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백지화 단식8일째

2003.02.13 | 백두대간

내원사 지율스님 단식농성 8일째, 천막철야농성 2일째.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 지율스님,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구현위원회 윤희동신부님 사이로 부산녹색연합 손유정 간사님이 자리에 누웠습니다. 밖은 한잔 얼큰한 취객들의 과음소리, 자동차와 오토바이 엔진소리, 그리고 며칠 전 지하철 시청역에서 ‘로또’라 외치며 투신자살한 망자의 목소리가 짬뽕으로 뒤범벅입니다.

[지율스님 단식 현장보고] :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백지화 단식8일째



스님께서 산사(山寺)에서 거리로 내려온 이유는 ?
부산시청 앞 지하도에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집을 잃은 많은 노숙자들이 있습니다. 농성천막의 뾰족 끝점을 중심으로 그래도 우리는 하늘 아래 잠자리가 있습니다. 한밤 천막 안에서 느끼는 도시는 다양한 소음의 경연장입니다. 천막 바닥의 스티로폼 위로 귀를 가만히 붙여대고 땅의 진동을 느껴봅니다. 귓속 고막을 통해 지진 같은 소음이 얼얼하게 머리를 두드립니다. 뭔가 기운이 동하나 생생하고 맑지가 못합니다. 자연과 생명의 기운은 느끼기 힘든 탁한 밤입니다.

자연에 대한 폭력
천성산이 위치한 가지산 도립공원은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22개의 고층습지와 30여종의 보호대상 동·식물이 존재합니다. 백두대간 중 낙동정맥의 핵심이자, 마지막 줄기이며, 소위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입니다.

양산의 천성산과 부산의 금정산에 각각 16.2km와 18.3km의 장대터널이 수려하고 청정한 ‘영남알프스’의 맥에 초대형구멍을 뚫습니다. 조용한 산사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새소리와 물소리의 합장이 아니라 프랑스산 떼제배(TGV)의 자기부상하는 자력과 엔진의 울림입니다. 육체불사의 존재인 양 의기충천한 인간은 이내 자연 없이 기계조작 만이 가능한 자기 육체를 경험할 것입니다. 프로그램화된 자본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대체할 것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오염된 육체는 정신을 뒤흔들고 탁한 정신은 육체회귀의 고향이 땅임을 알고 뒤늦게 되돌아보지만 땅의 기운, 자연의 기운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무릇 기운과 마음 씀씀이는 생동해야 맛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리기뿐”
원효의 『기신론』을 읽고 발심하셨다는 내원사 지율스님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단식을 시작하셨습니다.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백지화 공약실현을 위한 단식농성」입니다. “내 산 지키자고 다른 산 죽일꺼냐”고 말씀하시며, 고속철도의 대안은 “백지화뿐”임을 강조하십니다. 부산시청 앞에서 매일 아침 8시 30분, 생명사랑 실천기원의 마음으로 참회기도 108배를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일반시민들이 지율스님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맑고푸른시민연대’, ‘습지와새들의친구’, ‘금정산지킴이’, ‘민주노동당’, ‘환경운동연합’, ‘환경을생각하는불자모임’, ‘물만골공동체’, ‘불자산악회’ 등이 힘을 모았습니다. 내원사 대중스님 40여분이 반야심경을 외고, 동참기도법회 300배를 올렸습니다. 지율스님이 직접 촬영하신 금정산·천성산 생태사진 50여점도 내걸었습니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윤희동 신부님도 단식농성에 동참하셨습니다. 대활스님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리기뿐”이라며 부산역에서 시청 앞까지 마라톤을 농성을 하신답니다.



불교계를 우롱한 노무현당선자의 약속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불교계의 으뜸가는 공약으로 고속철도 대구∼부산구간 백지화 및 대안노선결정을 내세웠습니다. 내원사 총무원까지 꾸역꾸역 올라와 악수하며 백지화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아울러 올해 3차에 걸친 인수위 면담 자리에서도 백지화 공약이행과 민관협의체 구성 전까지 금정산·천성산 구간의 모든 공사중단에 합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칙과 약속을 잘 이행해 왔다는 노무현 당선자는 고속철도 대구∼부산 2단계 구간 중 천성산 구간(13-3, 13-4)에 대한 공사입찰에도 나몰라라 뒷짐지고 있습니다. 건교부와 고속철도공단은 “기회는 이때다! 얼씨구나” 대통령취임 전에 행정절차를 미룰 수 없다며 지난 7일 예정대로 입찰을 진행했습니다. 덩달아 안상영 부산시장마저 2003년 시정핵심사업으로 국제적인 해양도시로 발돋음하기 위한 물류공단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고속철도 노선변경 결코 없다”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망발입니다.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그만 두십시오!
도대체가 이번 정권에서도 또 다시 반복해야 합니까? 개발에서 보전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외치던 때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반환경적 개발논리로서 일관합니까? 왜 전북을 방문해 새만금 중단없다고 말씀하십니까? 핵폐기장 부담은 어쩌시렵니까? 동해안의 좋은 해안사구 망쳐 북한으로 놀러가야 합니까? 대통령당선자의 결단과 의지는 환경과 녹색생명의 어느 곳에서 있습니까?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제발 “그만 두십시오, 좋은 말할 때.”

지난 10일, 철야단식하겠다며 지율스님께서 부산시청 앞에 천막을 치려고 준비하였습니다. 순간 부산시청 경비원 40여명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천막을 해체하였습니다. 일주일 간 단식하며 기운 없던 지율스님이 천막에 매달려 한줄기 눈물을 보였습니다. “싸우지들 말아요, 생명은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현재 지율스님께선 조금씩 탈진증세를 보이고 계십니다. 이번에 단식으로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시면 곧장 서울로 달려가신답니다. 정부부처건 환경단체건, 무엇이든지간에 천성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자랑스레 달고 있는 ‘환경’의 간판을 걷어치운다 말씀하십니다. 천만 다행입니다. 우리는 ‘녹색’이라…

지율스님께서 노무현 당선자에게 보내는 동영상 편지

기록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활동가 윤상훈 dodari@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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