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생태축입니다. 2005년 백두대간은 마루금을 중심으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생태계를 훼손하는 난개발 사업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합니다. 녹색연합은 백두대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 난개발에 따른 훼손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백두대간의 숨은 명산인 석병산과 대표적인 난개발 현장인 자병산 석회석 광산을 탐방하는 <다시 만난 백두대간, 자병산행>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 강한결님의 후기를 공유합니다.


첫날 오른 석병산은 폭설 이후라 등산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눈이 가득 쌓여 계단의 형태조차 보이지 않았고, 자주 미끄러졌다. 등산화로 눈길을 쓸어내리자 갈색빛 일본잎갈나무 잎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나무는 한때 ‘박정희 나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빠른 성장과 경제성을 이유로, 헐벗은 이 나라를 짧은 시간 안에 푸르게 만들겠다는 당시 국가 주도의 산림녹화 사업에서 대규모로 조림된 수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넓은 숲의 대부분이 낙엽송, ‘일본잎갈나무’다. 내가 가꿔진 정원을 찾아 온 것도 아닌데, 자연을 보고 있다고 믿었던 풍경 대부분이 1960년대의 작업 결과라는 사실이 묘하게 낯설게 다가왔다.
바람에 눈이 쌓인 구간에서는 때로는 무릎 언저리까지 발이 푹 빠졌다. 하산길은 산을 걷는다기보다 산에 몸을 맡긴 채 미끄러지며 내려오는 느낌에 가깝다. 안전을 고려해 정상 직전에서 모두 하산을 결정했고, 정상은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이튿날, 자병산 석회석 광산이 내려다보이는 지점까지 올랐다. 우측으로 시선을 멀리 두자 강릉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정선의 산에 올라 강릉이 정선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센 바람이 부는 가운데 마주한 풍경은 태백산맥의 일부라고 믿기 어려웠다. 산이라기보다는 공사장에 가까웠고, 광산 개발로 크게 훼손된 모습이었다. 이곳의 채굴은 이미 끝난 일이 아니라, 2049년까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계단식으로 깎아낸 광산의 한 단 높이는 아파트 한 동에 맞먹는다고 했다. 석회석 광산 주변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은 채, 맨땅만이 드러나 있었다. 백두대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과연 이곳에서 무엇이 보호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석회석은 물이 잘 빠지는 특성으로 인해 오목하게 파인 ‘돌리네 지형’을 만든다. 지형으로 남아 있는 곳에서는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 하지만 자병산에서는 석회석을 가졌다는 사실이 오히려 산이 산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석회는 지형이기 전에 자원이 되었고, 자연의 일부이기 전에 채굴의 대상이 되었다. 같은 돌인데, 어디에서는 이름이 되고 어디에서는 이유가 된다.
정선 백봉령 쉼터에는 토속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감자옹심이, 장칼국수, 꿩만두국을 주문하고 수수부꾸미와 메밀전병을 함께 나눠 먹었다. 곧이어 나온 메밀전병 접시에는 ‘정선갓전병’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바로 옆 영월의 메밀전병이 김치만두소에 가깝다면, 정선 메밀전병 속에는 갓절임과 약간의 들깨가루, 들기름이 들어간다.
정선 토종갓은 여수에서 주로 먹는 대가 굵고 알싸한 돌산갓과 달리, 대가 연하고 톡 쏘는 매콤함이 거의 없다. 꿩만두국의 만두 속에서도 같은 정선 토종갓을 맛볼 수 있었다. 알고 보니 황갓이라 불리는 정선 토종갓은 농가 소득 향상과 관광자원화를 목표로 한 토종갓 상품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제철 식재료와 건강한 농업 먹거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는 처음 접한 정선 토종갓 음식이 인상 깊었다.
이번 일정에서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보다 더 크게 남은 것은, 내가 보고, 느끼고, 먹고, 숨 쉬는 거의 모든 것이 어느 시절 정부의 선택과 정책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동 중 오르막길을 오르는 버스 창밖으로는 더이상 운영하지 않는 숙소 건물에 걸린 빛바랜 평창올림픽 현수막, 스쳐 지나간 가리왕산 케이블카 입구까지 그 장면들 역시 평창올림픽이 남긴 흔적들이었다.
내가 본 나무도 석회 광산도 대부분 1960~70년대의 산물었다. 물론 그 시기의 선택이 오늘의 풍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는 그 선택이 어떤 풍경을 남기는지 충분히 알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백두대간을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자원으로 어떻게 남길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글: 강한결 참가자
문의: 자연생태팀 김원호 활동가 (democracist@greenkorea.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