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백두대간 후기① 김다은님 “말은 더해지지 않았고, 그만큼 오래 남았다.”

2026.01.20 |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생태축입니다. 2005년 백두대간은 마루금을 중심으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생태계를 훼손하는 난개발 사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녹색연합은 백두대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난개발에 따른 훼손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백두대간의 숨은 명산인 석병산과 대표적인 난개발 현장인 자병산 석회석 광산을 탐방하는 <다시 만난 백두대간, 자병산행>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김다은님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내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갈 힘도, 그렇다고 완전히 멈출 용기도 없던 시기였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산에 올랐고, 그 뒤로 몇 해 동안 별다른 이유 없이 산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풍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생겼다. 물이 마른 계곡, 제때 물들지 못하고 떨어진 잎들, 훼손을 막기 위해 등산스틱 대신 나무 지팡이를 권하는 안내문들. 자연이라고 부르던 장면들이 이미 많은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을, 나는 산에서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2년 전 정강이뼈가 부러지면서 산행은 멈췄다. 몸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고, 나는 오랜 시간 누워 지냈다.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내가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었는지가 뒤늦게 또렷해졌다. 그렇게 녹색연합을 알게 되었고, ‘다시 만난 백두대간, 자병산행’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원도 정선과 태백에 걸쳐 있는 자병산은 백두대간 보호구역에 속해 있다.

보호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석회석 채굴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나는 그 산을 오르게 되었다. 날씨는 계속 바뀌었고, 몸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여러 속도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앞서 가던 사람은 뒤를 살피며 눈을 손으로 치웠고, 숲해설가는 걸음을 멈출 때마다 나무의 이름을 짚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장갑을 벗는 손이 있었고, 뒤에서는 혹시 부르지 못한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산에 오르기 전 눈길에서 미끄러져 끝내 함께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길 위의 시간은 그렇게 각자의 보폭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산행 내내 활동가들은 자리를 바꾸며 움직였다.

앞에서는 지형을 설명했고, 중간에서는 전체 속도를 살폈다. 홍보팀은 장갑을 벗었다 끼기를 반복하며 기록을 남겼고, 뒤에서는 뒤처지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특별히 드러나는 말이나 몸짓은 없었지만, 그 움직임이 산행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석병산을 오르는 동안 눈 덮인 숲이 이어졌다. 길은 고요했고, 발밑에서는 눈이 부서지는 소리만 났다. 조금 더 올라가자 풍경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열렸다. 자병산 석회석 광산이었다. 낮아진 능선과 끊긴 산자락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보호라는 말과 예외라는 말이, 그 풍경 속에서 겹쳐졌다.

그 자리에서는 누구도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도시와 건물,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바라보는 데에서 이야기는 멈췄다. 말은 더해지지 않았고, 그만큼 오래 남았다.

산행의 마지막에 찾은 백복령 카르스트 지형 앞에서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싱크홀과 돌리네를 바라보며, 자병산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그 역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풍경이 남아 있는 이유와, 남지 못한 곳들이 동시에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배낭을 풀었다.

눈에 젖은 장갑과 흙 묻은 신발을 현관에 두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날 본 산의 풍경과, 그 풍경이 사라진 자리가 번갈아 겹쳤다. 어느 쪽도 쉽게 놓이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공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글: 김다은 참가자

문의: 자연생태팀 김원호 활동가 (democracist@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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