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아픔 … 空約이 아닌 公約으로 보듬어야 …

2014.02.20 | 백두대간

강원도지사 최문순은 “2월 15일 도지사 직권으로 홍천 구만리 골프장 인·허가 취소명령을 발동하겠다”라고 구만리 지역주민들과 약속을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도지사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채, 연락 두절에 자취까지 감추고 있다. 이에 또다시 구만리 주민들은 농민이 아닌 골프장 반대 농성자가 되어 강원도청 앞에 모여 노숙 농성에 들어갔고, 도청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다시금 농성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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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이 어떤 약속을 할 때, 그 약속의 말은 그냥 입에서 터져 나오는 헛소리가 아닌 진심이 담긴 마음의 말이어야 한다. 진정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위하고, 자신의 입장이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먼저 행동할 것을 다짐하겠다는 실천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이 약속이다. 약속은 지켜지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초의 실천행위이며 지켜내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실천행위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사람다운 행위이며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다.

2월 15일을 손꼽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셨을 구만리 주민들, 그리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많은 강원도민들, 그분들과 강원도지사 최문순의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도지사의 약속은 그저 철없는 코흘리개 아이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마지못해 엄마와 하는 약속이 아닌, 공직자의 입장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그야말로 ‘공약(公約)’인 것이다. 이를 헌 신짝 내버리듯 쉽게 저버리고 나몰라라 하는 도지사 최문순의 행동이 콧물 질질 흘리는 철부지 아이가 순간의 위기모면을 위해 거짓 약속을 한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10여년 가까운 긴 세월을 골프장으로부터 자신의 터전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온 골프장 반대 투쟁의 결실이 드디어 맺어질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기다리던 지역주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시, 천시, 멸시, 괄시, 등한시 같은 인격모독과 인권유린의 처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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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추운 겨울날, 70~80대 어르신들이 청사 앞마당에서 하신 행동은 시위가 아니다. 업무방해나 공공시설을 파괴하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모여앉아 기다린 것밖에 없다. ‘우리 도지사님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라는 기대와 희망의 마지막 끈을 끊어지지 않게 꼭 잡고 기다린 것 외에는 없다.

그분들은 데모를 모른다. 집회나 시위라는 용어보다 감자 부치미 몇 장에 막걸리 한 사발 가득 채워 주고 받으며 수다 떠는 것이 더 친숙한 분들이고, 내 땅, 내 집의 소중함을 알기에 남의 땅과 남의 집도 소중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그것밖에 모르고 그것만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분들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후손에게 돌아갈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무서워하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런 어르신들이 도청 앞마당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우리랑 약속하신 도지사님!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우리한테 한 약속 지키겠다고 얼굴이라도 비치고 한마디만 해주시요…’ 이같은 심정으로 도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고 기다린 것에 대하여, 공유재산 관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정당한 업무수행에 방해를 준다는 이유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행동인가?

사람이 사람 기다리며 길바닥에 앉아있는 것이 죄가 된다면, 어린 아이가 일 나간 엄마 돌아오길 기다리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도 죄요,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자의 집 골목 어귀 가로등 밑에서 사랑하는 여인 얼굴 한번 보기 위해 오밤중에 기다리고 서있는 것도 죄가 될 것이다. 정안수 떠놓고 집나간 자식 돌아오기를 신령님께 빌며 새벽마다 싸리문 밖으로 고개 길게 빼고 기다리는 어머니들에게까지 죄를 씌울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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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정당한 업무수행에 방해를 주며, 어떠한 행위가 공유재산 관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인가? 낫 들고 곡괭이 들고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깨부수고 횡포를 부린적이 있던가? 그저 앞마당에 모여앉아 쭈글쭈글 주름잡혀 탄력없는 메마른 손 찬바람에 시려워 주머니속 깊숙히 찔러넣고, 숨 쉴 때마다 폐 안 가득 차가운 공기 들어차는 고통 참아내며 옷깃 여미고 붙어 앉아 서로의 체온으로 언 몸을 녹이며 도지사의 말 한마디 듣기 위해 기다린 것이 죄가 된단 말인가?

이런 행위가 공무수행에 방해가 되고 공유재산 관리에 지장을 준다고 한다면, 도지사 최문순의 행동은 어떠한가? 도지사로서 마땅히 처리해야 할 도지사의 직무인 강원도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도민들의 고충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한 안일함에 대하여 직무 유기의 죄를 물어 도지사직을 물러나게 해야 할 것이다.

강원도지사 최문순의 처신은 이러해야 마땅했다. 구만리 주민들을 17일 오전에 미리 모셔 강원도와 골프장 건설업자들과의 입장에 대한 설명을 드리고, 직권취소에 대한 결정과 처리절차에 있어서 건설업자들과 해결해 나가야 할 여러가지 문제들에 난관은 많지만, 주민들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니, 도지사 최문순에게 힘을 실어 주시고 지켜봐 주시며 응원해 달라고 … 지역주민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표명했다면, 구만리 지역주민들도 10년 가까운 세월 싸우며 기다려온 그 답답함에 비하여 도지사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약속 이행의 다짐에 힘을 얻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숙농성을 선택하는 대신 조금 더 참고 기다려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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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신을 못하면 처세에라도 능해야 하건만, 강원도지사는 너무나도 솔직하여 연기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민과 관의 소통을 위한 창구인 청사의 문을 걸어 잠그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도청 마당에 모인 지역주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음식물 반입을 제지하고, 화장실 사용도 못하게 하는 등 이런 비인륜적이고 비도덕적인 야비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저들은 과연 이 나라의 누구를 위하여 봉사하는 공무원인가?

최문순 도지사는 구만리 주민들, 나아가 강원도민과 강원도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했던 ‘골프장 문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 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전 강원도지사들이 저질러놓은 오물로 더렵혀진 물을 정화해야 할 책임이 최문순 현 도지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지역주민들과의 약속을 기만하고 소통을 거부한다면 강원도의 미래는 골프장으로 인해 황폐해진 자연과 분열된 지역간의 갈등만을 끓어안은 채 지역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도태되어갈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진 : 강원도골프장범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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