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백두대간] ④ 서서히 백두대간에 물들고 있네요

2015.10.01 | 백두대간

백두대간 환경대탐사, 700km를 걷다.

60일동안 꼬박 걷습니다.

도상거리 701km.
강원도 고성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약 6,000장의 야장을 쓰며, 백두대간 마룻금 훼손실태 조사를 합니다.

녹색연합은 12년 전 걸었던 그 길을 똑같이 걷고,
다시 한번 우리 모두의 백두대간을 마주하고, 백두대간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전하고자 합니다.

 

[16일차] 2015년 9월 18일 (금) 맑음

구간: 이기령~갈미봉~고적대~연칠성령~청옥산~문바위재~박달재~두타산~통골재~댓재
거리: 18.7km
걸음수: 29,538걸음

이른 아침의 숲
오늘 구간은 이기령~댓재 구간. 청옥산~두타산을 넘어 댓재까지 가야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5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깜깜했다. 차 안에서 점점 밝아오는 하늘을 보니 조금 낯설었다. 숙소에서 이기령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기령 임도를 따라 올라가던 중 야간산행을 하는 등산객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차로 이동했지만 그 분은 임도를 쭉 걸어서 올라가는 듯 했다. 이기령에 도착하니 6시 20분. 오늘 구간이 길기때문에 곧 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다른때 보다 일찍 숲에 들어오니 좀 다른 숲을 느낄 수 있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숲. 아침 이슬을 머금은 풀잎들. 이른 아침 숲의 느낌은 참 좋았다. 숲이 더 울창해보였다. 하지만 이른 아침에 산을 오르는 일은 힘들었다. 길이 계속 오르막이기도 했지만, 우리 몸의 리듬이 이 시간 산을 오르는 것에 적응되지 않은 듯 했다. 가쁜 숨을 고르며 오르고 있는데 어느새 은은한 안개가 숲을 가득 채웠다.

IMG_5824

해가 떠오르면서 숲을 비춘다.

IMG_5832

아침 이슬 머금은 풀잎.

IMG_5850

은은한 안개로 가득 찬 숲.

연두빛 숲의 불청객
갈미봉을 향해 가는 길.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연두빛 숲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 없이 걸어오느라 놓쳤던 것일까? 어느 순간 연두색 잎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 군데군데 보이는 노란색 잎. 가을이 오고 있었다. 진한 녹색 잎을 보며 탐사를 시작했었는데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린 숲의 색을 보니 시간이 지났음이 실감되었다. 숲의 모습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시간이 흘렀음을 느끼는 건 색다른 일이었다.
하지만 탐사 중에도 전혀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미줄이다. 등산로 사이에는 거미줄이 많이 쳐져 있다. 가끔 얼굴 높이에 있는 거미줄을 만나면 정말 귀찮아진다. 거미줄이 얼굴에 닿는 순간 그 자리에 멈춰서서 얼굴이 닳아 없어지도록 비빈다. 고적대를 올라가는 길, 또 다시 얼굴에 닿은 거미줄을 쓱쓱 털어내면서 문득 거미 입장에서는 정성들여 만든 집이 느닷없이 순식간에 부숴지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수개의 거미줄이 내 얼굴에 닿는다는 것은 하루에도 수개의 거미집이 부숴진다는 것이다. 거미 뿐만 아니라 밟고 지나갔던 풀, 꺾여진 나뭇가지 등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생명들. 나는 연두빛 숲의 불청객이 아닐까. 고적대를 오르며 바라본 청옥산~두타산 자락의 모습 속에서 거미를 비롯해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을 떠올렸다.

IMG_5867

연두빛 숲.

IMG_5911

군데군데 가을이 오고 있었다.

IMG_5910

노란색 잎.

IMG_5891

고적대 가는 길.

IMG_5881

IMG_5873

IMG_5901


매순간 변하는 날씨

여러 생각들을 가진 채 고적대에 도착했다. 고적대에 올라오니 구름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적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곧 바로 구름이 걷혔다. 매 순간 날씨가 변하고 있었다. 구름이 걷힌 탓에 정말 운 좋게도 청옥산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고적대에서 내려가는 바위 길은 좁고 경사가 심했다. 바위를 넘자 이내 매력적인 숲길이 나왔다. 나무들이 숲을 가득 채웠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험준한 일곱 산등성이 일곱 별처럼 연이어 있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연칠성령을 지나, 청옥산에 도착했다. 청옥산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두타산, 고적대와 함께 해동삼봉으로 불리는 산이다. 역시 백두대간답게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청옥산 올라가는 길에는 구름이 껴있어서 습한 느낌을 주었는데, 청옥산 정상에 오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씨가 맑았다. 청옥산에 내리쬐는 햇빛이 따가울 정도였다. 청옥산 정상은 헬기장을 비롯해 여러 시설물들이 있었다. 햇빛이 뜨거운 탓에 오래 있지 못하고 두타산으로 향했다.

IMG_5926

고적대에서 바라본 청옥산~두타산 자락.

IMG_5941

청옥산 가는 길. 험한 바위길이다.

IMG_5973

나무로 가득찬 숲.

IMG_5977

연칠성령.

IMG_5997

청옥산 정상.

어두워진 숲,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늘 마주할 해동삼봉의 마지막 봉우리, 두타산으로 향했다. 오늘 고적대~청옥산~두타산 구간은 전체적으로 깊은 산의 느낌이 났다. 빽빽하게 무리 짓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 이것들이 절묘하게 어우려져 깊은 산의 분위기를 더해주는 듯 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설악산, 오대산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청옥산에서 문바위재, 박달재를 넘어 두타산 가는 등산로는 상태가 괜찮았지만 오르막 경사가 좀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두타산을 치고 오르는 길은 등산로 훼손이 심했다. 헉헉-거리며 두타산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30분. 예상시간보다 조금은 늦었다. 지도를 보니 두타산에서 댓재까지 꼬박 3시간 걸린다. 우리는 부지런히 내려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댓재까지는 쭉 내리막 길이고, 등산로 상태도 괜찮은 편이어서 속도를 좀 낼 수 있었다.
부지런히 걸었음에도 산에서 어둠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18:30분이 되자 랜턴 없이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설상가상으로 어둬워짐과 동시에 안개가 자욱해졌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랜턴을 켜도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길을 잃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숲은 한치 앞도 보여주지 않았다. 댓재 구간은 등산로 폭이 넓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등산로를 찾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댓재에 도착하니 19시 30분. 오늘만 꼬박 13시간 산행을 했다. 몸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려버렸고,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뻗어버렸다.

IMG_6030

두타산 정상.

IMG_6041

안개가 끼고 있는 숲.

IMG_6052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으스스한 기분.

IMG_6057

해가 져서 깜깜한데도 아직 갈 길이 멀다.

IMG_6071

[17일차] 2015년 9월 20일 (일) 맑음

구간: 댓재~황장산~큰재~귀내미골~자암재~환선봉~덕항산~구부시령
거리: 14.3km
걸음수: 20,536걸음

하루를 쉬고 다시 댓재로 출발했다. 오늘은 댓재에서 구부시령까지 가는 약 14km정도의 구간이다. 이틀 전 어두운 밤에 본 댓재의 모습과 아침에 본 모습은 달랐다. 일단 밤에는 보이지 않던 시설물이 많이 있었다. 야외무대, 수돗가 등 정말 다양한 시설물이 있었다. 시설물을 기록하고 있는 사이, 삼척 쪽에서 시내버스 한 대가 올라왔다. 이른 아침 올라오는 버스에서는 7~8명 정도의 등산객들이 내렸다. 등산객들은 우리가 그저께 넘어온 두타산~청옥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댓재 시설물 조사를 마치고 황장산으로 향했다.
황장산으로 올라가는 길, 뒤를 돌아보니 나무 사이로 삼척에서 댓재로 올라오는 24번 지방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우리나라 가장 큰 생태축인 백두대간은 평균 약 8km마다 도로로 인해 단절되어 있다. 여태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많은 도로들을 건너왔다. 댓재처럼 시내버스를 비롯해 차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도 있지만 거의 차가 다니지 않는 폐도로도 많았다. 이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도로는 자연으로 되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숲에는 가을이 오는 듯 했는데 날씨는 그렇지 않다. 해가 바짝 떠 따가운 햇빛이 내리 쬔다. 큰재로 가는 길 숲의 모습이 침엽수림으로 바뀌었다. 활엽수림이 숲이 꽉찬 느낌을 준다면, 침엽수림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내리 쬐는 햇빛때문에 많이 더웠지만 침엽수림을 만나니 조금 시원해지는 듯 했다. 능선에서 바라본 켜켜이 쌓여 있는 산의 모습 또한 시원함을 더 해주었다. 우리는 숲이 주는 시원함을 한 가득 안은 채 큰재로 향했다.

IMG_6101

나무 사이로 보이는 24번 도로.

IMG_6134

시원한 느낌을 주는 침엽수림.

큰재에 도착했다. 큰재는 바로 임도와 만나고 있었다. 임도 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니 뒤편으로 우리가 걸어온 백두대간 능선이 보였다. 잠시 임도에 앉아 걸어온 능선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귀내미골 고랭지밭으로 향했다.
고랭지밭에는 풍력발전기가 따라오는 것일까? 고랭지밭 위로 어김없이 풍력발전기가 있었다. 풍력발전기를 뒤로 하고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귀내미골 고랭지밭은 백두대간 마룻금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떨어진 배추값 때문에 고랭지밭 곳곳에 배추를 갈아 엎은 흔적이 보였다. 저 멀리 산사태방지옹벽도 있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배추는 폭우에 무너져 내리게 되고, 산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무너져 내리는 산을 막기 위해 옹벽을 만들어 놓은 듯 하다.
고랭지밭 임도와 등산로를 번갈아가며 걷다가 어느새 완전한 숲길로 들어섰다. 등산로에서 고랭지밭과 등산로를 구분 지어 놓은 철조망이 보였고, 나무 사이로 고랭지밭이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을 많이 마주쳤다. 주로 단체로 산을 찾은 산악회 사람들이었다. 도토리를 주우며 내려 가는 사람들. 술냄새를 풍기며 우리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왠지 모르게 뻘쭘한 마음을 뒤로 하고 환선봉으로 향했다. 귀여운 작은 로프로 꾸며진 등산로를 따라 어느새 환선봉에 도착했다. 오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어떤 지도는 지각산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주로 환선봉이라 부르는 듯 했다.
덕항산에 도착했다. 덕항산은 태백 하사미와 삼척 신기면 사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삼척 사람들이 이 산을 넘어오면 저 너머에 화전하기 좋은 땅이 있다고 하여 덕메기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것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지금의 덕항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 이름인 덕메기산이 왠지 더 정감이 갔다. 오늘 목적지인 구부시령은 덕항산에서 멀지 않았고, 길도 푹신한 편이어서 걷는데 나쁘지 않았다. 구부시령에서 지원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예수원까지 내려가야 했다. 예수원으로 가는 길.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IMG_6152

큰재와 만난 임도 길.

IMG_6157

우리가 넘어 온 능선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IMG_6168

귀내미골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

IMG_6178

IMG_6194

IMG_6210

귀내미골 고랭지 채소밭.

IMG_6231

나무와 철조망, 고랭지 채소밭.

IMG_6243

IMG_6278

[18일차] 2015년 9월 21일 (월) 맑음

구간: 구부시령~푯대봉~건의령~삼수령(피재)
거리: 14.4km
걸음수: 21,669걸음

백두대간의 이야기들
오늘은 구부시령부터 시작해 삼수령에서 끝나는 구간이다. 우리는 구부시령까지 다시 올라가야 했다. 예수원에서 구부시령 올라가는 길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거리는 꽤나 멀었기 때문에 아침에 서둘러 움직여야 했다. 세상을 살짝 덮은 아침 안개와 햇살을 거치며 예수원에 도착했다. 구부시령 가는 길.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고, 어제는 미처 보지 못한 큰 나무를 마주할 수 있었다. 구부시령에 도착해 조사 준비를 하고 푯대봉을 향해 출발했다.
아침부터 기운이 없었다. 피로가 많이 쌓인 탓일까? 어제부터 몸이 많이 무거웠고, 탐사대 전체적으로 걸음이 많이 느려졌다. 그래도 조사는 해야 하기에 다른 날보다 일찍 점심을 먹고 힘을 내서 가기로 했다.
푯대봉을 넘어 건의령에 도착했다. 건의령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육백산 기슭 궁터에 유배와 있을 때, 고려 충신들이 배알하고 돌아오면서 이 고갯마루에 이르러 복건과 관복을 벗어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겠다고 한 곳이라고 한다. ‘복건과 관복을 벗어 건 고개’라는 의미로 건의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오늘 목적지인 삼수령(피재)에도 이야기가 있다. 삼수령은 세 강의 발원지이다. 삼수령에 떨어진 빗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한강을 거쳐 황해로, 동쪽으로 흐르면 오십천을 거쳐 동해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을 거쳐 남해로 흐른다. 또한 삼수령은 ‘피해 오는 고개’라는 의미를 가진 피재라고도 불린다. 옛날 삼척 지방 백성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으로 알려진 태백 황지로 들어가기 위해 이 곳을 넘었던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백두대간에는 그 거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서 내려오고 있었다. 재미 있는 이야기도, 슬픈 이야기도 남아 있었다. 삼수령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남아 있는 백두대간의 이야기를 잘 구성해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IMG_6305

하얀 안개가 내린 아침.

IMG_6312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빛 속으로.

IMG_6332

[19일차] 2015년 9월 22일 (화) 맑음

구간: 삼수령(피재)~매봉산~비단봉~금대봉~수아밭재~두문동재
거리: 10.5km
걸음수: 14,096걸음

작은 시작이 모여
오늘 조사 구간은 삼수령(피재)에서 출발해 매봉산, 금대봉을 거쳐 두문동재로 이르는 구간이다. 매봉산은 고랭지채소밭, 풍력발전단지가 만들어져 있어 차량이 매봉산 정상 인근까지 올라갈 수 있다. 우리는 삼수령에서 매봉산 오르는 등산로를 조사했다.
삼수령에서 매봉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니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분기점을 가르는 곳이 나타났다. 여러 안내판들이 이 곳에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갈라진 다는 것을 어지럽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 곳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을 이루는 곳이다.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맥이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등을 만들고 피재에서 매봉산에 이르는 능선이 두 갈래로 갈라져 한 쪽은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이루고, 다른 쪽은 백병산, 면산 등으로 이어져 부산까지 내려가 낙동정맥을 이룬다. 이 곳에서 작게 갈라진 산줄기가 다른 곳을 향해 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든 것이 시작할때는 작은 듯 하다. 삼수령에서 시작된 작은 빗방울이 강이 되고, 바다가 되 듯이 매봉산에서 시작된 작은 능선이 이어져 커다란 정맥이 된다. 진부령에서 시작한 우리의 작은 발걸음도 모여서 이제 태백에 이르렀다. 탐사의 3분의 1이 지난 지금, 남은 일정도 무사히 이 작은 발걸음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를 지나 매봉산에 오르니 맞은 편에 뻗어 있는 백두대간이 보였다. 우리가 가야할 금대봉, 은대봉, 함백산 등 아름다운 백두대간 능선이 쭉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오투리조트가 휑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IMG_6385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갈라지는 자리.

IMG_6393

매봉풍력발전단지, 고랭지 채소밭.

IMG_6424

매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함백산을 비롯해 오투리조트가 보인다.

IMG_6410 IMG_6422

적당한 햇빛이 주는 포근함
매봉산 정상에서 잠시 쉬고 비단봉으로 출발했다. 비단봉은 툭 튀어나온 바위였다. 비단봉에 오르자 금대봉, 은대봉, 두문동재, 함백산, 저 멀리 태백산까지 보였다. 경사 심한 내리막을 쭉 내려오니 수아밭령에 잠시 머물렀다. 수아밭령은 한강 최상류 마을인 창죽과 낙동강 최상류 마을인 화전을 잇는 고개이다. 옛날 화전에서는 밭벼를 재배한 관계로 수화전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금대봉을 오르는 길에 생태계보전지역 안내판과 입산통제구역 안내판이 보였다. 입산통제구역 안내판에는 통제기간이 2010년에 종료되었다고 나온다. 하지만 안내판이 아직 남아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기한이 끝났으면 철거하는게 맞지 않을까? 설령 기한이 늘어났다고해도 올바르게 수정해두어야 할텐데,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수아밭령에서 금대봉을 오르는 길은 참 좋았다. 이 지역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보전지역이어서 그런지 초목, 관목, 교목층이 골고루 어우러져 있었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해보였다. 숲길에 취해 걷는 사이 금대봉에 도착했다. 금대봉은 정상이었지만 큰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어 주변 산을 볼 수는 없었다. 금대봉에서 두문동재로 어느 정도 내려가자 돌계단, 나무계단 등 각종 시설물로 이뤄진 등산로가 끝나고 산책로 같이 조성된 곳이 나타났다. 금대봉~두문동재 구간을 걸으면서 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길은 사람들이 느끼기에 적당한 일조량이 유지되는 곳이라 했다. 적당한 햇빛 덕분인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두문동재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지원차량을 타고 구불구불한 두문동재 옛길을 내려갔다. 맞은편에 우리가 지나온 매봉산이 보였다.

IMG_6465

매봉산에서 비단봉으로 가는 길.

IMG_6476

비단봉에서 바라본 조망. 함백산, 은대봉, 두문동재, 금대봉이 보인다.

IMG_6477

IMG_6490

입산통제구역 안내판. 날짜는 지났다.

IMG_6491

이 곳이 생태계보전지역임을 알리는 안내판.

IMG_6504

금대봉에서 두문동재로 내려가는 길.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울창하다.

IMG_6512

적당한 햇빛이 들어오는 숲길.

[20일차] 2015년 9월 23일 (수) 맑음

구간: 화방재(어평재)~사길령~태백산(천제단)~부쇠봉~깃대배기봉~차돌배기
거리: 12.6km
걸음수: 17,893걸음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태백산 구간을 하루에 끝낼 수 없기 때문에 하루는 산에서 비박을 해야 했다. 조사용 작은 배낭 대신 큰 배낭에 텐트, 침낭과 이틀 먹을 식량들을 챙겼다. 훨씬 무거워진 배낭을 차에 싣고 오늘 출발 지점인 화방재까지 이동했다.
화방재(935m)는 영월에서 상동 수라리재를 거쳐 태백으로 넘는 백두대간의 고개이다.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붉게 타올라 꽃방석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곳 주민들은 화방재보다는 어평재라고 부른다. 고갯마루에 있는 휴게소 겸 주유소도 어평주유소일 정도이다. 어평이라는 말은 죽어서 태백산의 산신이 된 단종과 연관이 있다. 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이제부터 내 땅이다’라고 하여 ‘어평리’라는 마을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 마을 이름을 따다가 어평재라고 불리기도 한다.
다른 날보다 무거워진 배낭을 메고 발걸음을 옮기니 훨씬 힘들었다. 화방재(어평재)에서 조금 올라오니 곧 사길령 옛길이 있었다.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오는 교통의 중요한 요충이었다. 과거 신라시대에는 천령이라는 고갯길이 있었는데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 새로이 길을 낸 곳이 바로 사길령이다. 지금은 비석만 남아 사길령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길령에서 태백산 산령각으로 가는 길은 평균 경사도 40%의 오르막 길이었다. 버거운 배낭 무게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르막 길을 걸으니 체력이 더 빨리 떨어지는 듯 했다. 태백산 산령각에 도착해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원했다. 산령각 주변은 넓은 공터가 조성되어 있었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도를 보니 태백산 정상까지 계속 오르막 길이었다.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무거운 배낭만큼 마음도 무거워졌다.

IMG_6522

화방재에서 시작된 1박 2일 여정.

IMG_6529

사길령 비석.

IMG_6544

태백산 산령각.

태백산으로 가는 길을 오르던 중, 낯선 소리가 들렸다. 씨잉- 두두두둑. 비행기 소리였다. 아마 태백산공군비행장에서 훈련을 하는 소리인 듯 싶었다. 올라 오는 등산로 옆 곳곳에는 군사격장으로서 일체 출입을 금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많은 등산객들이 오고가는 산일텐데, 그 한 가운데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훈련을 한다. 생각하면 할 수록 아찔했다.
유일사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백산 정상으로 갈 수록 숲의 모습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빨갛게 물든 단풍. 등산로에 떨어진 낙엽.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오르막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올랐지만 아름다운 단풍이 주는 숲의 모습에 힘이 났다.
정상으로 가는 길 곳곳에 주목들이 보였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들이 서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주목도 볼 수 있었다. 주목은 벼락을 맞고, 속이 파였어도 꿋꿋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어떤 주목은 쓸쓸한 느낌이 주었다. 주목이 주는 분위기 때문일까. 단풍 길을 보며 들떴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IMG_6554

계속 되는 비행기 소리. 군사격장임을 알리는 안내판.

IMG_6587

빨갛게 물든 단풍.

IMG_6590

IMG_6601

낙엽이 떨어진 등산로.

IMG_6573

가장 오래 됐다는 주목나무.

IMG_6576

IMG_6605

IMG_6612

쓸쓸한 고사목.

IMG_6593

하늘과 땅과, 사람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 강원도 태백시와 영월군에 솟아 있는 산이다. 태백산은 여태 보아왔던 백두대간의 모습과는 달랐다. 정상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었고, 큰 나무대신 작은 관목과 초지들이 정상부를 이루고 있었다.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을 ‘밝은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크게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인 것이다. 태백산 정상부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왕단’, 사람(장군)에 제사를 지내던 ‘장군단’, 땅에 제사를 지내던 ‘하단’. 총 3개의 제단이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 옛 조상들은 하늘과 땅과 사람에서 어떤 연관성을 보았을까. 그 연관성이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천제단 인근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오전부터 들려왔던 비행기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정상에서는 태백산공군비행장이 한 눈에 보였고, 그 소음은 더 크게 들렸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태백산 위로 비행기가 수시로 날라다니며 훈련을 하고 있었다.

IMG_6616

장군단. 3개의 천제단 중 하나이다.

IMG_6620

장군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능선. 저 멀리 천왕단이 보인다.

IMG_6644

태백산 정상에서 바로 보이는 태백공군비행장.

IMG_6685

‘크게 밝은 산’. 태백산.

IMG_6626 IMG_6669 IMG_6704

우리를 계속 괴롭히는 것
천제단에서 우리가 가야할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봤다. 여러가지 색이 섞인 숲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깃대배기봉까지는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 없이 쭉 이어진 길이었다. 깃대배기봉에 가니 산림청에서 세워둔 비석이 있었다. 사람 허리 높이까지 오는 적당한 크기였다. 가끔 엄청난 크기의 비석들을 보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분정도 더 걸었을까? 또 다른 깃대배기봉 비석이 있었다. 이번엔 강원도와 OO산악회에서 함께 세워둔 비석이었다. 같은 자리도 아니고 서로 다른 장소에 깃대배기봉이라고 비석을 세워둔 꼴이였다. 어떤 곳이 정말 깃대배기봉일까.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랐다. 아마 비행기 사격 연습 소리인 듯 했다. 비행장과 조금 떨어진 곳이라 생각했지만 소리가 꽤 크게 들려서 무서웠다. 그 이후로 두 세번 정도 펑- 하는 소리가 더 났고,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
다행스럽게도 해가 지기 전 오늘 비박 장소인 차돌배기에 도착했다. 차돌배기는 지나는 행락객이 쉬어가는 곳으로 옛날 이 자리에 차돌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각자 역할에 맞게 움직였다. 텐트를 치고, 물을 구하러 가고, 요리를 했다. 물은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비가 너무 안와 샘물이 말라 버린 탓이다. 싸온 물로 요리를 해먹을 수 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나니 산 속은 금새 어두워졌다.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타프와 텐트 속에 들어가 침낭을 덮고 누웠다. 이른 시간이지만 피곤이 몰려왔다. 눈이 감길려는 찰나, 이상한 전자음 소리가 났다. 야간 사격 훈련인 것 같았다. 소음은 밤 늦게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있었다.

IMG_6692

여러가지 색이 섞인 숲의 모습.

IMG_6720

깃대배기봉 자연생태관찰로.

IMG_6721

적당한 크기의 비석.

IMG_6728

도토리로 뒤덮이 길을 걸었다.

IMG_6737

차돌백이. 오늘의 비박 장소.

IMG_6742

텐트를 치고 비박 준비를 했다.

[21일차] 2015년 9월 24일 (목) 맑음

구간: 차돌배기~신선봉~곰넘이재~고적령~구룡산~도래기재
거리: 13.7km
걸음수: 19,135걸음

백두대간과 함께 깨는 아침
산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신선하다. 산이 깨어남과 동시에 나도 깨어나게 된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산의 시간에 적응하는 나를 보며 서서히 백두대간에 물들고 있음을 느꼈다. 밤새 불었던 바람이 몸을 살짝 얼게 만들었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침을 해먹고 텐트, 타프 등 정리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오늘 목적지인 도래기재까지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신선봉에 도착했다. 신선봉은 정상에 묘지가 있는 특이한 봉우리였다. 봉우리에 묘지를 둘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찾아오기 힘들 것 같았다. 신선봉에서 구룡산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자 큰 길이 나왔다. 약 2m 크기의 길이었다. 예상보다 길이 좋아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곰넘이재에 도착했다. 곰넘이재는 옛날에 태백산 천제를 지내러 가는 관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고개였다고 한다. 옛 문헌에 ‘웅현’이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언젠가부터 순 우리말로 순화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곰넘이재에는 펜션, 식당 등 광고판들이 즐비해있었다.

IMG_6777

이른 아침. 밤새 바람이 많이 불었다.

 

IMG_6789

노랗고 빨간 낙엽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IMG_6796

신선봉에 있는 묘지.

 

고적령에서 점심을 먹고 구룡산으로 향했다. 구룡산에 도착하니 오늘 목적지인 도래기재가 이정표에 나타났다. 짧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목적지가 이정표에 나오니 반가웠다. 구룡산 일대는 1980년대까지 산불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방화선이 이었던 지역이다. 구룡산은 태백산과 옥석산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마룻금을 이루는 산으로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여 구룡산이라고 하는데, 용이 승천할 때 어느 아낙이 물동이를 이고 오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뱀봐라’ 하면서 꼬리를 잡아 당겨 용이 떨어져 뱀이 됐다는 재밌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룡산에서 도래기재로 임도 길을 넘고 등산로를 따라 내려 가던 길. 우뚝 솟아 있는 금강소나무를 만났다. 물과 식량이 떨어져 마음 급히 내려왔었던 것을 조금 반성하게 만들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모두 다 소나무를 바라봤다.
모두 무사히 도래기재에 도착했다. 사고 없이 1박 2일을 마쳐서 다행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잔잔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IMG_6825

안개 낀 구룡산 정상.

IMG_6832

숲에 파묻힌 모습.

IMG_6839

구룡산 임도 길 쉼터에서 휴식.

 

IMG_6847

우뚝 솟아 있는 금강소나무.

IMG_6854

잔잔한 구름이 펼쳐져 있는 하늘.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