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대만에서 원자력발전소는 없다.

2005.06.23 | 미분류

▲ 2000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제 4핵발전소’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민진당의 모습. 민진당은 2000년 정권교체 후, 제 4핵발전소 건설중단을 선언하였다가 국민당 등의 반대로 공약을 철회한 바 있다.(가운데 사람이 천수이벤 총통의 모습)

또다른 부안, 대만 제4핵발전소 반대운동 현장보고

글 : 녹색연합 에너지담당간사 이버들

그동안 부안에 대해 마음의 빚이 컸다.
환경운동을 시작한 첫 해에 만난 거대한 싸움이라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서투름에 스스로 부끄러웠고, 열심히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늘 마음 한 편을 짓눌러왔다. 주민들이 다치고, 구속됐다는 이야기엔 물조차 넘어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털 수 있었던 계기는 ‘주민투표’와 ‘새로운 다짐’이었다. 투표관리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밝은 주민들의 모습에서 반핵운동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고, 반핵운동을 끈기 있게 하는 것으로 주민들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지워 가리라는 새로운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반핵운동이 어렵다고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의 모순과 고통 받는 소수, ‘인간’에 대한 깊은 고찰이 반핵운동 현장에는 자연스레 묻어져 나온다. 이번에 만난 공랴우 주민들 또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애정과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20여년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었다.

1980년 초반에 부지가 매입되었고, 원전 건설여부가 알려지기 시작한 1989년부터 공랴우 주민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당시는 우리의 군사정권과 유사한 국민당 독재시절로, 민주화 운동과 함께 독재정권 타도의 기치로 원전 반대운동이 확산되었다.

제 4발전소 반대운동 진영은 국민당이 득세하는 현 정부 상황에서는 반대운동이 어렵다고 판단, 주민투표를 반대운동의 기폭제로 삼고자 했다. 따라서 공랴우향과 태북현, 타이페이시, 일란현에서 4차례에 걸친 주민투표가 시행되었고, 원전건설 반대가 우세하게 나타났다. 반대운동 진영은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라고 촉구했지만, 국민당 정권은 ‘법적 효과가 없다’며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컸기 때문에, 2000년에 감격스러운 정권교체를 이끌어냈고 제 4핵발전소 반대운동 또한 건설 중단이라는 새로운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55년 만에 눈물겨운 정권교체를 이끌어 낸 천수이벤 정권은 공약대로 2000년 10월 27일, 제 4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민당 등 원전추진세력이 다수를 차지하는 입법원(국회)에서 격렬히 반대, 총통 파면 움직임까지 일게 되었다. 또한 제 4핵발전소 제조사인 미국의 GE사와 일본의 히타치, 토시바도 위약금을 이유로 건설요구 압력을 가해오고, 보수성향의 대법원회(헌법재판소)도 건설 중단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자, 결국 행정원은 궁지에 몰려 이듬해 2001년 2월 14일, 건설 이행을 표명하고 말았다.

공사는 다시 재개되었지만, 반대운동은 끝난 것이 아니다. 원전 주변지역의 예방약 보급운동과 제4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위한 국민투표 논의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그간 반핵운동으로 반핵진영은 중요한 성과를 얻었다. 대만 정부가 비핵가원(非核家園)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물론 제 4핵발전소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더 이상의 원전은 건설하지 않기로 시민들에게 약속하였다. 20여년 기나긴 싸움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핵 정책의 전환을 이뤄내기까지 많은 시민들의 힘이 모여졌지만, 특히 공랴우 지역주민들의 지속적인 운동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시위 도중 사고로 인해 12년 동안 감옥에 복역한 한 젊은이를 끈기 있게 기다려주고 배려한 지역주민들의 눈물겨운 인간애가 이끌어낸 결과인 것이다.

답답한 한국 상황과 비교해 대만은 특별하다는 필자의 농담에, 벌써 20여 년째 제 4핵발전소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시시민 대만국립대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반핵운동은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환경운동이지만, 지역간∙세대간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운동이다. 따라서 대만 민주화는 각 지역에서 불붙은 주민운동에 기초하였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발생하였다. 어찌 반핵운동으로 귀결되지 않겠는가.”
한국의 새로운 민주주의 운동이 반핵운동으로 귀결되기를 마음 깊이 희망하며, 공랴우 주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눈 안에 담아두었다.

* 이 글은 부안독립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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