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희망 / 새만금엔 지금 장승꽃이 활짝

2001.10.22 | 백두대간

게시일 : 2000/07/07 (금) PM 05:18:46 조회 : 586

새만금엔 지금 장승꽃이 활짝

김은주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알림지기

봄까치풀이 이쁘게 피어난 부안엘 다녀왔습니다. 어떤 풀보다 더 빨리 언 땅을 밀고 올라와 반가운 봄소식을 전한다 해서 이름도 고운 봄까치풀입니다. 둔덕에 가득 피어난 그 풀꽃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아이들의 모습 또한 참 이쁩니다.
“저기 보여요, 어… 오리처럼 생겼는데… 아, 저건 갈매기다!”
초등학생 성수가 망원경을 들여다보다가 소리를 지르네요. 전북 부안의 계화리 갯벌 물억새랑 갈대숲 사이에 머물고 있는 새들이 어린 손님들을 맞아 날개짓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녹색연합 청소년모임 ‘아이지엘’친구들, ‘미래세대 신탁소송’을 시작한 아이들, 그리고 녹색 회원들이 찾아온 것을 반기는 모양입니다. 그 아름다운 갯벌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슬픈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갯벌간척사업을 하느라 갈혁도의 흙을 전부 퍼다내는 통에 섬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얘기도 듣고 풍성한 생명의 땅 해창갯벌도 30%를 빼고는 전부 매립될 위기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저만치 내려다보이는 갯벌의 아름다움이 슬플 지경입니다. 힘없는 어른들은 경제논리에 밀려 제대로 반대조차 하지 못하고 망쳐버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섰습니다.
더 이상은 자연을 무시한 인간 위주의 개발 정책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에 새만금을 살리려는 이들과 함께 새만금에 선 아이들. 지난 1월 30일에 있었던 새만금 매향제에 이어 이번엔 전국의 장승을 새만금에 불러 모았습니다.
“자, 힘들 내요. 영차, 영차, 여∼엉차!”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과 환경연합, 녹색연합 사람들이 힘을 모아 70여분의 장승을 해창 갯벌에 세웠습니다. ‘갯벌이여 영원하라’‘생명의 땅 갯벌’‘I LOVE 갯벌’… 갯벌을 지키려는 염원을 모으고, 앞으로 이 땅을 살아갈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장승을 세웠습니다. 장승을 지탱하느라 밧줄을 꼭 붙들고 있는 이오(녹색 ‘아이지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힙니다. 중학생 성수의 꽉 쥔 주먹도 믿음직스럽습니다. 성남녹색연합의 이름표를 달고 갯벌에 자리를 잡은 목어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달겨들어 빨갛고 파란 색깔도 입히고, 소망의 글씨도 직접 적어 넣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신명이 오르는 장면들입니다.
어젯밤 부안의 마포분교(지금은 폐교된 학교인데, 마을 사람들이 탁아방으로도 운영하고 교육장으로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에 잠자리를 정하고 새벽 1시까지 토론도 하고, 늦게까지 잠도 안 자던 아이들이 바로 이 아이들 맞나, 싶습니다. 갯벌사랑의 열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녹색연합 허욱 간사님을 괴롭히며 질문을 퍼부어대던 아이들이었기에 새만금에 장승을 세우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탠다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는 듯 합니다.
어젯밤 초등학생 꼬맹이 성수가 물었습니다.
“갯벌은 왜 생겼어요?”
이 땅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 다 이유를 가지고 세상에 왔다는 것을, 성수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고등학생인 준석이가 물었습니다.
“교과서에 갯벌간척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처럼 나오던데 그렇게 공부한 친구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그러자, 순욱이가 또 냉큼 대답했지요.
“있잖아, 우리가 하는 거. 미래세대소송!”
아이들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둥이 되고 주고 있었지요. 이렇게 고운 아이들의 뜻이 모아졌으니 앞으로 갯벌간척의 길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장승을 세우고 행사는 계속됩니다. 갯벌을 메우느라 온통 허리가 잘려나간 석산, 해창산의 산신에게 제도 올리고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에서 새만금 백합에게 드리는 풀꽃상 전달의 순서도 있습니다. 무세중 선생님께선 백두대간 산신령님과 서해의 용왕님을 모셔놓고 한 판 굿판을 벌입니다. 그 굿판에선 우리 아이들도 주인공이 되어, 간척사업을 강행하려는 개발업자로 서 보기도 하고 다시 갯벌을 구하는 하이얀 천사 역할도 맡아 봅니다. 이 곳에선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갯벌의 친구입니다.
새만금 갯벌간척을 반대하는 것은 비단 한국의 몇몇 환경단체가 아니라 세계 70여개 단체에서도 우리의 지킴이 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합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잘못된 사업인데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사람들은 도대체 땅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돈만 딛고 사는 모양입니다.
부안 사람들과 한데 얼려 얼쑤 춤을 추는 사람꽃이 곱습니다. 지금 새만금에는 사람꽃 뿐 아니라 장승꽃까지 활짝 피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갯벌은 희망입니다.

(2000. 5월 녹색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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