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해와 서해, 남해로 둘러쌓여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지정학적으로는 한국전쟁 이후 대륙과 연결됐던 육로의 단절 탓에 우리는 경제, 물류, 정치, 환경적으로 사실상 섬나라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생태적 관점으로 확장하면 바다는 보다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시공간입니다. 지구 전체 표면의 약 71%를 차지하는 바다는 수많은 해양생물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지구의 기후 체계와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녹색연합은 해양보호구역 모니터링을 통해 발견한 우리 바다의 문제들을 [월간바다]에서 소개합니다.
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최황 활동가
hoan@greenkorea.org
해변은 왜 조금씩 좁아지고 있을까요?
여름 휴가철 바다를 찾았다가 예전보다 백사장이 눈에 띄게 좁아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 있으신가요? 기억의 착각이 아닙니다. 실제로 한국의 해안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서서히 뒤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이를 연안침식이라고 합니다. 해양수산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안침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연안 364개소 중 침식 우려 및 심각 등급 지역은 148개소로 전체의 40.7%에 달합니다. 해안 두 곳 중 한 곳꼴로 백사장이 제 기능을 잃었거나 잃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스스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A등급 해안은 전체의 4.4%에 불과합니다.
연안침식은 단순히 모래가 조금 줄어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 지대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고, 그 위에 기대어 살아온 생물들의 터전이 소멸하는 일입니다.

건강한 해안은 스스로 숨을 쉽니다
건강한 해안은 정해진 형태로 고정된 지형이 아닙니다. 파도와 바람, 조류에 반응하며 끊임없이 모래를 주고받는 살아있는 시스템입니다. 백사장(사빈), 모래 언덕(사구), 그리고 그 뒤쪽의 석호는 각자의 역할을 하며 이 순환을 완성합니다.
파도가 실어온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백사장은 파랑 에너지를 1차로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백사장 뒤쪽의 사구는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면서 담수를 저장하고 정화합니다. 폭풍이 불면 사구는 모래를 내어주어 백사장을 보강하고, 잔잔한 날에는 바람이 모래를 다시 사구로 돌려보냅니다. 이 유기적인 순환이 해안의 회복력을 유지해왔습니다.
문제는 이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구 위를 지나는 해안도로, 석호를 메워 만든 농경지와 주거지, 파도를 막기 위해 세운 옹벽과 방파제들이 수만 년간 이어온 모래의 이동 경로를 차단해버렸습니다. 국립생태원 조사에 따르면 과거 지형도와 비교했을 때 현재 한국의 해안사구 총면적은 약 36.2%나 줄었습니다. 과거 전국 200여 곳에 산재했던 크고 작은 사구들 중 현재 대규모 사구로 남은 곳은 충남 태안의 신두리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제주도의 경우 과거 분포했던 사구의 82.4%가 이미 사라진 상태입니다.

동해와 서해, 무너지는 방식도 다릅니다
동해안의 침식은 주로 ‘모래 이동의 차단’에서 비롯됩니다. 1990년대 이후 대규모 항만과 발전소들이 들어서면서 설치된 방파제들이 연안류를 따라 흐르던 모래의 흐름을 막았습니다. 방파제 한쪽에는 모래가 과도하게 쌓이고, 반대쪽 해안은 모래 공급이 끊겨 깎여 나가는 불균형이 발생합니다. 침식을 막으려고 해안에서 수직 방향으로 제방을 쌓는 돌제(突堤)를 설치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접한 해변의 모래를 빼앗는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릉 하시동 안인사구가 그 단적인 예입니다.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돼 보호받던 이 사구는 인근 안인화력발전소가 들어서고 해상 컨베이어 벨트와 방파제가 설치된 이후 불과 4년 만에 소멸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는 태백산맥을 넘어 대도시로 흘러가지만, 사구의 소멸은 고스란히 지역 생태계와 주민의 몫으로 남습니다.
서해안의 침식은 성격이 다릅니다. 금강, 영산강 등 주요 하천에 설치된 하굿둑과 댐이 바다로 흘러가야 할 모래와 퇴적물을 내륙에 가두면서, 해안에 대한 ‘공급원 자체’가 사라진 상황입니다. 여기에 1980년대부터 수도권 건설 현장을 위해 서해 바다 모래를 대규모로 채취한 것도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신안과 진도 앞바다에서만 약 15년간 1억 5천만 세제곱미터의 모래가 퍼올려졌습니다. 서울의 인왕산이나 남산 부피와 맞먹는 규모입니다. 도시를 세우기 위해 모래를 퍼다 쓴 우리에게 바다는 지금 서해안의 만성적인 침식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큰 낙폭의 단차가 생기는 서해안의 전형적인 연안침식. 전남 신안의 우전해변. ©녹색연합
해안이 사라지면 그곳에 살던 생물들도 사라집니다
사빈과 사구는 건조하고 척박해 보이지만 사실 여러 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간입니다. 도요물떼새류는 이곳에서 알을 낳고 쉬어가며, 바다거북은 사빈에 산란하고, 표범장지뱀은 사구 생태계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이들은 모두 생태계의 사슬에서 없어선 안 되는 존재들이죠. 해안선이 뒤로 물러나고 모래 공급이 끊기면 이들이 살아갈 물리적 기반 자체가 사라집니다.
침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바다로 쓸려 나간 미세 퇴적물은 수중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부유물질이 늘어나면 물속으로 빛이 닿지 않아 해초류의 광합성이 어려워지고, 이는 치어들의 은신처와 먹이사슬의 기초를 무너뜨립니다. 파도 에너지를 흡수하던 백사장이 사라지면 배후의 습지와 숲도 외해의 충격에 직접 노출됩니다. 연안침식은 해안선 하나가 뒤로 물러나는 일이 아니라 그 위에 얽힌 생태적 관계 전체가 끊어지는 일입니다.

해란초가 열심히 피워낸 꽃에서 꿀을 먹는 박각시나방이 분주하게 날아다닙니다. 강릉 안인사구. ©녹색연합
우리가 연안침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서울에서 작은 싱크홀 하나가 생겨나면 이 대도시는 즉각 반응합니다. 곧장 싱크홀 주변에 바리케이트가 설치되고, 싱크홀이 일어난 원인을 분석하고, 꺼진 땅을 콘크리트로 채웁니다. 그에 반해 연안침식은 서울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어서일까요? 시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이 연쇄적 재난은 여전히 낯설기만 합니다. 그러나 해안을 잠식하는 이 재난은 도시의 성장이 연안에 전가해온 비용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일은 연안 생태계를 지키는 동시에 그 부담을 지역에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불평등한 구조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매년 오뉴월이 되면 해수욕장에 모래를 채워 넣는 양빈 작업이 반복됩니다. 개장 시즌에 맞춰 해변을 ‘괜찮아 보이게’ 만들기 위한 임시방편입니다. 하지만 그럴 듯한 모습으로 잠시 매워둔 해변의 이면으로 침식의 근본적 문제는 방치돼 있습니다. 녹색연합은 해양보호구역 모니터링을 통해 연안침식의 실태를 지속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응급 처치가 아닌 모래 순환의 회복, 해안 사구의 복원, 연안을 압박하는 개발 구조의 근본적 전환을 위해 현장 조사와 정책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녹색연합과 함께 사라져가는 해안선을 지키는 일에 동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