예.유효 사거리 안에만 들어오모 다 맞히는 기라예.급소에 포를 맞히모 고래는 금세 죽어예.솜씨가 뛰어난 포수는 단방에 죽이를 않심더.단방에 죽으모 고래가 가라앉아 버립니더.그라모 원치로 끌어올리는데 고래가 배 무게와 엇비슷하모 큰일납니더.그러니까 고래가 직사하지 않게 포를 맞히고 이번포 삼번포를 쏘아서 고래가 지치게 만듭니더.고래는 미친 듯이 배를 끌고 다닙니더.한두 시간쯤 지나 고래가 지쳐 죽으모 원치로 끌어다가 배 옆에 붙여 둡니더.요새 잡은 밍크나 브라이드 같은 거는 작아서 선상 해체를 합니더.그러나 참고래같이 큰 놈은 배때지에다가 공기를 넣어 뜨게 맨들어서 배 옆에 꿰차고 항구로 들어옵니더.해체 장소 말입니꺼? 와 부두에서 보모 건너편 조선 공장이 있지예.그게 있습니더.”

포경선이 고래를 많이 잡아 귀항할 때는 선황기를 꽂고 뱃고동을 울린다.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모두 부두로 몰려 나온다.선황기는 친구들이나 선주가 만들어준다.잡아온 고래를 “해부장”으로 가지고 가서 분해한다.
먼저 고래 꼬리를 밧줄로 매어 원치로 매달아 올리고 칼로 목 부분의 껍질을 자른다.꼬리 부분에서 밧줄로 목부분을 걸어 당긴다.그러면 지방층이 두터운 껍질이 소롯이 벗겨진다.이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척추에 붙은 살을 벗겨낸다.해부 일꾼들은 실밥을 타듯이 칼로 조금씩 건드려 주기만 하면 길쭉하고 큰 고기 덩어리들이 그대로 떨어져 나온다.그 고기를 칼로 토막을 내어 냉동해서 덩이째로 팔든지 기름을 짜서 판다.척추나 요추나 매추도 마디마디 자른다.내장도 버리지 않고 머리도 버리지 않는다.그리고 보면 고래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기름을 짤 적에는 높이가 이 미터쯤 되는 “증부”라는 솥에 뼈와 내장과 고기 토막을 담고 수증기로 끊인다.고래가 크면 아홉솥쯤 되고 작으면 서너솥이면 된다.요즈음은 서해안의 어청도 근처로 포경선들이 나가 있으므로 장생포 해부장에서는 해부를 하지 않는다.해부장은 장생포와 어청도와 죽변에 하나씩 있다.
고래 기름은 새*끼를 밴 암컷이 가장 많이 나온다.쉰다섯자짜리 고래면 고래기름이 쉰다섯 드럼쯤 나온다.이 기름은 흔히 기계유,마아가린,고급 향료,화장품 원료로 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누 원료로나 접착제 원료로 쓰인다.고기는 생육으로 먹거나 소시지로 만들어진다.
“해방되고 난 뒤에 고래 지름이 나와도 쓸 데가 마땅찮았는 기라예.강원도에 있는 사분공장에서 사분으로 맨들었는데 그기 팔리야지 말입니더.요새도 마찬가지라예.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래 괴기를 잘 안 묵지예.부산,울산,대구,포항에서 팔리기는 하지만예.요샌 거의 일본에 갖다 팔지예.시모노새*끼에 가모 고래 회집이 즐비합니더.또 요리 방법도 예순 가지라 안 캅니꺼.맛도 아홉 가지가 있심더. 예? …제일 맛 좋은 고기요?고래 고기를 붉다꼬 적육이라 카는데예,꼬리짬에—-꼬리지느러미 아래 ———미어라는 부분이 소고기 안심은 저리가라 카지예.또 골이 져 있는,택 밑에 있는 우뇌살,목통 근처에 떡심,또 갈비뼈에 붙은 갈비살이 맛이 좋심더.뼈를 볼가 가꼬 소금에 재려 묵든지 튀겨 묵든지 회를 쳐 묵으모 희한합니더.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창,대창을 잘 묵지예.또 괴기를 잘라보모 거미줄 같은 무늬가 있는 살이 있심더.그기 또 맛이 좋심더.어떤 고래는 살이 몽땅 그런 기 있심더.그러나 또 그 “심”은…예? 아,”심”말입니꺼? 허허, 심이 자지 아입니꺼.그기 정력에 좋다 카면서 사람들이 찾지예.심이 디기 길어예.삼 미터도 더 되는데,좌무경이라카기도 하고 머리고래라 카기도 하는 것은 심이 굵고 끝이 뾰족합니더.
“예? ….흘림하는 거 말입니꺼.그기 그리 궁금합니꺼? 좋심더.지가 남극서 봤는데 말입니더,암놈과 수놈이 둘이서 장난치며 놀다가 암놈이 앞으로 쑥 가서 발랑 눕십더.그라모 수놈이 올라타서 한 오륙분쯤 흘림을 붙고 또 떨어져서 삼사분 놀다가 또 붙고 그러기를 서너번쯤 합니더.예? ….서서 한다꼬예? 씰데없는 소리! 책에 그렇게 있으모 뭐합니꺼,내가 똑똑히 봤는데. …뭐라 카능기요.사람도 서서 한다 카지만 그건 땅바닥이 받쳐 주거나 벽이 있으니까 그렇지 고래는 물속에서 불편해서 우찌 서서 하겠십니꺼.말짱 거짓말이라예.고래도 사람 마찬가지라예.고래가 우짜는고 압니꺼? ….아니 사람보다 더한 점도 있심더,새*끼한테 포를 놔 노모 에미는 도망 안 칩니더.머리고래는 황소 울음을 울며 근처에서 왔다갔다 합니더.그러다가 에미 고래가 피를 흘리는 새*끼 곁에 옵니더,그러모 또 포를 놓아 에미를 잡심더.그러나 에미를 찔러 노모 새*끼는 도망을 칩니더,또 수놈을 찔러 노모 암놈은 도망을 치는데 암놈을 찔러 노모 수놈은 도망을 안 칩니더.사람캉 같심더.
“예? …새*끼 말입니꺼.암놈이 새*끼를 노모 처음에는 찔쭘한데 금방 고래 모냥으로 부풀어 오릅니더.고래는 젖이 가슴에 붙은 기 아이라 밑구녕 바로 위에 있어예.허허….그 젖을 새*끼가 빨지예.뭐라꼬예?에미가 물속에데가 젖을 뿜어모 그기 굳어지고 그걸 새*끼가 마신다고예?누가 그랍디꺼.젖통을 보모 알지예.시끄럽습니더.그라모 내한테 묻지 말고 책을 보든지 조합에 가 보이소.그게 가모 다 조사가 돼 있을 낍니더.”
장 포수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어 주지 않자 기분이 상했는지 다시 담배를 붙여 물었다.

조합의 자료에 따르면 요즈음 우리나라 포경선이 잡은 고래고기의 구십 퍼센트를 일본에 수출한다.작년 한해 동안에 이백오십사만천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일 킬로그램에 국내 시장 가격이 오백구십일원인 것에 견주어 수출 가격은 2.13 달러이다.기름은 한 드럼에 육만원쯤 한다.
우리나라는 열세명의 선주가 포경선 스물한척,운반선 일곱척,간이 모선 일곱척을 가지고 있다.포경선에는 일곱명에서 열세명까지의 선원이 탄다.이 포경선들은 거의가 칠*팔십톤쯤 되는 작은 것들이다.천구백칠십년 한해 동안에 우리나라에서 잡은 고래는 길이가 쉰다섯자쯤 되고 무게가 이십톤쯤 되는 보리고개 이십육 마리와 길이가 스물두자쯤 되고 무게가 이톤쯤 되는 밍크고래 천삼십삼마리이다.계절에 따라 고래가 노는 곳이 다르다.그래서 포경선은 여름에 울산 해역 쪽으로 봄에 어청도 근처의 동서 해역 쪽으로 가을에 남해 쪽으로 나가 —십이월과 일월을 빼고 열달동안——–고래를 잡는다.뱃사람의 말에 따르면 진남포 근처에 있는 물이 소용돌이 치는,심 청이가 빠졌다는 인당수쯤에 밍크고래가 가장 많다.
이래저래 여러 나라에서 고래를 마구 잡는 바람에 고래는 멸종될 지경에 있다.
그래서 산밑을 돌아다니는 풀고래나 멸종 상태에 놓인 긴수염고래 같은 것은 국제 포경 협정에 따라 잡지 못하게 되어 있다.또 대개의 고래도 잡을 수 있는 수효가 제한되어 있다.

포경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첫째로 원시적인 고래잡이 방법으로서 고래 곁에 가서 창으로 찔러 죽인다.둘째로 미국식 포경 방법으로 작살을 총으로 쏘거나 손으로 던져 잡는다.세째로 노르웨이식 포경 방법으로 포경포로 작살을 쏘아 잡는다.포는 직사포인데 배의 고물에 장치하고 포 앞에 줄판이 있어서 그곳에다 밧줄을 사려 놓고 그 줄의 한 끝을 고래 작살 뒤에 연결해서 작살을 맞고 죽은 고래를 배로 끌어올리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고래잡이 장비도 바로 노르웨이식 셈인데 일번 작살에서 사번 작살까지 있다.일번 작살에 연결된 밧줄이 가장 튼튼한 새 줄이다.길이도 이번 작살의 밧줄이 가장 긴데 천 미처쯤 된다.포수는 포를 정확하게 쏘는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철따라,일기따라 고래가 많이 있는 곳을 훤히 할아야 하고 멀리서도 고래의 물뿜기를 볼 수 있을 만큼 눈이 좋아야 한다.

“눈이 보뱁니더,와 사람들이 “장 포수”를 아직도 들먹이는지 아십니꺼? 지가 눈이 좋심더.십리 밖의 물뿜기를 대번에 알아 안 봅니꺼.포질도 잘하고 우리나라 근처 바다는 손바닥처럼 압니더.머리 싸움인 기라예.고래캉 내캉 서로 숨바꼭질한는 기라예.이 싸움도 잘해야 되지만예 물손이 좋아야 됩니더.예? 물손이 뭐냐고예? 와,같은 자리에서 낚시질을 해도 고기를 잘 낚는 사람이 따로 있고 한 사람도 못잡는 사람이 따로 안 있씀니까.그게 바로 물쓴아입니꺼.지는 물손이 좋심더.지는예 고기를 낚아도 딴 사람들보다도 많이 잡심더.아직까지 지가 고래하고 머리 싸움해서 지 본 적이 없어예.또 지만 가모 고래가 떠올라예.그기 바로 물손 좋은 기라예.그러니까,선주들이 늙도록 배를 타 도라 안캤습니까?

“예? 고래고기 묵어서 오래 사느냐고 물었심니꺼? 아니라예,우스개 같은 이야기지만 한번 들어 보이소. 우리나라 지도를 보모 토끼마냥 생깃다꼬 그라지예.맞심더.포항이 토끼 꼬리라고 카지예.그라고 자세히 보모 울산만이 꼬리 밑으로 해서 길쭉하고 쑥 들어가 있심더 .
여 울산만이 바로 암토끼 밑구멍인 셈이기라요.그래서 음기가 쎈 곳이라 안 캅니꺼,여기 사내들이 그 음기에 싸여 강해지는 기라예.음기 안에 있는 양기는 강한 법이라예,허허,우스개로 들어이소 그라이 내가 이리 오래 사는 건지 모르지예.우리 경로당에 여든이 넘은 어부 출신 노인들도 많심더.”

장 포수는 예순여섯살이 됐을 때까지 배를 탔다,그가 잡은 고래의 수효는 몇천 마리도 더 되고 그가 번 돈돈 “몇십억”이 넘는다고 했다.그는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 돈을 저축해 두지 않고 모두 써 버린 것이라고 했다.그는 스물두살때 혼인하여 남매를 두었다.딸은 서울에 살고 아들은 장생포에서 회집을 한다.
그는 며칠 뒤에 경로당에서 진해 벚꽃놀이를 간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그는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경로당에 나와서 놀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면 돌아간다.그곳에서 “아이들처럼 쌈하고 화투치고 이야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장 포수는 앞장을 서서 휘적거리며 골목을 나가 부둣가에 섰다.갈매기 두 마리가 끼룩거리며 높이 날고 짭조롬한 바닷바람이 불고 있는 부두 저편에는 낮술에 취한 어부 차림의 젊은 사내가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다가 오줌이 마려운지 부끄러움도 없이 바지를 걷어 내린다.그리고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었다.오줌발에 햇살이 하얗게 부서졌다.바다에는 풍랑이 일고 있었다.

장 포수는 손을 들어 바다 남쪽 건너편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을 가르켰다.
“저기 진달래꽃으로 온통 뒤덮인 저기 바로 해부장이 있심더.조 왼쪽에 있는기 배 만드는 회산데 옛날에는 포경 주식회사가 있던 곳입니더.보이소,오늘 해는 좋은데 파도가 있지예.그러나 이 파도는 죽어 가는 기라예.파도 끝을 보모 압니더.그라고 여 와서 물빛을 보이소.”
장 포수는 햇살이 분부시게 부서지는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저 물빛이 맑지요.그라모 서풍이 불고 파도가 잦아질 징조라예.물빛이 탁하모 남풍이 불고 물살이 세어질 장조 아입니꺼.
“저기 있는 철선 저게 고랫배라예.저 배에는 경탐기라는 레이다 장치가 있지만예 그기 그리 효과가 없심더 .요새 고랫배 타는 젊은이들이 심은 좋지만 저런 장비를 너무 믿심더.그런데 기계가 우에 믿을 만한 긴가예?”
먼 데서 뱃고동 소리가 났다.장 포수는 바다를 쳐다보고 있었다.물빛은 진한 쪽빛이었다.그 쪽빛은 차갑고 깊고 억센 느낌을 준다.장 포수의 눈빛도 쪽빛을 띠었다.그러나 그의 눈빛은 몹시 따스했다.그가 쳐보다고 있는 바다는 장생포가 아니라 그가 휘젓고 다닌 더 큰 바다 더 먼 바다인지도 모른다.그는 그런 자세로 오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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