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후스. 덴마크에 있는 항구 도시다. 빙산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흰색의 주택단지 아이스버그와 돌출된 발코니, 오르후스 도시 전체를 360도 조망할 수 있는 레인보우 파노라마 미술관 등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사진 출처 : 위키페디아. CC BY 3.0 저자 : Anosmoman
이 도시가 환경활동가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오르후스 협약 때문이다.
오르후스 협약(Aarhus Convention)은 1998년에 채택된 국제 협약인데, 풀 네임은 ‘환경문제에서의 정보에의 접근, 의사결정에서의 시민참가 및 사법절차에의 접근에 관한 협약’이다.
환경단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환경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환경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사법절차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이 중 세 번째, 사법절차에의 접근권이 중요하다. 환경단체에게도 원고적격을 부여하고 있는 점이 이번 기사에서 이 도시를 소환한 이유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47개국이 가입해 있는 이 협약은 누가 환경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다툴 수 있는 환경문제가 무엇인지, 누가 환경사건을 판단하도록 할 것인지, 어떤 구제 제도를 갖출 것인지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협약가입국들은 환경소송의 원고적격 문제를 확장하여 해석하고, 제도화하고 있다.
원고적격이 뭐길래?
원고적격이란 말 그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당사자가 되는지 여부를 말한다. 원고적격을 가지지 못한 자의 소송은 부적법한 것으로 ‘각하’되고 만다. 다투어 볼 것도 없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원고가 될 자격이 주어진 사람들은 누구일까? 환경소송에서 우리나라는 환경영향평가 대상사업지역을 중심으로 원고적격 여부를 판단한다. 대상지역 내의 주민들은 환경상의 이익이 침해 또는 침해우려가 있다고 추정되지만, 대상지역 바깥의 주민들은 이를테면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는 환경상 이익에 대한 침해 또는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야만 원고적격을 인정한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대상 지역’이란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주체인 사업자가 설정한 것인데, 사실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예상하는 지역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환경피해와 오염이 행정으로 구획된 선으로 명확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경계를 구분하여 대상 지역으로 설정한 곳의 주민에게만 원고적격을 인정하고, 그밖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또한 행정소송법 제12조에 의해 “취소소송은 처분 등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법률상 이익이 있을 때 원고적격이 인정된다. 이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말하므로, 공익 보호의 결과로 얻어지는 추상적, 평균적, 일반적 이익과 같은 것은 법률상 이익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즉,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종 등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이익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으로 보지 않고 있어 원고 적격에도 제한을 가하는 요소가 된다.
환경단체에게 원고적격을 부여하지 않는 나라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단체가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 공공재로서의 자연환경 피해와 생태계 훼손에 대해 환경단체에게 소송권을 부여하지 않는 국가는 선진국 중엔 일본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있다. ‘선진’ 대열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독일은 환경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 요건을 환경구제법 (Umwelt-Rechtsbehelfsgesetz)에서 규정하고 있다. 정관에 환경보호목적이 명기되어 있을 것, 공익을 목적으로 3년 이상 활동을 존속해 온 비영리 단체로 단체의 목적을 지지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는 조건(열린 참여) 등을 충족하고 관련 행정청의 승인을 받은 단체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외국의 단체 역시 연방청의 승인을 통해 원고적격을 가질 수 있다.
영국도 오르후스 협약에 따라 제 3자의 환경공익청구소송이 가능하도록 관련 사법심사청구제도를 시행 중이다. 단체의 원고적격에 관해서도 원고의 충분한 이익 여부, 단체의 지명도, 전문성 정도 등을 검토한 후 재량으로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생물종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개발허가에 대한 영국 파충류학회에 환경공익소송의 원고적격을 인정한 사례, 방사능폐기물배출허가건에 대해 환경단체의 원고적격 인정 사례, 지자체의 광산 채굴 허가나 대규모폐기물처리시설 설치 허가에 대해 반대 지역대책위에게 원고적격을 인정한 사례들이 있다.
미국도 원고적격을 판단할 때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익 침해가 발생했는지, 이익의 침해가 피고의 행동으로 인한 것인지, 법원의 판결로 그 이익 침해를 구제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데, 개인 또는 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때 구성원들의 이익 침해를 입증하도록 한다.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이 하와이섬의 멸종위기조류 빠리야와 함께 공동원고가 되어 하와이주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에서 시에라클럽의 원고적격은 인정된 바 있다. 바다쇠오리의 서식지인 목재회사 소유의 캘리포니아 산림에 대해 주 정부가 벌목을 허가했을 때도, 환경단체가 바다쇠오리와 공동 원고로 소송을 제기했고 이때 환경단체의 원고적격도 인정되었다.
중국도 민사소송법과 환경보호법에 일정한 자격을 충족하는 단체가 공익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사소송법상 “환경오염, 소비자의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등 사회공공이익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법률이 정한 기관과 관련 단체가 인민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환경보호법에서도 요건을 갖춘 사회단체는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프랑스도 환경단체가 정관에서 정하는 사항으로 해당 단체가 보호할 임무를 갖는 이익이 침해된 경우에 그러한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다툴 원고적격을 가지며, 국가에 의해 승인을 받지 않는 환경단체에게도 소송 자격이 인정된다.
소송 남발이 걱정된다고?
환경영향평가법개정 서명하기 : https://bit.ly/3TcetKM
우리나라가 단체 소송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기본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소비자단체로서 정관에 소비자 권익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소비자 권익의 침해 금지나 중지를 위해 단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도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와 비영리민간단체에게 단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경보호는 소비자 보호나 개인정보 보호와 같이 중대한 공공 자산을 지키는 일이다. 환경영향평가법에 환경단체가 원고적격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항을 신설해서, 환경단체가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되는 계획이나 사업으로 인해 자연생태계 파괴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환경침해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하도록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경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의 요건 규정을 두면, 소송 남발에 대한 우려는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공익에 대한 적극적 해석과 공익적 가치 보호를 제도로 담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을 요구해 보자.
글.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 (070-7438-8512, mayday@greenkorea.org)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