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치는 엄마에게, 환경운동가가 된 딸이 쓰는 편지.
엄마 저 지혜에요.
녹색연합에서 새로 일을 시작하고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신입활동가에 수습기간이 끝나지 않아서 이것저것 교육받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이 보내고 있답니다.
‘평화행동국’이라는 부서에서 제가 맡은 DMZ는 왜 이렇게 공부할 것도 많은지..그래도 재미있고 활기차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무슨 일들을 하는지 궁금하실 텐데 요즘 서로 얼굴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없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지난 토요일 19일에 골프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원도에 다녀왔어요.
바로 8차 생명버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에요.
강원도에 무슨 문제가 있길래 버스가 가냐, 하실 텐데요. 지금 강원도에서 지역이슈로 골프장 문제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문제에요.
지금 강원도에서 7개 마을 주민들이 골프장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어요. 강원도청 앞에서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200일이 넘게 농성을 이어오고
있어요.
전에 엄마와 골프장 건설 문제로 짧은 논쟁을 한 것이 기억나요.
저는 골프장이 환경문제를 안고 있고 한국에는 이미 많은 골프장이 있다고 하고 엄마는 그래도 골프장이 필요하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여전히 골프장은 골치덩어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이번에
생명버스를 다녀온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제가 다녀온 곳은 원주에 있는 구학리에요. 구학리에는 여산 골프장이
들어올 예정인데 골프장 때문에 2007년부터 5년간 마을이
소란을 겪어 왔다고 해요. 150호정도 되고 270여명이
사는 조용한 마을이 골프장 때문에 시끄러워지고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분열이 일어났어요.
구학리 폐교 운동장에서 생명버스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는데 골프장 찬성하시는 주민 분들이 오셔서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생겼어요. 개발사업이 벌어지는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고,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우여곡절 끝에 장소를 이동해서 행사를 시작하고, 골프장 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는 분들이 골프장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여산
골프장 부지 현수막을 보니 ‘아! 이 옆에 있는 숲이 모두
사라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골프장 사업이
들어올 때에 이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전 환경성 검토와 환경영향평가를 해요. 여산
골프장은 환경영향평가 중에서 임목축적이라고, 나무의 지름과 높이, 종류
등을 조사하는 것을 부실하게 한 것이 드러났어요. 또 구학리는 물이 부족한 곳이래요. 골프장은 하루에 1천~1천2백톤 가량의 물을 사용하는데, 전문가들도 골프장이 생길 경우에 마을에
물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해요.
골프장이 들어온다는 부지 옆을 따라 걸어갔어요. 산에 숲이 우거져
있는데 그곳은 모두 골프장이 들어설 예정지라고 하더군요. 왜 산에 나무들이 그대로 있으면 않되는 걸까요? 골프장이 들어서면 그곳은 금방 민둥산이 되고 그곳에 살던 하늘다람쥐, 청설모, 새, 여러가지 다양한 곤충들은 설 자리를 잃겠지요.
우리는 그런 동물과 식물들이 살던 터전을 빼앗고, 마을에 갈등이 일어나게
하면서 까지 꼭 골프를 쳐야 할까요? 골프 치는 사람들을 위해 골프장이 있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강원도에 있는 골프장의 개수는 추진되거나 건설중인 곳까지 합쳐 85곳이 있고 전국에는 200개 넘는 골프장이 있다고 해요. 인구가 적은 강원도에는 그렇게 많은 골프장이 필요하지 않아요. 골프
치는 사람들을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이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기존 골프장을
이용하고 강원도 같은 지자체에서는 수요분석에 따라 골프장 건설 허가를 내주는 일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예전에 남한강 주변에서 골프장 잔디를 심는 곳을 본 적이 있어요. 골프장용
잔디는 농약을 많이 쓰다 보니 수질오염을 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생명버스
오후 행사에서 오카리나 공연을 하신 분께서 골프장에서 두더지가 살면 땅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게 되기 때문에 두더지의 먹이가 되는 지렁이는 잡아서
죽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땅에 이로운 지렁이를 그렇게 죽이다니!!
골프장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어요. 유기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골프장의 농약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데요. 골프장이 생긴다고 하는 마을에는 갈등이 일어나고, 마을과 지자체, 마을과 사업주 간에 갈등이 생겨요. 숲, 나무, 습지, 마을, 농지는 모두 사라지고 잔디만 남아요. 골프장 잔디를 위해서는 농약이 사용되고, 물이 풍부하지 않은 곳이어도
많은 물이 사용되기 때문에 주변을 마르게 만드는 골프장은 ‘녹색사막’이에요. 골프장 때문에 전국에 숲이 사라지고 농토가 사라지고 있어요. 골프장에서
골프를 칠 때 그 땅이 예전에 어떤 곳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궁금해져요. 골프를
치더라도 사람들이 골프장에서 죽은 지렁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더 가질 수 있다면, 골프장이 생겨
집에서 쫓겨났던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엄마,
엄마가 운동으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복잡해 졌어요.
종종 엄마와 말다툼을 할 때 장난 식으로 골프 좀 그만 치라고 했죠. 엄마의
골프채를 숨겨놓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하하하
저는 엄마가 골프장에 가는 것보다는 연습장에 가신다는 것을 알아요. 운동을 시작하면서 활기가 도는 모습에 보기가 좋았어요. 하지만 제가 원주에 다녀오니 엄마가 골프
치는 것을 그만두시거나 줄이도록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어요. 골프를 치느냐, 마느냐는 결국 엄마가 결정하실 문제이긴 하지만 이야기는 꺼내보고 싶었어요.
다음에 만나면 싸우지 말고 골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기를 바랄게요.
골프보다 천천히 걷는 것은 어떨까요?
둘레길이나 제주 올레길이 걷기 좋은 길이고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동네주변에도 괜찮은 곳이 많은 것 같아요.
다음번에는 꼭 엄마와 함께 걷고싶네요. 엄마와 언젠가 둘이서 떠나는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둘레길로 여행을 가도 좋고요:) 이제 슬슬 줄일게요^^
엄마를 사랑하는 딸 지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