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할머니처럼 바다로 간다

2024.08.05 | 제주 바다

할머니는 제주 우도의 해녀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물질은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테왁을 가슴에 얹고 해산물은 망사리에 담으며 고무 옷, 물안경, 납덩이만 의지한 채 수심 20미터 물속을 한숨에 내려갔다. 당신의 가슴팍보다 큰 다금바리, 돌돔, 벵에돔을 작살로 쏘고 어른 주먹만 한 전복, 소라, 오분자기 등을 곧잘 해오셨다. 그런 할머니가 잠수병으로 오래 고생하셨다. 마흔이 되면서 귀가 먹먹해 말귀를 못 알아들었다. 머리의 어지럼증이 심해 하얀 가루약 진통제인 ‘뇌선’을 밤낮으로 달고 살았다. 나는 할머니와 대화할 때 말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입 모양만 보고도 할머니는 손자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듣곤 했다.

물질 나간 해녀는 하루하루 참는 것으로 한평생을 쌓았다. 고막이 찢어져도, 두통이 무겁게 찾아와도, 무릎 연골이 물러져도, 해녀는 잠수의 고통을 그냥 참았다. 몸이 아파도 물때가 맞으면 다음 날 바다로 나갔다. 질겅질겅 씹은 껌을 바닷물에 씻고 귀를 막았다. 할머니에게 바다는 선택도 거부도 할 수 없는, 돈벌이로 고맙지만, 또 지긋지긋한 애증의 공간이었다. 이제 그 바다에 당신의 손자가 들어가려고 한다. 가끔 들려주었던 남방큰돌고래 ‘곰새기’ 이야기, 바다 숲으로 빽빽한 우도 비양도 바다, 1미터가 넘는 혹돔과의 만남, 그리고 나의 문어 아저씨. 할머니가 본 바다는 어떠했을까.

대략 20년 전, 내 생애 첫 다이빙은 강원도 고성 청간정 바닷속이었다. 바다에 들고 나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어릴 적 태평양 거친 바다에서 자연인처럼 수영을 배운 ‘바다 싸나이’ 아니었던가. 중고등학교 시절, 빨간 양파망을 허리춤에 달고 물 빠진 바닷속을 휘저으며 맨손으로 담치를 따고 낚시질로 우럭과 놀래미도 잘 잡았다. 물고기 손질도 꽤 노련하다고 칭찬을 받았다. 어머니와 할머니도 해녀였고, 아버지는 냉동 고깃배를 운영하고 있기에 바다가 나의 삶 가까이 있었다. 무엇보다 바다가 익숙하고 편했다. 그러기에 “다이빙쯤이야, 뭐 대충해도 잘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첫 다이빙 날 아침, 칼바람 부는 아야진 포구는 담백한 맛의 도루묵, 새끼줄을 엮어 늘어진 뜨거운 양미리 구이와 함께 아름답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아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때의 긴장감이란. 공기통을 매고 호흡기를 물고 머리를 찬 바닷속에 넣었다. 입수와 동시에 마스크에 물이 차올랐다. 시야가 흐려지고 호흡은 더욱 가빠진다.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손과 발은 따로 허우적거린다. 다이빙 강사의 수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머리가 하얗다. 수압이 높아지면서 온몸이 압착되었고, 허리에 찬 10킬로그램 납 벨트는 헐렁해 빠질 듯했다. 귀가 쨍하고 고통스러웠다.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인 중성 부력을 잡지 못해 오르락내리락했다. 잠수 중 내뱉은 공기 방울은 수면으로 떠 오르며 점점 큰 원으로 부풀어 올랐다. 성급히 수면으로 상승하니 콧속의 실핏줄이 터져 옅은 피가 맺혔다. 바다는 초보 다이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만을 버리고 침착하고 겸손해지자. 지난 세월, 할머니의 잠수병은 수압을 온몸으로 견뎠기 때문에 생긴 병이었다. 수압으로 먹먹해진 귀는 일주일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긴가지해송과 다이버

나는 녹색연합 활동가로서 30~40대를 보냈고,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에서 50대를 맞이하고 있다. 첫 다이빙의 경험 이후, 이런저런 환경 현안을 보기 위해 우리나라 바닷가를 제법 다녔다. 군산, 김제, 부안의 새만금 갯벌을 조사했고, 지역 어민들과 아침, 저녁을 같이 먹었다. 점박이물범을 촬영하려고 북한 장산곶이 마주 보이는 백령도 물범바위 물속에 들어갔다. 해양생태 안내자 교육인 ‘바다학교’를 경남 남해군 폐교에서 열었고 조간대와 조하대 저서생물, 염생식물, 물새를 만났다. 전국의 해안선과 해안림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접근할 수 있는 동서남해안 모든 곳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할머니의 바다, 산호의 바다, 돌고래의 바다, 제주 바다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제주 남쪽 바다, 서귀포 강정등대 아래, 분홍바다맨드라미 수중동굴 서식지에서 대형 자바리와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를 닮은 범섬의 깜깜한 해식동굴 안에 주걱치 무리가 자리를 틀었다. 문섬 새끼섬 동쪽 수중 직벽은 바다의 소나무인 산호 ‘해송’의 뽀얀 하얀색으로 빛난다. 어른 다섯 명이 들어갈 만한 서건도 수중동굴 주변에는 큰산호말미잘이 가득하고 흰동가리가 더불어 살고 있다. 호흡기를 물고 본 바닷속 30미터. 육지와 똑같이 언덕이 있고 높은 산이 있으며 계곡에는 차가운 조류가 흐른다. 수심과 수온, 지형에 따라 ‘갯것’의 모양새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왜 이 시기에, 이 자리에서,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 세계를 오롯이 바라보고 싶었다.

낮의 일상, 밤의 술잔만 알고 있던 나에게 수중세계는 ‘저세상 텐션’이다. 얕은 지식으로 이해하기엔 의문투성이 바다지만 그 때문에 더욱 긴장되고 흥미롭다. 할머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들숨과 날숨, 호흡 소리만 남은 곳. 그렇다. 이제는 바다의 시간이다. 붉은빛 사라진 바닷속, 참 푸르기도 하다. 나는 할머니처럼 바다에 간다.

글. 윤상훈(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