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백패커스후기] “인간들이 지어 놓은 선 사이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살고 있구나”

2024.10.22 | 해양

바다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24 블루백패커스는 2박 3일 간 소청도와 백령도를 다녀왔습니다.

22명의 블루백패커들은 섬 구석구석을 다니며 해양쓰레기를 치우고

서해 끝자락, 경계의 바다에 살고 있는 다양한 존재를 만났습니다.

블루백패커스가 만난 소청과 백령의 바다를 참가자 김승현님의 후기를 통해 전합니다.

“인간들이 지어 놓은 선 사이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살고 있구나”

소청도 분바위 해변에 모인 블루백패커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부드러운 물거품이 이는 옥빛 바다. 밟으면 달그락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회색 조약돌로 가득한 해변. 2박 3일을 함께 한 소청도의 마지막 모습은 어느 여행용 잡지에 실릴 법한 관광지 홍보 사진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출발 일주일 전 온라인 사전 미팅을 앞두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가기를 주저하고 있었어요. “네가 쓰레기 줍겠다고 연휴를 마다하고 신청한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결정을 해도 일정과 내용부터 들어보고 정하라”는 주변의 말에 잠시 핑계를 멈추고 미팅에 접속했어요. ‘블루백패커스 소청도 해양쓰레기 조사단’을 주최하는 녹색연합과 20여 명의 신청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본론인 해양 쓰레기 실태와 우리가 해야 할 쓰레기 조사 일정, 조사 방법을 공유 받았습니다. 우리는 출발일에 인천 여객 터미널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온라인 미팅이 끝났는데, 때마침 여자친구가 어떻게 하기로 했냐는 연락이 왔어요. 저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재미도 의미도 있을 것 같아서 가보겠다고 말이죠.

분바위 해변에 쌓여있는 해양쓰레기 © 블루백패커스 박해원

인천항에서 3시간 반가량 배를 타고 소청도에 도착했어요. 출발 전 태풍에 대한 걱정과 달리 유난히 맑고 화창한 날씨의 소청도가 모두를 반겨줬습니다. 하지만 그 반가움 뒤에 해변에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해양 쓰레기들을 보니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지더라고요. 

우리는 민박집과 캠프장에 짐을 부리고 식사를 마친 뒤 소청도에서 유명하다는 분바위로 갔어요. 분을 바른 것 같이 희다고 해서 이름이 지어진 분바위 아래에는 자연산 홍합과 톳이 천국을 이룬 것처럼 엄청나게 펼쳐져 있더라고요. 그런데 여기도 해양 쓰레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더라고요. 출렁이는 파도에 각종 쓰레기 더미가 떠다니고, 익숙한 라면 봉지와 페트병들이 원래 해변의 풍경인 양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해변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블루백패커스

우린 팀을 나누고 구역별로 쓰레기 수거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자갈밭에 있는 페트병 뚜껑, 비닐 등을 수거하다가 바위가 많은 쪽으로 이동하니 얼마나 다양한 쓰레기가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어선에서 쓰이는 플라스틱 그물과 밧줄, 노끈들이 바위 사이사이에 휘감겨 어찌나 수거하기가 까다롭던지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쉽지만, 버린 쓰레기를 다시 거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작업을 끝내고 한데 모아보니 수십 개의 쓰레기 포대가 생겼더라고요. 이 작은 해변에도 이렇게나 많은 해양 쓰레기가 있다는 사실에 속이 답답하면서도 깨끗해진 해변을 돌아보니 그래도 함께 거둬냈다는 것에 보람과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점박이물범 서식지를 관찰중인 블루백패커스. 서식지 뒤로 황해남도가 보인다

2박 3일 내내 쓰레기만 줍진 않았습니다. 둘째 날에는 국내 최대 물범 서식지인 백령도로 떠났어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것처럼 백령도는 북한의 땅과 신기할 정도로 가깝더라고요. 물범들은 남과 북 영토 사이에서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니 인간들이 지어놓은 선 사이에는 또 다른 생명들이 살고 있구나, 비단 우리들만 이 땅에 사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양쓰레기가 가득한 바닷가에서 알을 품고 있는 검은머리물떼새. 백령도 고봉포구 인근 해변 © 최성용 작가

그 다음 날에는 소청도에서 철새를 연구하는 국가철새연구센터를 들렀습니다. 기후 변화와 간척 사업으로 보금자리와 먹거리를 잃어버린 새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연구원님의 이야기에 또 한 번 우리만 생각하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돌아온 민박집에서는 섬 주민 분의 생각도 듣게 되었어요. 해안가의 쓰레기는 치워도 치워도 끝없이 떠밀려온다고, 대부분이 섬에서 발생한 것도 아닌데 사정을 모르는 내륙 사람들은 괜히 섬사람들에게 탓하고 책임을 지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내륙에서만 살아온 저는 육지의 시야로만 저들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의 마음도 들었어요. 환경을 위해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된 일도 즐거웠다고, 소소한 마음들이 모여 작지만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입니다.

해변 정화 활동을 마친 블루백패커스

이번 소청도 블루백패커스 2박 3일은 저에게 가능성을 느끼게 해줬어요. 장시간 배를 탄 것도, 섬에서 해양 쓰레기를 줍는 것도, 물범을 직접 본 것도, 조류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모두 다 처음이었거든요. 쓰레기를 주우면서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우리만이 우리가 버린 것을 치울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첫발을 뗐기 때문에 다음도 기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온다면 또 참여해 볼 생각이에요. 앞으로 녹색연합에서 준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대하면서 후기를 마칩니다.

2024 블루백패커스 김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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