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연해주 생태탐방 활동 보고서 (1)- “호랑이와 표범이 주인인 땅 핫산스키”

2003.08.19 | 백두대간

연해주 생태탐방 활동 보고서 (1)

“호랑이와 표범이 주인인 땅 핫산스키”

이유진 / 녹색연합 국제연대 활동가

북한, 중국,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두만강 하구, 러시아 연방의 최남단 연해주 핫산스키지역은 아직도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생태계 보고이다. 녹색연합과 교보생명교육문화재단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명의 환경활동가들과 함께 아무르 호랑이와 극동표범이 서식하는 케드로바야파트 자연보호구, 두만강 하구를 휘감고 도는 습지의 땅 핫산자연공원과 러시아에서 하나뿐인 해양보호구 탐방을 통해 한반도와 이어지는 생태축으로서 이 지역을 이해하기 위해 나섰다.  
1860년 베이징 조약에 의해 러시아령이 된 연해주는 서쪽으로 중국 흑룡강성과 연변 조선족자치주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17km 국경을 이룬다. 속초에서 배를 타고 17시간, 러시아를 통한 백두산 관광항로로 알려져 있는 자루비노항은 바로 핫산스키의  관문이다. 극동러시아에 위치한 요충지로 태평양함대와 태평양국경수비대가 주둔하고 있는 블라디보스톡을 지원하기 위한 부대가 포진하고 있었으며, 1991년까지 군대가 이 지역 경제, 사회를 주도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군대가 빠져나가자 지역경제는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섰고 지금도 해변에는 유류저장탱크, 무기고와 같은 버려진 군사시설이 방치되어 있다. 핫산에서 가장 높은 해발 490m의 두만나야산에는 레이더 기지가 남아있고 능선을 따라 벙커와 탱크, 그리고 지하 4층 깊이의 미로 같은 지하 기지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다.  주민들이 고철을 팔기 위해 뜯어낸 것으로 보이는 훼손된 탱크와 지하기지 시설은 미국과 대치하던 옛소련의 흔적을 상상하게 할 뿐이다. 베트남이 미국과 전쟁에서 승리를 자축하면서 구찌터널을 세계적인 관광상품화 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숙소가 위치했던 비차즈 에는 돌고래, 바다표범, 고래를 훈련시켜 바다속 지형파악과 심해정찰을 하고 심지어 돌고래에 어뢰를 달아 잠수함을 폭파하는 연구와 훈련을 담당했던 옛 해양포유류 연구 센터 건물이 남아있다. 그 때 연구한 자료는 아직도 미공개 파일로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가 머문 숙소의 옛 주인이 바로 해양포유류 연구센터 총책임자소유였다.
버려진 군사시설을 제외하고는 43만5천 헥타르에 달하는 핫산스키지역은 총 42%가 각종 보전지구로 지정되어 있고, 온대와 아열대의 경계에 위치해 종다양성이 높은데다 극동 표범의 서식지가 자연적으로 보전되고 있는 지구상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 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연방정부가 자연보호구 운영을 지원할 예산조차 충분치 않은데다 실업이 늘어나면서 불법어업과 밀렵, 그리고 산림파괴가 심각해지면서 러시아 WWF(야생동물보호기금)는 핫산스키에 생태관광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케드로바야파트자연보호구에서는 아무르 호랑이와 극동표범을 연구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과학자와 방송국을 대상으로 자연보호구를 개방하고 그로 인한 수입으로 자연보호구를 유지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과 잘 보전된 생태계 외에는 지역 주민들이 실업을 극복할 수 있는 일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도 러시아 WWF에서 생태관광을 대안으로 꼽은 이유이다.
케드로바야파트 자연보호구에는 대륙사슴, 반달곰, 여우, 호랑이, 표범 등 한반도에서 이미 자취를 감춘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극동 표범은 전 세계에서 단 32마리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러시아 WWF의 극동지역 담당자 앤텀 로진스키는 “그 중 2마리는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3마리 정도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서식하고 나머지는 모두 연해주 일대에 있다”며 곧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표범을 보호하기위해서는 국가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자연생태국장은 “해발고도가 30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800종의 식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양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숲이 안정되어 있다”며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한반도 자연생태계가 대륙과 어떻게 연결된 것인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WWF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표범과 호랑이 사진을 기고하는 한 전문가는 이제 호랑이와 표범을 사진기에 담으려면 10일 이상을 잠복해야 한다며 점점 이들 야생동물을 발견하기가 힘들어 진다고 전한다.
악명높은 사냥꾼 양코브스키가 운영했던 대륙사슴 농장에서 우리는 맹수들로부터 공격당한 사습의 사체가 곳곳에 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날카로운 이빨 자국과 반쯤 먹힌 사체는 이곳이 정말 맹수의 제왕 호랑이가 사는 곳이 맞음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해당화가 해안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고, 사구(모래언덕)와 낮은 구릉이 전혀 훼손되지 않은 해양보호구에서는 가마우지를 비롯한 바다새와 바다표범 54여 마리를 관찰 할 수 있었다. 바다표범을 70미터 근방에서 마주친 일행은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이곳 해양보호구는 난류와 한류가 회귀하기에 다양성이 뛰어나다. 해양보호구 관리대장은 “주민들이 해삼과 대개를 잡아서 중국에 밀거래하는 것이 성행하고 있다”며, ”해상에서는 해양보호구 관리인들과 불법 다이버들 사이에서 종종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문제는 불법 다이버들의 보트와 장비가 훨씬 좋기 때문에 단속보다는 쫓아내는 일에 급급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두만강 하구 핫산지역은 한눈에 보아도 습지와 호수의 땅이다. 인공위성을 이용한 두루미류 이동경로 추적결과, 러시아 무라비오카와 한카호수에서 번식한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월동지인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두만강 유역의 습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습지연대 김인철 간사는 “두만강 하구의 광활한 습지는 각종 개발로 신음하기 이전 약 40년 전의 낙동강 하구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새의 다양성과 개체수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훨씬 우수한 것 같다”며, 이곳에서 한국이 얼마나 생태적으로 다양한 곳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우리는 연해주 일대에서 기대했던 것 보다 많은 동물을 접할 수 없었다. ‘희망을 주는 시화호만들기 시민연대’ 최종인 대표는 그 원인을 산불로 보고 있다. “탐방도중 야생에서 마주친 고라니와 노루가 몸을 은폐할 공간이 없었다. 연이은 산불로 초본류가 빽빽이 자라나니 맹금류는 먹이를 찾을 수 없고, 바닷가와 습지도 철새가 쉴 공간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2000년 혹독한 산불을 경험한 김원기 백두대간 보전회 회장은 “산불로 인한 교란으로 인간의 눈으로 보기엔 더없이 좋은 서식 공간 같지만 동물들에겐 혹독한 환경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실제로 한두 차례가 아닌 여러 차례 산불이 지나가다 보니 관목을 비롯한 나무가 제대로 자라질 못하고 온통 초본류가 득세하고 있었다. 게다가 습지에 할미꽃이 피어나는 등 심각한 교란 상태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마치 신갈나무 투쟁기를 보는 듯한데, 신갈나무가 산불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곳곳에 씨를 뿌려놓았다. 무릎높이 까지 자란 신갈나무, 다시 덮친 산불로 그을려 애처로워 보인다. 나무는 자랄 틈이 없다. 자랄만하면 또 불이 나서 양치식물, 고사리, 도라지, 나물류가 산불로 인해 서로 살겠다고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핫산 습지를 따라 남으로 차를 달리면 러시아, 중국, 북한의 3국 국경에 다다른다. 멀리 두만강 너머 헐벗은 북한의 산이 보이고, 북한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우정교각 위로 승객을 실은 열차가 주 2회, 화물을 실은 열차는 매일 같은 시간 다리를 통과한다. 한반도와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연해주는 한민족과 깊은 역사적 인연을 맺고 있다. 발해유적이 있고, 조선말 항일의병, 일제시대 항일지사들이 국경을 넘어 이곳에서 독립을 꿈꿨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기까지 해외독립운동의 요람이 되었던 곳이다. 3국 국경에 이르러서 북한의 헐벗은 산, 연해주의 잇따른 산불로 교란된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지역의 국경간 갈등이 심각한 만큼 산림 보호를 위한 NGO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북아산림포럼, WWF, 연변록색연합회 그리고 녹색연합을 비롯한 이번 탐방에 참여한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고 UNESCO나 Tumennet과 협력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WWF는 주정부, NGO, 여행사, 보호구, 지역주민이 모여 핫산 생태관광협회를 만들고 이 지역에 생태관광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생태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처리되지 않은 쓰레기 문제, 프로그램 미비, 각종 시설 부족 등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17시간이나 걸리는 뱃길과 비용 문제는 여전히 한국의 일반인들이 참가하기에는 부담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러시아 WWF와의 더 나은 협력을 위해 WWF가 한국을 방문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연해주의 경험을 가지고 한국에서 환경운동을 지속하면서 더욱 넓은 시아를 갖고 동북아의 환경보전을 위해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핫산 습지에서 본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드넓은 습지에 녹색파도가 밀려왔다. 노루 두 마리가 하얀 엉덩이를 흔들며 그 녹색 파도위를 달린다. 그 자유로움과 역동성, 야생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할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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