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G] 백두대간, 아픔을 공유하다

2018.08.23 | 백두대간

무더운 여름. 창문을 활짝 연다. 시원한 바람이 볼을 간질인다. 창밖에 녹색으로 짙게 물든 푸른 산이 보인다. 2015년 늦여름, 백두대간을 흠뻑 담았던 때를 추억해본다.

2015년은 백두대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녹색연합은 700km가 넘는 대장정을 함께 할 백두대간 탐사대를 모집했다. 2015년 9월부터 약 70일동안 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두 발로 걸으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실태’를 조사했다.

백두대간 탐사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산행을 준비했다. 지도와 GPS 등 조사 장비를 챙기고 도시락과 물, 간식도 챙겼다. 각자 배낭 안에 물건들을 나누고, 차를 타고 조사 지역으로 이동했다. 나는 길잡이였다. 맨 앞에서 GPS와 지도를 보면서 백두대간 주능선 길을 찾고, 보폭을 계산해 200m마다 조사 지점을 정하는 역할이었다. 다른 한 사람이 지형과 해발고도 등 입지조건과 등산로폭, 나지노출폭, 침식 깊이 등을 측정해 불러주면 또 다른 사람은 그 내용을 야장에 기록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조사 지역 사진을 찍고, 시설물을 조사했다. 이렇게 5명이 70일동안 백두대간의 아픔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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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은 등산로 말고도 많이 파괴되고 있었다. 백두대간을 훼손하는 시설은 모두 270곳이 넘는다. 높이가 872m였던 자병산은 채석 광산 개발로 과거보다 100m가 주저 앉았다. 그리고 백두대간을 약 8km마다 관통하는 도로, 산림을 광범위하게 훼손하는 댐과 광산, 이용자 없이 애물단지가 된 스키장, 고랭지 채소밭과 목장, 군사시설 등이 백두대간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탐사대는 훼손지를 볼 때마다 “이게 보호구역인가?”라는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백두대간 탐사를 시작한 지 20일이 넘어서야 강원도 태백산 도래기재에서 ‘백두대간 보호지역’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판을 만났다. 그동안 ‘백두대간’이라는 안내판은 많았는데, 여기가 ‘백두대간 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판은 없었다. 백두대간을 보호하는 법이 있는지, 여기가 보호구역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다. 보호구역 보호의 시작은 사람들에게 여기가 보호구역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아픔은 그것의 신속한 해결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픔은 신속한 해결보다는 그 아픔의 공유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우산을 들어 주는 것보다 함께 비를 맞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닐까. …ᅠ아픔의 공유와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한 공동의 노력. 그러한 공동의 노력은 그 과정에서 당면의 아픔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사회적 구조를 대면하게 해 준다고 믿습니다. – 신영복,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백두대간 대탐사를 하다보면 많은 등산객들을 만난다. 등산객들은 범상치 않은 복장을 한 채 조사에 임하는 우리를 보고 무얼 하는지 묻는다. “지금 백두대간 등산로 훼손 상태를 조사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이야! 이렇게 좋은 산에 와서 놀 듯이 일하면 참 좋겠네!” 백두대간을 걸으며 숲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픔을 마주하고, 아픔을 기록하고, 아픔을 공유하는 일은 늘 마음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연합은 맨 앞에서 아픔을 기록한다. 그 이유는 아픔이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아픔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아픔에 공감하고, 아픔의 치유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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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만형(녹색연합 녹색이음팀)

*이 글은 빅이슈 185호(2018.8월호)에 기고된 글입니다. 전문은 빅이슈를 구입하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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