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생태철학1강 : 공동체는 공간이 아니다, 관계다 – ‘폐쇄된 공간 폐쇄된 관계, 아파트문명’

2013.11.11 | 행사/교육/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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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속의 생태읽기> 첫 강좌 ‘폐쇄된 공간 폐쇄된 관계, 아파트문명’은 어색하고도 즐거운 자기소개로 시작되었습니다. 자기소개와 더불어 이 강좌에 참여하게 된 다양한 동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생생한 담론을 듣고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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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아파트에 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파트는 개발독재시절에 부의 상징이었죠.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된 사람들이 한 질문이 “김장독을 어디에 묻지?”였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그 후로 아파트는 중산층의 이미지로 확대되며 도시를 장악합니다.

이어서 ‘무연사회’라는 영상을 보았어요. 무연사회란 인연 없는 사회, 관계없는 사회를 뜻합니다. 1인 가구가 많은 일본사회에서 ‘유품 정리인’이라는 직업이 알려졌을 때, 제일 많이 들어온 문의가 ‘사전예약’(“내가 죽고 나면 내 유품을 정리해 달라”)이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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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는 ‘파편화된 개인의 삶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극빈층에게는 돌봄과 치유의 부재를, 중산층에게는 자신의 이익을 지킬 사람이 자기뿐임을 알려주는 공간입니다. 장소는 같이 쓰지만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파트의 성격을 홉스의 철학과 연관지어 살펴보았습니다. 홉스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했습니다. 홉스의 이러한 설정은 ‘마치 새장처럼 칸칸이 격리되어 있는 아파트의 풍경’을 연상시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콩나물 버스처럼 여백이 없고 서로 움직이는 순간, 부딪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집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층간소음이 되어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홉스는 <물체론>에서 ‘환상’이라는 개념을 쓰는데 강사님은 이것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심리구조와 비슷하다고 하셨어요. 외부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외부에 감응하여 기쁨과 슬픔을 느끼기 보다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으로 쾌-불쾌만을 느끼며 TV와 같은 ‘환상’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충족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아파트 문명에 대한 대안으로 성미산 마을, 관악주민연대, 빈집 등 다양한 ‘마을’의 사례를 보여주셨습니다. ‘아파트 문명이 갖고 있는 기계적인 배치’를 넘어서 소통과 관계를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보시며, 아파트가 사람들 사이에 싹트는 소통과 관계의 희망까지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결국 마을은 우리들 사이이며, 호혜, 돌봄, 연대로 이루어진 관계인 것이죠.

강의를 마치고 소감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흥미진진했습니다. 아파트에만 쭉 살아서 ‘집’에 대해서 애정이 없고 늘 나의 ‘방’이 중요했는데, 여러 공동체 사례들을 보면서 공동체라는 것이 처음으로 감각적으로 다가왔다는 분도 계셨고요. 마을이라는 것이 낯설고 내가 저기에 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마을이 강요하는 인간관계가 부담스럽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파트에 살다가 주택 산지 3년이 되었는데 동네 할머니들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는 어린 조카를 보며 부러웠다는 얘기도 재밌었어요.

특정 마을이나 공동체가 ‘정상 가족’ 중심으로 꾸려져서 비혼여성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 배타적인 것은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고, ‘마을’이라는 명명으로 인해 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도시 속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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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님은 마을은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고 마을 자체가 모델이 아니라 ‘메타모델’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부의 소수자들에게도 열려있는 열린 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강의를 마무리하셨습니다.

나의 삶과 내가 놓여있는 세상에 대해서 깊이 있게 사유하지 못하고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다양한 영상과 지적인 자극으로 뇌가 충전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사님께서 직접 내려오신 더치커피도 너무 맛있었어요! 다음 강의는 ‘자동차가 만든 속도 문명’입니다. 그럼 또 만나요!!

*더 풍부한 내용은 강사님이 쓰신 책 <갈라파고스로 간 철학자>를 참조하세요.

글: 장학생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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