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뜰채로 저 누런 거품 좀 거둬내면 안 되나? 파도에 이리저리 밀리는 부유 물질을 볼 때, 해양쓰레기 수거 활동을 벌일 때, 특히 바다의 날(5월 31일)을 맞아 조금은 대대적인 정화활동을 벌이며, 폐타이어나 오토바이 끌어 올리는 장면을 목격할 때, 대체 사람들이 어디까지 바다에 버릴 수 있는 것일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오염시킨 바다. 때때로 해양쓰레기 줍기 활동도 하고, 갯벌 깊이 박혀있는 불법 어구 철거 활동도 벌인다. 그 와중에 우리는 또 다른 상처를 본다. 깊고 너른 품의 바다가 마구 버린 오염물질로 움찔대고 있다면 육지와 맞닿은 연안에서 우리는 마치 공격을 당한 듯 깎이고 무너진 현장을 해안 곳곳에서 목격하게 된다. 침식이다.
망연자실한 현장… 사구가 무너져 내린다
멀게 펼쳐져 있던 백사장이 줄어들고 바다가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키 큰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침식을 직면하는 순간일 뿐이다. 백사장은 보기에도 좋은 모래밭이지만, 태풍이나 해일로부터 해안을 보호해 주는 방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자연자산이다. 귀한 백사장이 사라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키 높이를 훌쩍 넘기는 모래 절벽이 생기거나, 해안가 도로가 붕괴되거나, 주택에 균열이 가는 현상을 마주하게 된다. 망연자실한 현장이다.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강릉시에 위치한 하시동·안인사구 생태경관보전지역을 조사하던 중 침식 피해로 인해 사구가 무너져 내린 것을 보았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던 산책로는 포락 피해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습지를 따라 조성된 해안림도 무너져 곳곳에 소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연안침식의 강도와 양상이 이전과 같지 않음을 인지하고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주로 완충지대가 사라져서 배후지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거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지점, 침식 저감조치가 시행되었으나 사후 모니터링 자료가 없어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운 지점을 대상으로 돌아보았다. 조사 대상지 54개 중 침식 사면이 2m 이상 발생하거나 해변 침식으로 인해 배후지가 직접적으로 포락피해에 노출되어 있는 구간이 18곳이 관찰되었다.
▲ 태안군 운여해변의 침식현장 ⓒ 녹색연합
위의 사진은 태안군 운여해변 침식현장이다. 2023년 연안 침식 실태조사 침식등급 C (침식은 현재 A, B, C, D 4단계로 등급을 나누는데, 그 중 C등급이 우려, D등급은 심각에 해당한다)이다. 침식 방지용 호안 설치 후 북측 자연해안에 모래가 유실되어 수림이 붕괴되고 블록 호안이 무너지는 현상이 발행하고 있다.
▲ 신안군 우전해수욕장 해안침식현장 ⓒ 녹색연합
또 다른 곳은 신안군 우전해수욕장 침식 현장이다. 2023년 연안 침식 실태조사 침식등급 B이다. 제2차 연안정비 사업대상지이다. 정비사업 이후 일시적으로 해빈 폭과 단면적이 증가했지만 지속적으로 포락이 발생하여 소나무림과 산책로가 무너져 내리고 있고, 수년 째 방치되고 있다. 주변 시설물로는 관광리조트와 석축 호안이 있다.
▲ 강릉 하시동 해변 침식현장 ⓒ 녹색연합
강릉 하시동해변 침식현장은 2023년 연안침식 실태조사 침식등급 D이다. 안인화력발전소 항만시설과 침식저감시설 설치로 인해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군 시설이 붕괴되어 이동한 바 있고,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해안사구까지 무너져 내렸다. 해안산책로가 붕괴되어 출입금지된 상황이다. 주변에 강릉항과 안인화력발전소가 있다.
침식은 사전 예방만이 답… 바다가 경고한다
국내 연안 침식 피해는 1980년대 후반 댐과 보 등 제방시설이 즐비해지고, 이로 인해 하천을 통해 유입되는 토사 공급량이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심화되기 시작한다. 어항 방파제나 대규모 발전소들이 해안에 늘어나면서 해안에 돌출 형태의 구조물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파랑장과 모래 흐름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하며 침식은 더욱 가중된다. 이에 더해 해안도로와 관광시설 들이 연안 해안 배후지에 들어서면서 백사장 폭도 감소하고, 바닷모래 채취가 가해지면서 침식은 가속화되었다.
해수부의 연안침식실태조사종합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360개 해안 중 침식 우심(우려-심각)지역이 44.7%로 나타난다. 전년 대비 1.6% 증가한 수치이며, 2004년 연안침식 모니터링을 법제화 한 이후 우심지역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가장 많이 악화된 지역은 연안 이용과 개발 비중이 높은 부산이다. 가장 오랜 기간 동일지점을 모니터링한 2014년 우심률은 43.6%에서 2019년 61.2%로 증가했다.
연안침식은 기후변화로 인해 점차 가속화될 전망이다. 잦아지는 태풍과 고파랑의 증가로 모래가 유실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파도의 영향권이 높아지면서 침식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평균 해수면 변동률(1993년~2020년)은 연간 3.28mm/yr로 같은 기간 전 지구 평균 3.2mm/yr보다 높은 편이다.
한국환경연구원이 발행한 해안침식영향평가 보고서(2009)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이 지속될 경우 해안침식율이 69.2% 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태풍 발생 빈도도 29.2%(RCP4.5)에서 57.5%(RCP8.5)까지 증가, 강도는 27.9%(RCP4.5)에서 42.1%(RCP8.5)까지 강해질 전망이다. (*RCP. Representative Concentration Pathways – 210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및 대기 중 농도 변화양상을 나타낸 시나리오. RCP 2.6, 4.5, 6.0, 8.5가 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심각한 단계다.)
해양수산부는 2000년부터 10년마다 연안정비계획을 수립하여 침식 피해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사후 복구를 위한 해안 구조물 건설에 예산과 정책이 집중되고 있다. 1·2차 연안정비계획에 총 1조 1819억 원이 투입되었고, 제3차 연안정비계획에서도 2030년까지 2조 891억 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해안 구조물은 고파랑의 영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가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사후관리 비용이 높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또한 구조물 배치 과정에서 주변 지형의 침식에 대한 고려가 미흡해 건설 이후 2차 침식을 야기하거나, 일부 사업을 지역개발사업으로 활용하여 침식 유발 가능성이 있는 매립사업 등이 시행되는 부작용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태안국립공원을 비롯한 몇몇 지점에서는 대나무 모래포집기를 이용해 사구를 복원하고 콘크리트 호안을 제거하고, 이용제한구역을 설정하는 등 친환경 복원에 힘쓰고 있지만, 이 또한 대상지의 환경에 따라 적용 가능한 구역에 한정된다.
연안은 외해와 내륙의 기부변화와 영향이 모두 전파되는 권역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기후환경에 따라 연안침식은 더욱 높은 강도로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연안보전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의체 (IPCC)가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피해가 예상되는 다섯 가지 분야 중 하나로 연안해안을 꼽은 이유, 수자원, 생태계, 식량, 보건과 함께 유일하게 지리적 공간을 극심한 피해 예상 지역으로 채택한 이유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선 연안과 배후지, 특히 침식위험 지역의 주변 개발과 이용행위가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검토 분석해야 하며, 이용을 제한하는 일, 즉 침식을 사전에 예방하는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 침식이 진행된 후 세우는 사후관리와 대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점, 바다의 변화는 느리지만 느린 속도가 만들어낸 변화의 육중함과 파장의 심각함은 돌이키기 어렵고 엄중할 터임을 인지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환경피해 사전예방의원칙은 연안침식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바다가 경고하고 있다.
글.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 (070-7438-8512, mayday@greenkorea.org)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